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평양 때릴 게 필요해” 박정희가 내민 ‘극비 메모’

  • 카드 발행 일시2023.11.29

1970년대 한국은 엄청난 안보 위기를 맞습니다. 미국은 ‘자신의 안보는 자신이 지켜라’는 ‘닉슨 독트린’을 내세우며 주한미군 지상군 1개 사단을 철수하더니 아예 주한미군 전체를 빼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군사력에서 북한에 뒤졌을뿐더러 소총 한 정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게 국산 최초의 지대지 탄도미사일 ‘백곰’입니다. 백곰을 만들어내기까지 흘린 수많은 피와 땀,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시죠.

 우리 손으로 완성돼 시험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백곰. 사진 플래닛미디어

우리 손으로 완성돼 시험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백곰. 사진 플래닛미디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971년 12월 26일, 방위산업과 중공업 발전을 담당하는 오원철 청와대 경제제2수석이 박정희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서재로 들어섰다. 대통령은 지도를 가리키며 오 수석에게 설명했다.

서울이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단 말이야. 40㎞밖에 안 돼. 북한군은 프로그(Frog) 미사일을 최전방에 배치했다는데, 서울이 사정권 내가 된단 말이야. 그런데 반대로 평양은 전선에서 160㎞나 떨어져 있어. 항공기로 폭격할 수밖에 없는데, 비행기로 가려면 폭탄 싣는 시간, 이륙하는 시간 등을 합치면 몇십 분이 걸리게 되지. (중략) 우리도 대항할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해.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가리킨 지도에는 손수 컴퍼스로 그린 여러 개의 동심원이 표시돼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50㎞, 100㎞, 150㎞, 200㎞의 거리가 빨간 색연필로 그려져 있었던 것. 박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6·25 후에 대전을 수도로 정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오 수석, 우리도 평양을 때릴 수 있는 유도탄을 개발하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겠네.

그러면서 탁자에 앉더니 메모지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은 대통령이 써주었다는 메모의 내용으로, 오원철의 『한국형 경제건설』(기아경제연구소, 1996) 제5권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