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 잡지마요, 포기하세요” 달마고도 닦은 스님의 걷기법

  • 카드 발행 일시2023.10.03

“스님, 저는 걷고 있어도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잡념이 가시지 않아요.” 기자가 물었다.

그걸 잡고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빨리 포기해야 돼.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수행이에요.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건 과거의 일을 끌어온다는 것, 또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지금이 복잡해지는 거잖아요. 잡념 속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요. 추측, 상상만 할 뿐이죠. 현재의 답이 될 수 없어요. 그럴 땐 얼른 포기해야죠.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니까.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매 순간순간 마음이 고요해야 지혜가 나옵니다.

“스님은 어떻게 걸으십니까.”

여기 이 소나무 보세요. 비 온 뒤에 솔잎에 맺힌 이슬이 너무 예쁘지 않아요? 저기 있는 저 칡도. 며칠 전까지 칡덩굴에 예쁜 보랏빛 꽃이 달려 있었는데,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그걸 봐야 합니다. 현재의 것을. 걱정을 안고 있으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못 보게 됩니다. 저는 걸을 땐 온전히 숨을 쉬고 다리로 걷는 데만 집중합니다. 그게 가장 좋아요. 안 되면 연습해 보세요. 숨을 천천히 세 번 들이마시고, 천천히 네 번 내뱉고. 나무를 보고, 풀을 밟고, 발의 감촉을 느끼고. 이렇게 지금을 느껴야 해요. ‘아! 지금 내가 살아있구나’ 이걸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늘 행복합니다.

‘명퇴’ 금강스님과 산성 걷기   

금강스님이 지난달 15일 경기도 안성시 죽주산성을 걷다 떨어진 오동나무 잎을 주워 들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금강스님이 지난달 15일 경기도 안성시 죽주산성을 걷다 떨어진 오동나무 잎을 주워 들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금강스님의 걷기 솔루션이다. 가을비가 오락가락한 지난달 15일, 경기도 안성시 죽주산성 서문 성벽 위를 걸으며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죽주산성은 금강스님이 지난 3월 둥지를 튼 안성참선마을(구 활인선원)에서 약 5㎞ 떨어진 곳이다. 선원 뒷마당에서 시작해 능선을 올라 비봉산까지 한 시간, 다시 비봉산 정상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산성까지 한 시간 걸린다.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명상했다.

스님은 2년 전 전남 해남 미황사 주지를 은퇴했다. 속세의 나이로 55세에 주지에서 물러났으니 명퇴한 셈이다. 그전까지 21년간 미황사 주지를 했다. 미황사에 든 게 1989년이니 32년 만에 고향의 절을 등지고 서울 근교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그는 남도의 명산 두륜산 자락 아래 해남군 삼산면 용전리에서 태어나 17세에 두륜산 아래 명찰 대흥사로 출가했다.

금강스님은 지금의 미황사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1989년 스님이 처음 미황사에 들었을 때, 절 안의 법당이라곤 대웅전 하나뿐이었다. 가람은 수풀과 덩굴에 묻혀 폐허나 다름없었다. 스님은 지게를 짊어지고 미황사 소지부터 시작했는데, 그래서 절 아래 사람들은 ‘지게 스님’이라 불렀다고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배운 농사일이 몸에 배어 익숙했다. 이후 30년간 끊임없이 중창해 지금은 24채의 법당과 요사채 등을 갖춘 명찰로 거듭났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대중에 문을 연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한국 불교와 참선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창이 됐다. 이후 템플스테이를 따라 하는 절이 많아졌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중에게 문을 연 곳은 미황사뿐이었다. 세계에서 오는 모든 이에게 문을 열고 참선과 수행법을 전수했다.

금강스님과 다담 중, 스님이 준비 중인 참선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금강스님과 다담 중, 스님이 준비 중인 참선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 5부 능선을 한 길로 연결한 달마고도(達摩古道)는 그의 역작이다. 그가 인도의 아루나찰나, 티베트의 카일라스 순례길(코라)을 다녀와 “대중을 위한 수행 길”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꼬박 1년간 공을 들여 2017년 완성한 달마고도는 지금은 국내 트레커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그런 역사와 정이 깃든 고향땅과 작별했지만, 스님의 마음은 지금이 더 고요하다고 한다.

“중에게 고향 가까운 절은 족쇄지요. 내가 잘 못하면 부처님이 욕을 먹잖아요. 또 미황사는 전통 사찰이라서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예불과 법문에, 대중과도 가까이 지내야 해서 온갖 애경사를 다 다녀야 합니다. 대중과 멀어지면 안 되니까요. 여기는 좀 더 편안해요. 이렇게 걷기도 하고, 선원 뒷마당에 있는 바위에서 명상도 하고요.”

이곳에선 어떤 수행을 합니까?
“일반인을 위한 수행, 참선 수행을 같이 해보려고 합니다. 전에 미황사에서도 ‘참사람의 향기’라는 선명상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걸 확대해서 해볼까 합니다. 참선으로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이런 식으로요. 석 달 체험은 같이 일하면서 걷고 농사짓고 수행하는 것이지요. 미황사에 있을 때 땅끝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대중에게 좀 더 가까운 도량에서 함께 수행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