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카누·트레킹 한번에…김창호 유산, 국내에 생겼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1.14

2013년 5월 20일, 4명의 한국 산악인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올랐다. 고인이 된 김창호(2018년 구르자히말에서 작고)·서성호(이날 에베레스트 캠프4에서 작고)와 안치영(46)·전푸르나(34)가 그 주인공이다. 그해 5월에만 전 세계 산악인 3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올랐지만, 이들의 등행(登行)은 남달랐다.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의 시작은 ‘해발 0m’ 벵골만이었다. 3월 14일 인도 갠지스 강 하류에서 카야킹(Kayaking)으로 시작해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80여일 동안 오직 두 팔과 두발만을 이용해 세계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갠지스 강에서 콜카타(해발 5m)까지 카약을 타고 160㎞를 노 저어 간 뒤, 콜카타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 툼링타르(해발 400m)까지 1000㎞ 온·오프 로드를 자전거로 갔다. 그리고 오지마을 툼링타르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BC·5300m) 빙하 지대까지 100㎞를 두 발로 걸었다. 김 대장과 서성호는 BC에서 정상을 오를 때도 인공산소를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소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성호는 정상에 오른 그 날 캠프4(7950m)에 내려와 숨졌다. 사인은 산소 부족으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날 히말라야 8000m를 인공산소 없이 24시간 걸었다. 초인과 같은 행보였지만, 마지막 몇 시간을 이기지 못했다.

원정대원의 죽음으로 김창호·서성호의 남다른 여정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까지 퇴색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도전은 동력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제로투서밋(Zero to Summit)을 실현한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산에 갈 때 짐은 가벼워지고, 성취감은 충만해진다. 에코 트레일의 매력이다. 김창호 대장의 유산은 ‘제로투서밋’ 또는 ‘씨투서밋(Sea to Summit)’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씨투서밋은 ‘해발 0m’에서 산 정상까지 오롯이 두발에 의지해 오른다는 뜻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김창호 대장에 앞서 몇 차례의 씨투서밋 원정이 있었다.

지난 11일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씨투서밋 참가자들. 자전거·키누·트레킹 중 첫번째 종목이다. 사진 몽벨

지난 11일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씨투서밋 참가자들. 자전거·키누·트레킹 중 첫번째 종목이다. 사진 몽벨

지난 10일부터 이틀 동안 충북 충주시 남한강 일대에서 ‘씨투서밋 35㎞’ 이벤트가 열렸다. 자전거(20㎞)·카누(6㎞)·하이킹(9㎞)을 접목한 에코 트레일로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이 주최했다. 익스페디션(Expedition)이라고 하기엔 다소 짧은 코스였지만, 카누를 처음 접한 이들에겐 힘이 부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몽벨은 10년 전 김창호 대장의 제로투서밋 원정을 후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올해 첫 행사인 몽벨 제로투서밋은 백패킹(Backpacking, 모든 짐을 지고 가는 트레킹)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개회식은 전날 야영장에서 치러졌다. 캠프는 충주호 서쪽 옛 목계나루터 자리인 목계솔밭캠핑장. 대부분의 참가자가 1~2인용 작은 텐트를 쳤고, 저녁도 간소했다. 보통의 오토캠핑장처럼 화롯대에 불 피고 고기 굽는 광경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33명의 참가자는 10여명의 ‘몽벨 크루’ 멤버들과 10여명의 ‘마이카누’ 동호회원, 그리고 기자와 같은 게스트 10여명으로 꾸려졌다. 내년 1회 대회를 앞두고 치러진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일반인 대상 공개모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3년 김창호 대장의 제로투서밋 원정대. 왼쪽부터 서성호, 안치영, 김창호, 전푸르나, 오영훈. 사진 몽벨

2013년 김창호 대장의 제로투서밋 원정대. 왼쪽부터 서성호, 안치영, 김창호, 전푸르나, 오영훈. 사진 몽벨

강을 따라 자전거 라이딩 20㎞

지난 11일, 씨투서밋 참가자들이 충북 충주시 탄금호야영장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다. 김영주 기자

지난 11일, 씨투서밋 참가자들이 충북 충주시 탄금호야영장 자전거 길을 달리고 있다. 김영주 기자

11일 오전 8시,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목계솔밭캠핑장(충주 중앙탑면 장천리)에서 탄금공원 수상스키장(충주시 금릉동)까지 20㎞ 자전거 라이딩이 시작됐다. 34대의 자전거가 출발선을 끊고 남한강 자전거길로 들어섰다. 캠핑장을 나서자마자 38번 국도 목계대교와 평택-제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했다. 이 자전거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 400㎞를 달리면 낙동강 하류 을숙도에 도착한다. 또 한강 팔당대교를 기점으로 치면 남쪽으로 약 110㎞ 내려온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