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누명 밝힌 딸은 유산했다…곡성 성폭행 사건의 진실

  • 카드 발행 일시2024.01.03

딸 아니었으면 몇 달 전까지 감옥에 있었을 거예요. 누명을 벗겨준 게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아니고 딸이었다니까. 딸 셋 있는 아빠인데 장애인을 성폭행했다고 누명을 썼으니….

전남 곡성에서 호두과자를 팔던 김정효(64·가명)씨는 어느 날 장애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현동 기자

전남 곡성에서 호두과자를 팔던 김정효(64·가명)씨는 어느 날 장애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현동 기자

딸 이야기가 나오자 수화기 건너편 김정효(64·가명)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지난해 늦가을 첫 통화에서 그의 목소리는 다소 심드렁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모든 게 무용하다는 취지로 들렸다.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는 것도 꺼렸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바뀐 건 딸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다. 아버지를 위해 딸이 백방으로 뛰어다닌 이야기를 하자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부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호두과자 팔던 딸 셋 아버지, 성폭행범 되다

김정효씨는 자신의 죄를 벗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둘째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김정효씨는 자신의 죄를 벗기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둘째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지난해 세밑,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자택에서 김씨를 만났다. 사연을 풀자면 가족이 겪었던 일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그가 거실 한쪽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리켰다. “제가 범인으로 몰렸을 때 제일 고생한 게 딸들이죠. 제 죄 벗긴다고 발 벗고 나선 게 둘째고요. 얘랑 첫째는 음악을 전공했거든요. 사건이 있기 전까진 법이며 범죄며 아무것도 몰랐던 애예요.”

2017년 3월 31일, 김씨는 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죄명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장애인 위계 등 간음), 주거침입, 무고. 장애가 있는 미성년자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하고 허위로 고소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악연의 시작은 그로부터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4월, 김씨는 가족을 두고 전남 곡성군으로 내려갔다.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가게를 운영해 보라는 지인의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선 휴게소와 가까운 한적한 동네의 빌라 1층에 집을 얻었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 일과가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건 2015년 말께. 같은 빌라 2층에 사는 50대 여성 정모씨가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다짜고짜 술김에 나한테 왔나봐요. 문을 열어줬더니 ‘네가 내 조카를 성폭행했냐’고 하더라고. 뭔일인가 해서 112에 바로 신고했지.”

나는 무죄입니다

“무죄가 선고됐다.”

간결한 판결 기사 뒤에 가려진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오늘날 수사 단계에선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지만,
재판 결과와 당사자의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히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명을 썼다가 뒤늦게 무죄로 밝혀진 이들의 사연은 더 길고 씁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고통이 스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희망을 찾고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사건 속 사람을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과 이들의 인생을 톺아봅니다.

📃 목록
EP1 멈춰버린 두 친구의 21년…영수증에 새긴 진실
EP2 작은 섬마을 노인의 눈물…50년 만에 꺼낸 이야기
EP3 잊을 수 없는 목소리…진범이 풀려났다
EP4 10년 동안 14번의 재판…귀농 부부에게 생긴 일
EP5 증거는 그를 가리켰다…조작된 현장의 비극
EP6 아버지 성폭행 누명 벗긴 딸의 고군분투
EP7 31년 만에 벗은 살인자 꼬리표…여전한 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