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불 드라마 왜 여기 푸냐고? “핏빛에 물든 디즈니 보려고”

  • 카드 발행 일시2023.11.14

고전하고 있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디즈니+)가 ‘K누아르’(범죄 등의 소재로 어두운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장르)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올해 드라마 ‘무빙’으로 구독자 수 상승 전환(3분기 기준)에 성공한 디즈니+ 후속작은 ‘최악의 악’과 ‘비질란테’다. 특히 ‘최악의 악’은 미국 비평 사이트 IMDb에서 올해 공개된 글로벌 OTT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점수(8.6점)를 기록했다. 총 1700여 명의 평가단 중 90%가 후한 점수(8~10점)를 줬다.

‘최악의 악’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경찰 박준모(지창욱)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인 강남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조직에 잠입해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박준모는 경찰 집안의 아내 유의정(임세미)보다 계급이 낮은 데다 마약중독자 아버지까지 둬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물. 그는 ‘두 계급 특진’을 조건으로 잠입 임무를 수행한다.

'최악의 악'은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의 첫사랑이 박준모(지창욱)의 아내인 유의정(임세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인물 간 얽힌 관계가 극의 핵심이 된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최악의 악'은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의 첫사랑이 박준모(지창욱)의 아내인 유의정(임세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인물 간 얽힌 관계가 극의 핵심이 된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줄거리만 놓고 보면 영화 ‘신세계’(2013년)와 같다. 더군다나 제작사까지 10년 전 ‘신세계’를 제작한 사나이 픽쳐스다.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작품. ‘최악의 악’을 연출한 한동욱(41) 감독에겐 이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는 맛’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게다가 이번엔 공략 대상이 한국 대중이 아닌 글로벌 ‘언더커버 장르’(※Undercover는 경찰이나 정부를 위해 특정 조직에 잠입해 활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등장하는 창작물이 늘면서 기존 수사물과 구분하는 시각이 있다.) 팬들이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최악의 악’ 마지막 회가 공개된 지난달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중에게 익숙한 언더커버물이지만 그 안에서 캐릭터 간 관계와 감정선에 더 집중하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극단적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 때문에 오히려 최악에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TMI 1분 요약

한동욱 감독은 민트색 맨투맨 티셔츠에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났다. “패션디자이너 선생님인 줄 알았다”는 농담에 “원래 멋지게 입고 다닌다”며 솔직함으로 맞받아쳤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자신을 ‘찌끄레기’(찌꺼기의 경상도 사투리) 감독으로 지칭하는 등 겸손한(?) 표현으로 홍보팀 직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찌끄레기’라는 표현을 기사에 그대로 사용해도 되냐고 묻자 한 감독은 “사실인데 뭐”라며 문제 될 게 전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최악의 악’이 영화 ‘신세계’와 비교되는 것을 일부러 피할 생각은 없었다고 밝혔다. ‘아는 맛’인 언더커버물의 장점을 가져가되,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로 차별화를 두려고 했다. 그는 “신세계는 ‘브로맨스’(남자 간 우정)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지만, ‘최악의 악’은 다양한 관계를 조명하는 멜로 치정물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배경에 대해서는 “90년대를 똑같이 구현하기보다는 ‘표현하자’는 데 방점을 뒀다”며 “그 시절 특성을 가지되 촌스러워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를 추구했다는 얘기다. 넷플릭스가 아닌 디즈니플러스와 손잡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키마우스를 좋아한다”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디즈니는 어린이를 위한 플랫폼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디즈니에서 범죄 관련 이야기를 다루면 더 멋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최악의 악’을 발판으로 디즈니가 좀 더 악해지고, 잔인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디즈니 파란색 로고도 빨갛게, 핏빛으로 물들여졌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용어사전📌일러두기
1 뭐 하는 사람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최악의 악' 연출을 맡은 한동욱 감독
2 왜 인터뷰
'무빙'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구독자 수 상승 전환을 이어가고 있는 K누아르 장르의 인기 비결을 듣기 위해
3 주요 경력, 대표작
'주먹이 운다'(2005) 조감독
'부당거래'(2010) 조감독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조감독
'신세계'(2013) 조감독
'남자가 사랑할 때'(2014) 감독, 각색
4 이 인터뷰를 읽어야 할 사람
디즈니 오리지널 '최악의 악'을 재미있게 봤다면
영화 '신세계' 팬으로 속편을 기다려왔다면
K누아르 장르를 즐기는 시청자라면
글로벌 OTT가 바꾼 콘텐트 업계 현장이 궁금하다면

'최악의 악'을 연출한 한동욱(41) 감독은 2013년 영화 '신세계'의 조연출을 담당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최악의 악'을 연출한 한동욱(41) 감독은 2013년 영화 '신세계'의 조연출을 담당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무간도’(2002년), ‘신세계’(2013년) 등 언더커버물은 독립된 장르로 봐야 하나. 
그렇다. 경찰의 조직 잠입 및 비밀 수사 이야기는 많이 쓰였다. 어쩔 수 없이 언더커버물은 ‘무간도’와 ‘신세계’ 같은 굵직한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작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최악의 악’은 언더커버를 큰 주제로 하지만, 풀어가는 이야기는 다르다. 젊은 느낌을 과감히 섞고 연출도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존 작품과는 분명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신세계’ 팬들이 ‘최악의 악’을 많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