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발자국 보고 “길이다!” 2시간 빙빙 돌아 제자리였다 [백두대간을 걷다⑦]

  • 카드 발행 일시2024.02.20

백두대간을 걷다⑦-덕유산 권역

호모 트레커스가 1월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을 걷다’ 종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700㎞를 직접 밟아 백두대간의 겨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보전해야 할 동식물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일곱 번째 구간은 덕유산국립공원 권역입니다. 눈 많은 덕유산은 고통과 인내, 그리고 그만한 성취감을 안겨준 구간입니다. 덕유산을 지나면 지리산, 이제 백두대간 종주의 막바지입니다.

지난 4일부터 덕유산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6일까지 계속됐다. 기상청은 덕유산 정상에 15~20㎝의 신설이 내렸을 것이라고 했다. 6일 오전, 지난 4일 당도했던 신풍령(899m·뼈재)에 다시 섰다. 그날 산을 내려가 하루(5일) 쉬고 이날 다시 올라오는 길이다.

신풍령에 가려면 뼈재터널(해발 약 800m)에서 약 2㎞ 아스팔트 길을 올라야 했는데, 여기서부터 난관이었다. 눈이 쌓여 더는 차량으로 갈 수 없었다. 걸어가야 할 길이 2㎞ 더 늘었다. 뼈재터널-신풍령 구간에서 신설은 10~15㎝ 쌓여 있었다. 이틀 전 맨땅이었는데, 이젠 설원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눈이 발목 넘어 스패츠(등산화 위에 차는 각반) 중간까지 올라왔다. 이런 길을 온종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김미곤(52) 대장과 이억만(63) 대장의 눈빛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가뜩이나 이날은 구름마저 낮게 내려와 시야가 50m 정도에 불과했다. 날씨와 트레일 컨디션 모두 최악의 조건이었다. 이날 설악산·태백산·지리산 등 주요 국립공원 탐방로는 통제됐다. 반면에 덕유산국립공원은 대설특보도, 탐방로 통제도 없었다. 5㎝ 적설일 경우 특보가 내려지고 탐방로를 통제하는 게 일반적인데, 왜 덕유산국립공원은 아무 조치가 없었는지 아리송하다.

2월 8일 오전 9시, 남덕유에 올라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보는 이억만 대장(왼쪽)과 김미곤 대장. 김영주 기자

2월 8일 오전 9시, 남덕유에 올라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보는 이억만 대장(왼쪽)과 김미곤 대장. 김영주 기자

이날 계획된 일정은 신풍령에서 횡경재(1273m)·백암봉(1503m)을 거쳐, 덕유산 주 능선을 타고 남쪽 삿갓재대피소까지다. 하루 20㎞를 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신설이 15㎝가량 쌓인 길을 시간당 2㎞ 속도로 걷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쉬지 않고 걸었을 경우에 가능하다.

신풍령에서 길을 헤매다  

2월 6일, 김미곤 대장이 덕유산국립공원 동쪽 횡경재를 오르고 있다. 김영주 기자

2월 6일, 김미곤 대장이 덕유산국립공원 동쪽 횡경재를 오르고 있다. 김영주 기자

그러나,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어긋나기 시작했다. 신풍령에서 빼봉(1042m)을 지난 후였다. 앞에서 러셀(신설이 내린 후 길을 내는 작업)을 하던 김미곤 대장이 “길을 잘못 들어섰다”며 멈칫했다. 보통 이럴 경우 오던 길을 뒤돌아나가 다시 길을 찾게 되지만, 이날은 웬일인지 “계속 치고 나가면 다시 만날 것 같다”며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패착이었다. 한번 벗어난 길은 계속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눈 쌓인 오르막을 한참이나 헤치고 올라간 후에나 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1시간 만에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한동안 헤매다가 능선에 올라가니 발자국이 있었다. 이억만 대장이 “길을 찾았다”고 외쳤다. “여기 누군가 먼저 간 발자국이 있네. 러셀이 돼 있었네.”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길을 잃고 눈밭을 헤매고 있을 때, 앞서간 이의 발자국을 발견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갑다.

이번엔 기자가 앞장섰다. “자, 이제부터 속도를 내보자고요.” 힘 빠진 동료들 들으라고 부러 큰소리로 외쳤다. 제시간에 맞춰서 삿갓재대피소에 들어가려면, ‘텐션’을 극도로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패착이었다. 정신없이 30분 정도 갔을 때였다. 트레일 왼편으로 ‘빼봉’을 알리는 정상석이 보였다.

‘아뿔싸.’ 2시간 전에 지나친 빼봉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그제야 ‘앞서간 이들이 낸 발자국’이라고 믿고 따라온 길이 2시간 전에 취재팀 3명이 걸었던 발자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빼봉 근방에서 길을 잃은 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돌아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