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로 피아노 좍좍 긁다…근데 황홀하다, 진은숙 사운드

  • 카드 발행 일시2024.02.23

 진은숙 스타일: 아, 이 소리는 뭐지?

‘더 클래식’ 5회의 주인공은 작곡가 진은숙(63)입니다. 음악 팬들의 진심 어린 충고가 벌써 들리는 듯합니다.
‘뭐, 현대음악?’ ‘아름다운 부분은 하나도 없으면서 끽끽거리는 그 작품들?’ ‘다시 연주자를 다뤄줘요!’
하지만 저는 용기 있게 진은숙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의 음악에는 황홀한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 지금 이 소리 뭐지?’ ‘왜 한 번도 못 들어본 음향이 나오지?’
편견을 버리고 지금 들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느끼시면 됩니다. 찬찬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은숙 작곡가가 대중 강연에서 한 말부터 소개해 드립니다.
“서양, 특히 독일어권에서 1950년대부터 해왔던 ‘현대음악’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2002년)
우리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그 어려운 음악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한 음악입니다.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살펴보시지요.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중앙포토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다. 중앙포토

오늘은 퀴즈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음 중 작곡가 진은숙에 관한 설명이 아닌 것을 골라 보세요.
① 시사평론가 진중권의 누나다.
② 전 세계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작품이 연주된다.
③ 2024년 1월 상금 약 3억6000만원의 작곡상을 받았다.
④ 베를린필이 진은숙만의 작품을 모아 앨범을 냈다.
⑤ 한국의 정서로 이름을 알린 세계적 작곡가다.

한때는 진은숙을 설명할 때면 늘 동생인 진중권(61) 전 동양대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죠. 그들은 경기도 파주의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2번도 참입니다. 음악 출판사(부시 앤 호크스)에 따르면 2023년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서 151회, 약 2.4일마다 한 번씩 연주됐습니다. 상금 25만 유로의 에른스트 폰 지멘스상, 베를린필의 음반 2장 발매도 사실입니다. 베를린필이 현대음악 작곡가의 이름으로 음반을 낸 것은 역사상 두 번째라고 합니다.

5번은 마치 맞는 내용 같지만 아닙니다. 진은숙은 ‘자, 변방의 나라에서 온 여성 작곡가의 작품을 들어 보자’와 같은 뻔한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리면서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1985년 스물 네 살부터 독일에 살고 있는 그는 한국적·동양적인 음악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스승의 스승인 윤이상(1917~95) 작곡가와는 달리, 한국에서도 한국 음악(국악)을 들으며 성장하지 않았죠. 진은숙은 한국·동양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에 거부감을 가집니다.

그럼 진은숙의 작품은 왜 인기가 많을까요. 어떤 점이 그 음악의 매력이며, 왜 베를린·뉴욕·LA·런던 같은 곳에서 그에게 새 작품을 위촉하고, 자꾸만 연주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 들어보는 소리’ 때문입니다. 진은숙은 독자적 판타지를 위해 수없이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피아노·바이올린 같은 악기에서 새로운 소리가 납니다. 또 신용카드로 피아노를 긁고, 타악기 주자에게 부엌 쓰레기통을 쥐어줍니다. 이제 세상에 없었던 진은숙 사운드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이번 회는 손민경 하버드대 음악학 박사 후 연구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환상적 사운드 조각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이 함께하는 협주곡입니다. 시작 부분에서 ‘어, 이상하다?’ 하면서 어디서 나는지 찾게 되는 소리가 있을 겁니다. 고요히 퍼지는 이 소리를 한번 들어 보세요. 마치 요가 수업에서 들려오는 사운드 같은, 명상적이고 정적인 소리입니다. 도대체 어떤 악기가 이런 웅얼대는 소리를 내는 건지 오케스트라 내부를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처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