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겨울에 폐쇄해야지” 김미곤도 놀란 ‘지옥의 빙벽’ [백두대간을 걷다④]

  • 카드 발행 일시2024.01.30

백두대간을 걷다④ 소백산·월악산 권역

호모 트레커스가 1월 1일부터 약 50일간 ‘백두대간을 걷다’ 종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강원도 고성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700㎞를 직접 밟아 백두대간의 겨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보전해야 할 동식물 이야기 등을 전합니다. 네 번째 구간은 소백산·월악산 국립공원 권역입니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도래기재(경북 봉화)에서 이화령(경북 문경)까지 108㎞를 걸었습니다.

지난달 31일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후 가장 힘든 구간이자 가장 힘든 한 주였다. 영하 15도(체감온도 영하 20도 이상)의 혹한과 강풍을 맞고 3일 연속 걸어야 했고, 지난 24일 지나온 조령산·신선암봉(충북 괴산) 약 3㎞ 구간은 꽁꽁 얼어붙은 암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기어올라야 했다. 겨울엔 너무 위험한 구간으로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통제해야 할 곳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악천후와 혹한을 이겨낸 3명의 ‘백두대간을 걷다’ 취재팀은 끈끈한 브로맨스가 생겼다. 이제 어떤 날씨, 어떤 구간이라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22일 오전, 백두대간 죽령~도솔봉 구간을 걷는 김영주 기자. 모든 게 얼어붙었다. 김영주 기자

한파가 몰아친 지난 22일 오전, 백두대간 죽령~도솔봉 구간을 걷는 김영주 기자. 모든 게 얼어붙었다. 김영주 기자

양백지간, 마구령·고치령 고개 

“여기는 삼무(三無)의 땅이다. 가든이 없고, 파크가 없고, 기지국이 없다. 『정감록』은 바로 이 삼무의 축복을 예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중략) 부석사를 떠나 마구령 어귀에 들어섰을 때 소백산맥에는 눈발이 날렸다. 눈발 속에 풀린 겨울 산맥은 신기루처럼 몽롱했고 무서웠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 소백산 마구령 편)

지난 21일 오전, 경북 영주시 고치령 올라가는 길. 이억만(왼쪽) 대장과 김미곤 대장이 고치령을 향햐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21일 오전, 경북 영주시 고치령 올라가는 길. 이억만(왼쪽) 대장과 김미곤 대장이 고치령을 향햐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소설가 김훈이 이 길을 자전거로 넘을 때만 해도 삼무의 땅이었을 것이다. 마구령(경북 영주, 820m)은 소백산국립공원 영역이라 여전히 가든과 파크는 없지만, 휴대폰은 잘 터진다. 진부령(강원 고성)에서 마구령까지 백두대간 능선을 걷는 동안, 휴대폰이 안 터지는 곳은 많지 않았다. 산에서 휴대폰은 필수품이 됐다. 특히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예전 『자전거 여행』에 매료돼 이 길을 취재하러 왔었다. 지난 20일,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마구령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길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당시 비포장길이 지금은 깔끔한 아스팔트로 변신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날은 온종일 눈이 내려 길에 늘어선 신갈나무·소나무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눈이 쌓였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옛길을 음미하듯 지났다.

마구령에서 소백산 방향으로 대간길을 따라 시오리를 더 가면 고치령(820m)이다. ‘옛 재’라는 뜻을 지닌 고치령도 한갓지기는 마찬가지다. 눈이 내려서인지 산 아래 영주와 단양에서 올라오는 차도 없었다. 신기루처럼 몽롱하고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고즈넉했다. 겨울에 걷기 좋은 길이다.

마구령·고치령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양백지간(兩白之間)을 잇는 고개다. 예전엔 등짐을 지고 고개를 넘는 보부상으로 붐볐던 곳이다. 마구령 아래엔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주막거리가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마구령·고치령을 찾는 이들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오는 4월 마구령 아래로 마구령 터널이 뚫리면,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만 이 고개를 넘지 않을까 싶다.

이날 도래기재(750m)에서 시작한 길은 박달령(1009m)·선달산(1236m)·마구령(820m)·고치령(760m)에서 끝났다. 장장 26km. 대간 종주 이후 가장 오래, 가장 긴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힘들지 않았다. 선달산 말고는 높은 산이 없었고, 령과 령 사이를 이어 걷는 맛이 있었다. 고치령을 내려와 풍기(경북 영주)에서 묵었다. 국립공원 안이라 야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국망봉 정상 능선. 이억만 대장이 힘겹고 심설 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21일 국망봉 정상 능선. 이억만 대장이 힘겹고 심설 길을 걷고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21일 다시 택시를 타고 고치령으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소백산에 들었다. 고치령에서 국망봉(1420m)까지 약 11km. 눈 온 후 사람 다니지 않은 길을 러셀(눈을 헤치고 길을 내는 작업)을 하며 걷느라 힘든 구간이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눈은 꾸드득 소리를 내며 등산화를 잡아끌었다. 기나긴 러셀, 기나긴 국망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