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 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박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