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OTT’가 살아남는 법? 넷플도 1위 못한 이곳 봐라

  • 카드 발행 일시2023.12.27

❓따로 또 같이, 토종 OTT 생존법

2962억원. 지난해 티빙·웨이브·왓챠 등 국내 OTT 업체들의 영업손실을 합친 금액이다. 넷플릭스의 대항마를 자처하며 등장한 토종 OTT. 이들 중 서비스 개시 이래 흑자를 낸 OTT는 하나도 없다. 업계에선 토종 OTT가 계속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용자 확산에 한계가 있는 국내시장에서 지금처럼 경쟁하다간 공멸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예년과 다른 움직임이 감지됐다. 소문만 무성하던 티빙과 웨이브는 최근 합병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국제 OTT 포럼에선 토종 OTT 업체 대표들이 모여 ‘상생’을 외쳤다. 각자 구상에 따라 움직이되 필요할 때 뭉치는 일종의 ‘따로 또 같이’ 전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음은 토종 OTT와 관련된 20개 질문.

지난 10월 '제1회 국제 OTT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토종 OTT 관계자들. 왼쪽부터 허승 왓챠 이사, 최주희 티빙 대표, 이태현 웨이브 대표, 김성한 쿠팡플레이 대표. 연합뉴스

지난 10월 '제1회 국제 OTT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한 토종 OTT 관계자들. 왼쪽부터 허승 왓챠 이사, 최주희 티빙 대표, 이태현 웨이브 대표, 김성한 쿠팡플레이 대표. 연합뉴스


41. 토종 1위 쿠팡플레이라는데 맞나요.
쿠팡플레이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1월 쿠팡플레이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약 508만 명이었습니다. MAU는 OTT 업계의 한 달 성적표로 여겨지는 지표인데요. 쿠팡플레이는 넷플릭스(1141만 명)에 이은 2위이자 토종 OTT 중에선 1위입니다. 티빙(494만 명)과 웨이브(399만 명)를 제치고 4개월 연속 토종 OTT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쿠팡플레이의 MAU는 30% 이상 늘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에 밀리던 쿠팡플레이가 1년 사이 쾌속 성장했다는 지표로 인용됩니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보면 평가는 다릅니다. 쿠팡플레이가 스포츠 중계 등 이벤트성 콘텐트로 성적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아직 꾸준함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는 일간활성이용자(DAU)를 비교하면 알 수 있습니다. DAU는 특정 앱의 일일 이용자 수를 집계해, 한 달 평균값을 계산한 수치입니다. 만약 이용자 대다수가 서비스를 매일 꾸준히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하루만 이용하면 MAU는 높아도 DAU는 낮습니다. 쿠팡플레이의 11월 MAU는 508만 명이었지만, DAU는 60만 명에 그칩니다. 같은 기간 웨이브가 104만 명, 티빙이 119만 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쿠팡플레이는 MAU 대비 DAU가 경쟁사보다 낮은 편입니다. 이용자가 쿠팡플레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려면 반짝 이벤트가 아닌 꾸준히 오래 볼 수 있는 콘텐트를 발굴해야겠죠.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42. 토종 OTT 플랫폼별 이용자 특징이 있나요.
토종 OTT마다 강세를 보이는 성별과 연령대가 따로 있습니다. 티빙은 여성과 20~30대 이용자 비율이 높은 서비스입니다. 와이즈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티빙 이용자 성별 비중은 남성 36.6%, 여성 63.4%로 OTT 중 유일하게 여성 비율이 60%를 넘었습니다. 연령대별 비중을 보면 20~30대가 49.4%로 전체 이용자 중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합니다. ‘뿅뿅 지구오락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 등 20~30대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tvN 예능 콘텐트가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이브는 지상파 3사 콘텐트가 다 모여 있어 이용자들의 연령대별 비중이 가장 고르게 분포해 있습니다. 10대 이하 7.5%, 20대 20.7%, 30대 24.6%, 40대 29.4%, 50대 13.0%, 60대 이상 4.8%로 토종 OTT 중 이용자 연령대별 편차가 가장 적은데요. 또 지상파 드라마 ‘몰아보기’ 효과로 이용시간이 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모바일인덱스가 지난 8월 광복절 연휴 기간(12~15일) OTT 누적 사용시간을 분석한 결과 웨이브는 630만 시간으로 경쟁자 티빙(605만 시간)을 제치고 토종 OTT 1위를 차지했습니다.

쿠팡플레이는 40대 이용자 비율이 37.7%로 다른 OTT와 비교했을 때 유독 높은 편입니다. 상위 서비스인 쿠팡 이용자 중 40대가 많기 때문인데요. 쿠팡의 유료 멤버십인 ‘로켓와우’에 쿠팡플레이 이용권이 포함돼 있어 자연스럽게 유입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43. 어떤 콘텐트가 잘 팔리나요.
토종 OTT의 꾸준한 인기 상품은 방송 다시 보기 서비스입니다. “올해 티빙을 먹여 살린 건 예능”이라는 말이 업계에서 나올 정도로 tvN 예능이 티빙의 성적을 견인했는데요. 상반기엔 ‘서진이네’ ‘뿅뿅 지구오락실 2’(이하 지구오락실2), 하반기엔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이하 스우파2) 등이 있었습니다. ‘서진이네’와 ‘지구오락실2’는 올해 상반기 티빙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예능 1, 2위에 올랐고, ‘스우파2’는 높은 화제성과 더불어 티빙 동시간 전체 라이브 채널 중 실시간 점유율 94.8%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티빙에 예능이 있었다면 웨이브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상반기에 방영한 SBS 드라마 ‘모범택시 2’는 올해 웨이브 누적 시청시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종영한 MBC 드라마 ‘연인’은 웨이브가 독점 스트리밍해 하반기 웨이브 신규 유료가입 견인 콘텐트 1위에 올랐는데요. 지난 9월 파트 1이 종영하고 한 달간의 휴식기가 있었음에도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웨이브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입니다. 웨이브 측에 따르면 최근 방송가에서 보기 어려워진 일일 시트콤도 마니아층의 선호에 힘입어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 2000년대 초중반에 방영했던 지상파 인기 시트콤이 웨이브의 인기 상품입니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연인'은 올해 하반기 웨이브 신규 유료가입 견인 콘텐트 1위에 올랐다. 사진 MBC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연인'은 올해 하반기 웨이브 신규 유료가입 견인 콘텐트 1위에 올랐다. 사진 MBC


44. 돈 먹는 하마 오리지널 콘텐트, 적자인 OTT도 꼭 계속 만들어야 하나요.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토종 OTT에 오리지널 콘텐트는 ‘독이 든 성배’입니다. 성공하면 구독자도 늘고 업계 내 존재감도 키울 수 있지만, 실패하면 제작비 손실과 경영 악화라는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인데요. 그간 토종 OTT의 오리지널 콘텐트 중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거둔 작품이 드물기 때문에 더 부담스러운 선택지가 됐습니다.

티빙은 올해 드라마 ‘아일랜드’ ‘방과 후 전쟁활동’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과 예능 ‘만찢남’ ‘더 디저트’ ‘브로 앤 마블’ 등을 선보였는데요. 높은 제작비가 투입된 기대작들이었음에도 목표했던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웨이브는 서바이벌 예능 ‘피의 게임2’가 화제 몰이에 성공했지만,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거래’는 이나영·유승호 등 화려한 출연진에 비해 흥행이 아쉬웠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토종 OTT들은 내년에도 오리지널 제작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포화 상태인 OTT 업계에서 새로운 구독자를 끌어오려면 경쟁할 수 있는 신규 콘텐트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죠. 국내 OTT 업체 관계자는 “올해 디즈니+ ‘무빙’의 성공이 업계에 시사하는 의미가 컸다”며 “아무리 투자가 부담스러워도 결국 오리지널 콘텐트의 성공이 플랫폼의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이 확인된 사례였다”고 전했습니다.

티빙은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 등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했다. 사진 티빙

티빙은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 등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했다. 사진 티빙


45. 티빙과 웨이브, 합병 시도 이유는 뭔가요.
토종 OTT의 양대산맥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양측은 지난 5일 상호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는데요. 현재까진 주주사인 CJ ENM과 SK스퀘어 사이에서 큰 틀의 합의만 이뤄진 상황입니다. 합병이 구체화하면 CJ ENM이 최대주주에 오르고, SK스퀘어가 2대 주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티빙이 웨이브를 흡수하는 형태죠.

합병설만 무성하고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던 두 업체의 결합이 급물살을 타게 된 건 두 업체의 경영난과 관련이 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각각 1191억원, 1217억원이었는데요. 양측 모두 올해 들어 이용자 수가 소폭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있었지만, 불어난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업계에선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가 내년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한 상황에서 국내 업체 간 출혈 경쟁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46. 그동안은 왜 안 합친 거죠.
합병이 지지부진했던 건 두 업체의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SKT는 웨이브가 지주사의 본업인 통신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 OTT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니까 웨이브 보려고 통신사를 바꾸진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웨이브 모기업인 SK스퀘어는 투자사에 약속했던 웨이브 기업공개(IPO)를 내년 11월까지 완수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웨이브는 올해 유료 가입자 500만 명, 매출액 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사업을 이어왔지만, 지금까지의 추이(11월 유료 가입자 추산 440만 명)를 봤을 때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합병의 결정권은 티빙이 쥐고 있는데, 모기업 CJ ENM은 합병에 소극적인 입장입니다. 합병이 CJ ENM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티빙은 관계 채널 tvN과 티빙 오리지널 콘텐트의 경쟁력이 웨이브와 지상파 3사 콘텐트보다 우위에 있다고 봤습니다. 또 티빙이 CJ ENM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섣불리 합병을 결정할 수 없었죠. 지난 7월 부임한 최주희 티빙 대표 역시 요금제와 서비스 등 대대적인 개편을 시행하면서 티빙의 자력 생존을 위한 행보를 이어왔고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OTT 산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말을 듣고있는 최주희 티빙 대표와 이태현 웨이브 대표. 뉴스1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OTT 산업 현장 간담회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말을 듣고있는 최주희 티빙 대표와 이태현 웨이브 대표. 뉴스1


47. 둘이 합치면 넷플릭스 이길 수 있나요.
만약 티빙과 웨이브가 합치면 최근 상승세인 쿠팡플레이를 넘어서 토종 OTT 1위를 굳히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관건은 부동의 1위 넷플릭스를 상대할 정도로 체급이 올라갈지 여부겠죠. 데이터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티빙과 웨이브를 합친 월 사용자 수는 585만 명(중복 사용자 제외)으로 조사됐습니다. 같은 기간 넷플릭스 사용자 수 1167만 명의 50.1% 수준인데요. 산술적 결합만으로 넷플릭스를 넘어서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더 중요한 건 합병 이후입니다. 12월부터 티빙의 구독료는 인상되고, 내년 9월 웨이브와 지상파 3사 간 계약은 종료됩니다. 구독자 이탈을 예상할 수 있는 각각 다른 악재를 품고 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가 이를 어떻게 버틸지를 잘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