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아들 수술 모른체” 백두대간 앞장선 그의 속사정 [백두대간을 걷다-끝]

  • 카드 발행 일시2024.03.05

백두대간을 걷다-에필로그

지난 1월부터 두 달 간 10회에 걸쳐 연재한 ‘백두대간을 걷다’ 시리즈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열 번째는 팀의 리더로서 겨울 백두대간 700㎞를 앞장서 걸었던 김미곤(52) 대장의 종주기를 전합니다. 더불어 겨울 백두대간 종주 일정 짜기와 장비·식량 전략 등을 첨부합니다.

지난 1월 5일, 백두대간 갈전곡봉(강원 인제) 정상에 선 김미곤 대장. 사진 김영주 기자

지난 1월 5일, 백두대간 갈전곡봉(강원 인제) 정상에 선 김미곤 대장. 사진 김영주 기자

나는 대학 산악부 시절인 1994년 여름에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강원 고성)까지 북진하며, 큰 배낭을 메고 걷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는 계획은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한 이후인 2년 전이다. 예전 백두대간 종주의 거점 역할을 한 샘과 샘터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한 뒤, 각 지역 산악회와 손잡고 샘터를 보전하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었다.

그러던 참에 중앙일보 호모 트레커스로부터 “동계 백두대간을 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김영주 기자는 “산악인 남난희씨가 40년 전에 했던 동계 산맥(부산 금정산~진부령 700㎞) 종주의 맥을 이어보자”고 했다. 또 예전과는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 배낭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가져간 모든 것과 자신의 배설물까지 모두 수거하는 친환경 트레킹이었다. 이는 내 생각과 같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막상 준비 단계에서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 단둘이 겨울 백두대간을 한다는 게 걱정됐다. 또 ‘배낭을 가볍게 꾸리면서도 장비와 식량을 어떻게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나마 동계 백패킹 장비가 경량화됐고, 백두대간 진입로와 탈출로가 많아졌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래서 “어려운 점은 현장에서 부딪혀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지난해 12월 31일 김영주 기자(왼쪽)와 김미곤 대장이 강원 고성 진부령에 서 있다.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지난해 12월 31일 김영주 기자(왼쪽)와 김미곤 대장이 강원 고성 진부령에 서 있다.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지난해 12월 31일, 백두대간 ‘남진(南進,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방식)’ 출발점인 강원도 고성군 진부령에 섰다. 당초 계획은 1월 1일이었지만, 강원도에 폭설에 온다는 예보가 있어 하루 앞당겼다. 진부령 아래 설악산국립공원은 벌써 통제된 상태였다. 기간이 길어지면 종주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울 듯해, 날짜를 앞당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이날은 종일 습기를 머금은 눈이 내렸지만, 진부령~마산봉~용대리 약 10km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김영주 기자는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이제 반을 한 셈”이라고 했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축축한 눈은 종주 기간 내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지난 1월 1일 설악산 통제는 계속됐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날, 마산봉을 같이 걸었던 이억만(63) 형의 고성읍 오피스텔에서 김영주 기자와 같이 잠을 청했다. 이 형은 2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외동딸은 10여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상태였다. 산에 빠져들게 된 것도 “아내와 사별하고 난 후”라고 했다. 나와 그는 한국등산학교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나보다 열두살이 많았지만, 나를 “대장님”이라 부르며 깎듯이 예우했다. 그는 2년 전 내가 원정대장을 한 ‘네팔 힘룽히말 원정대’의 대원으로 발탁돼 훈련 과정도 모두 마쳤으나,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출국 직전 함께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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