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던 최규하가 변했다, TK 출신 그 사람이 배후였다 (77)

  • 카드 발행 일시2024.01.17

1979년 11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지고 유신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18년 구질서는 헝클어졌으며 새 질서는 형성되지 않았다. 누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끌어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거대한 공백 속에서 미래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권한대행은 최규하 총리가 맡았고, 비상계엄이 실시돼 계엄사령관직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하고 있었다. 집권당인 민주공화당 총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군과 정부, 정치를 관통하는 중심은 없었다.

그때 나는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당시 5선 국회의원이었지만 공화당에서 별 역할이 없는 총재 상임고문에 불과했다. 주요 당직자 중에서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박 대통령과 혁명을 같이 한 혈맹으로서 새로 닥칠 시대에서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975년 12월 20일 오전 김종필(JP·오른쪽) 전 국무총리와 최규하 신임총리가 이·취임식을 하기에 앞서 중앙청 총리 집무실에서 만나 서로 상석에 앉을 것을 권하며 웃고 있다. JP는 4년6개월 만에 총리실을 떠났다. JP는 총리 시절 무리한 일정으로 건강을 해쳐 사표를 냈다. JP는 1961년 중앙정보부의 브레인 그룹인 정책연구실에 외무부 관료였던 최규하씨를 참여시키면서 인연을 맺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1975년 12월 20일 오전 김종필(JP·오른쪽) 전 국무총리와 최규하 신임총리가 이·취임식을 하기에 앞서 중앙청 총리 집무실에서 만나 서로 상석에 앉을 것을 권하며 웃고 있다. JP는 4년6개월 만에 총리실을 떠났다. JP는 총리 시절 무리한 일정으로 건강을 해쳐 사표를 냈다. JP는 1961년 중앙정보부의 브레인 그룹인 정책연구실에 외무부 관료였던 최규하씨를 참여시키면서 인연을 맺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박 대통령의 뒤를 이을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문제가 나라의 현안이었다. 당내 상당수 의견은 내가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신 대통령을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때 정치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군부도 나를 경계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으로 유신은 막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새 시대에 페어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처삼촌인 박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그 자리에 대한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