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강간 살인범 만들다…10살 아들 속인 조작된 연필

  • 카드 발행 일시2023.12.27

1972년,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용의자 정원섭

1972년 정원섭씨가 미성년자 강간치사·살인범으로 지목됐을 당시 보도된 신문.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1972년 정원섭씨가 미성년자 강간치사·살인범으로 지목됐을 당시 보도된 신문. 사진 진실화해위 제공

정원섭은 한때 목사였다. ‘집안에서 목사 한 명 나오게 해달라’는 부모의 기도 속에 193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 되던 해 자연스레 한국신학대학교(현 한신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방학 때마다 전국의 산골을 찾아 작은 교회를 개척할 정도로 열정적인 예비 목회자였다. 그랬던 그가 10세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인까지 했다니,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건 1972년 9월 27일 오후 8시쯤. 피해자는 춘천 역전파출소장의 딸 장모양이었다. 장양은 다음 날 마을 논길 한 구석에서 발견됐다. 작은 나체와 현장 상황은 전날 장양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격자도, 용의자도 없었다. 작은 동네의 모든 남성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첫 번째 단서는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음모(陰毛)였다. 경찰은 동네 남성들을 모두 불러 일일이 대조했다. 당시 38세였던 정원섭도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는 DNA 검사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여서 음모의 겉모양 만으로는 범인을 구별하기 쉽지 않았다.

9월 30일, 국가 치안을 책임지던 김현옥 당시 내무부 장관은 “경찰의 가족을 건드린 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담당 경찰관들에게 열흘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인사조치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진 지 딱 열흘 째 되던 날, 경찰은 정원섭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약 6개월 뒤 정원섭은 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수사팀 일부는 특진했고, 일부는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나는 무죄입니다


“무죄가 선고됐다.”

간결한 판결 기사 뒤에 가려진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오늘날 수사 단계에선 수많은 보도가 쏟아지지만,
재판 결과와 당사자의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히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명을 썼다가 뒤늦게 무죄로 밝혀진 이들의 사연은 더 길고 씁니다.
주변 사람에게도 고통이 스몄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희망을 찾고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사건 속 사람을 만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과 이들의 인생을 톺아봅니다.

📃 목록
EP1 멈춰버린 두 친구의 21년…영수증에 새긴 진실
EP2 작은 섬마을 노인의 눈물…50년 만에 꺼낸 이야기
EP3 잊을 수 없는 목소리…진범이 풀려났다
EP4 10년 동안 14번의 재판…귀농 부부에게 생긴 일
EP5 증거는 그를 가리켰다…조작된 현장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