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완주 이룬 그 순간, 딱 한마디 뱉다 “내려갑시다” [백두대간을 걷다⑧]

  • 카드 발행 일시2024.02.27

백두대간을 걷다⑧-지리산 권역

호모 트레커스가 1월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을 걷다’ 종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700㎞를 직접 밟아 백두대간의 겨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보전해야 할 동식물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이번 회는 마지막 지리산국립공원 권역입니다. 눈 쌓인 지리산 능선 약 30km를 비를 맞고 걸었습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재촉하는 봄비 산행이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7시, 전북 남원시 운봉읍 방현마을 사치재(500m) 고갯마루. 설날 연휴인 이날도 백두대간 능선에 섰다. 덕유산(1614m)과 지리산(1915m) 사이에 있는 사치재 밑으론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관통한다. 바래봉이 보이는 남원시 인월읍까진 차로 10분 거리. 그래서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이 자주 들머리·날머리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2월 13일, 전북 남원 고기리에서 고리봉 오르는 길. 앞에서부터 이억만 대장, 김영주 기자, 김미곤 대장.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2월 13일, 전북 남원 고기리에서 고리봉 오르는 길. 앞에서부터 이억만 대장, 김영주 기자, 김미곤 대장. 사진 한국산악교류협회

사치재에서 지리산 자락에 접근하기 전까진 500~600m의 작은 봉우리와 능선을 넘는다. 단, 중간에 고남산(846m)이라는 오르막이 한 곳 있다. 고남산 정상까지 약 8㎞, 경사가 완만해 소풍 가듯 걸었다. 한 달 이상 대간 능선을 걸어 온지라 이 정도는 수월했다. 고남산을 내려오면 여원재(480m) 고개다. 고갯마루를 관통하는 24번 국도변에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당시 이 고개를 넘어 순천으로 종군했다고 한다.

여원재 바로 앞 야산에 고삐 풀린 개들이 돌아다녔다. 개들은 사람을 보고 사납게 달려들었다. 김미곤(52) 대장은 이 개들을 퇴치하느라 등산 스틱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나중에 온라인에 올라온 백두대간 종주기를 보니 “여원재에선 개를 조심하라”는 후기도 있었다. 하마터면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할 뻔했다. 이날 여원재 너머 고기리삼거리까지 간 후 숙소에서 묵었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선 지리산 주 능선과 서북 능선이 훤히 보인다. 고기리에서 고리봉(1305m)에 올라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1433)·정령치(1172m)·성삼재(1090m)·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고, 서북 능선을 타면 세걸산(1220m)·팔랑치(989m)·바래봉(1165m)·덕두봉(1150m)으로 이어진다. 덕두봉 아래 중근리가 김 대장의 고향이다. 김 대장은 연휴인데도 고향에 가지 않고 계속 걸었다. 고리봉 아래서 하루를 쉬며 체력을 비축했다. 사실상 마지막인 지리산 주 능선 종주를 위해서다.

지난 13일 오전 고리봉·만복대·정령치를 거쳐 성삼재에 닿았다. 오르막 구간이지만, 하루 쉰 덕분인지 시간당 평균 2.5㎞ 속도로 걸을 수 있었다. 성삼재휴게소의 식당·편의점은 겨울에 문을 닫고, 대신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영업 중이었다. 커피를 한잔 주문했다. 거의 두 달여 만이다. 김 대장과 이억만(63) 대장, 기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손에 쥐고 노고단대피소(1350m)를 향해 걸었다.

2월 13일, 지리산 성삼재휴게소. 따뜻한 커피를 든 김미곤 대장(왼쪽)과 이억만 대장이 노고단을 향해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2월 13일, 지리산 성삼재휴게소. 따뜻한 커피를 든 김미곤 대장(왼쪽)과 이억만 대장이 노고단을 향해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아, 이렇게 좋을 수가.”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 한잔이 이렇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지 몰랐다. 이제 백두대간 700㎞ 여정의 막바지인 지리산 천왕봉까진 하루 남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지난해 신축한 노고단대피소는 깔끔했다. 이날 묵는 사람도 10여 명 남짓으로 한산했다. 그중 두 명은 이튿날 장터목대피소(1750m)까지 가서 천왕봉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노고단에서 장터목까진 24㎞. 하루 가야 할 거리로 꽤 먼 거리지만, 지리산 주 능선을 종주하는 이들은 대개 이 구간을 하루 만에 걷는다. 한 명은 “걷는 속도가 느려 새벽 일찍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새벽 2시에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