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동거’ 예언한 전문가 “주식도 집값도 더 떨어진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0.31

머니랩

5% 쇼크

최근 ‘마의 5%’ 벽을 뚫고 튀어 올라 아시아 금융시장을 강타한 미국 국채 금리 얘기입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5시 직후(현지시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5.001%까지 올랐습니다. 세계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죠. 이후 월가 거물의 경기 침체 논쟁에 숨 고르기를 하던 미국 국채 금리 10년물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또다시 ‘5%’ 선을 넘었습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 세계 중장기 자금 시장 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가장 신용도가 좋은 국가에서 연 5%에 가까운 이자율에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은 커지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릅니다. 투자 측면에서 ‘고금리 국채’의 매력이 커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엔 부담이 됩니다.

지난 23일 코스피는 미국발 고금리 쇼크에 2300선이 무너졌습니다. 약 10개월 만이죠. 이달 들어 27일까지 6.6% 급락(27일 종가 기준)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2차전지와 반도체 열풍으로 반짝 상승세를 타던 주가가 다시 그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죠. “그동안 뭘 한 거냐”는 푸념이 개미들 사이에서 나올 법도 합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은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한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처럼 미국의 정책금리와 시장금리는 국내 주택담보대출 금리부터 기업의 대출금리, 주식·부동산 등 모든 자산 가격에 영향을 끼칩니다. 모든 키를 쥔 미국의 금리 향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머니랩은 이번 기회에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애널리스트를 심층 인터뷰해 ‘미 국채 쇼크’의 배경과 금리 전망, 그에 따른 투자법 등을 짚어보겠습니다. 배 연구원은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이 ‘조만간 긴축 강도가 완화할 것’이라고 외칠 때 ‘고금리 장기화에 대비하라’고 주장한 채권 전문가입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을 채권 전문가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 『부동산을 공부할 결심』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투자자의 관심이 큰 집값도 달라진 금리 환경에 맞춰 분석했습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애널리스트. 그는 "고금리와의 오랜 동거를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애널리스트. 그는 "고금리와의 오랜 동거를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POINT 1. 시장의 변심 뒤 찾아온 ‘美 국채 쇼크’ 

지난 추석 전후로 만기 10년 이상인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뛰면서 국내 채권금리도 오르고 주식시장도 크게 위축했습니다. 이른바 ‘미 국채 쇼크’가 생긴 건데, 원인은 무엇인가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일각에선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 기준금리와 채권시장 금리가 꽤 오래갈 것이란 의견은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금리 장기화론’인데요. 올해 상반기까지는 이런 전망이 시장의 대세론으로 떠오르지 않다가, 추석을 지나면서 시장의 컨센서스(합의된 예측)가 됐습니다. 그 배경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2%대로 안착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과 미국의 경기 침체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죠.  
올해 상반기만 해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조만간 피벗(Pivot·긴축 완화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을 증권가 보고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갑작스럽게 약속이나 한 듯 ‘고금리 장기화론’이 대세가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불을 지핀 건 미국의 고용·경기 지표입니다. 연초부터 고용 지표가 견조하게 나올 때마다 미국 국채 금리는 들썩였죠. 고용이 위축되면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으로)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텐데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 겁니다. 시장은 언젠가 소비·투자가 위축돼 실업률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틀리는 상황이 올 초부터 반복됐죠. 더욱이 고용은 일시적으로 견조한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조업·주택 투자가 살아나면 단순 서비스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엔지니어·건설노동자 등 고임금 고용도 창출되겠죠. 경제 성장 관련 지표도 나쁘지 않고요. 경제지표가 잇따라 ‘호조’를 띠면서 시장 전망이 바뀐 겁니다.

※ 올해 3분기 미국 경제성장률(GDP 증가율)은 2분기 대비 연율 4.9%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4.7%)보다 높은 데다 2분기(2.1%)의 2배를 웃도는 성과다. 고용 시장도 탄탄하다. 미국의 지난 9월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는 전월보다 33만6000명 늘었다. 월가 예상치(약 17만 명)의 2배 수준이다.  

두 번째 요인은 수급입니다. 장기 채권 금리가 서서히 오르던 상황에서 미국의 장기 국채 발행 확대가 트리거(방아쇠)가 됐죠. 미국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BAC)는 단기채 비율을 전체 국고 잔액의 15~20%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는데요. 미 재무부는 3분기 국채 발행 계획을 기존 960억 달러(약 130조원)에서 1030억 달러(140조원)로 늘린다고 지난 7월에 발표했습니다. TBAC의 권고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맞춰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미국의 구조적인 정부 부채 확대를 우려하며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AAA→AA+)했죠. 시장에 채권 공급은 느는데, 신용등급 하락의 주요한 근거인 미국의 재정적자가 구조적으로 심화할 거라는 전망이 투자 수요를 위축시키면서 수급이 꼬여버린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국제 정세입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탓에 미국 재정적자가 심화하는 와중에,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까지 발생했습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우크라이나는 물론 이스라엘도 지원하자며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계획을 내놓으면서 재정적자 심화 요인은 부각됐죠. 이 때문에 미국 국채 금리가 더 뛰어오른 겁니다.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오르면 달러값도 강세를 띠죠.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한 중국과 일본은 환율 방어(자국 통화가치 하락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채권 수익률이 높아지면 미국 국채를 더 살 만한데도 환율 방어 탓에 이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미국 장기국채(10년물) 금리가 4.5%면 장기적으로 충분한 수준일 거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제 정세와 관련한 수급 요인 탓에 (채권값이 하락으로 금리가 오르며) 5%대를 가볍게 뚫은 겁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