“물려줄 자식도 없다”면서…이길여, 집 대공사하는 이유

  • 카드 발행 일시2024.03.11
이길여 총장이 여의사들과 함께 한 무의도 의료 봉사 당시 모습. 사진 가천대

이길여 총장이 여의사들과 함께 한 무의도 의료 봉사 당시 모습. 사진 가천대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용어가 있다. 마라토너가 힘든 구간을 지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빗댄 말인데, 나눔 봉사 기부를 할 때 극적 쾌감을 얻는다는 의미다.

이타적 행동이 정신적 만족만이 아니라 실제 장수와도 연관이 높다는 과학적 연구는 이미 수차례 입증된 바 있다.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엔도르핀과 친밀감을 높이는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하면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만성 통증이 줄어든다는 게 공통된 결과다.

‘청춘 이길여’의 한 축을 나눔과 봉사, 사회 공헌에서 찾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김우경 길병원장도 여기에 공감한다. “내가 벌어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저렇게 건강할 수 있을까요. 늘 환자와 학생을 우선순위로 두니 따르는 사람이 많아져 행복하고, 호르몬 체계가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슬러 보면 이 총장이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부터가 업의 사명감을 넘어 약자에 대한 봉사, 국가 발전 등과 맞물려 있다.

“나는 의사 얼굴을 못 보고 초등학교에 갔어요. 의사가 뭔지도 모르고, 학교 갈 나이가 되기 전에 친구들이 죽기도 했죠.
그때 사람이 죽으면 왜 죽지, 어떻게 하면 저 아이들이 안 죽지, 그런 고민을 어린 나이에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때는 누가 아프면 무당이 와서 음료수나 올리고 뭐 그런 거밖에 못 했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갔더니 의사가 와서 천연두 예방주사를 놓아주고, 약도 주고 주사도 놔주더라고요. 그게 너무너무 신기한 거예요.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돼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었죠.”

이 총장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준 이영춘 박사. 이 박사는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이 총장이 다니던 대야초등학교 등 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사진 가천대

이 총장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준 이영춘 박사. 이 박사는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농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이 총장이 다니던 대야초등학교 등 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사진 가천대

동년배에 대한 ‘부채 의식’ 역시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큰 방향성이 됐다. 1968년 미국 유학을 갔다 체류를 포기하고 귀국한 이유이기도 했다. “6·25전쟁 때 또래의 청년들이, 또 서울대 의대 학우들이 학도병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아팠어요. 군산 도립병원에서 상이군인도 많이 봤고요. 제게는 다 마음의 빚이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료 활동과 봉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애국은 병원과 대학의 설립 이념이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