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식당서 웬 갓김치? 힙지로서 발견한 반전 가게

  • 카드 발행 일시2023.09.20

⑨미얀마 이주민의 세련된 맛과 공간의 ‘반전가게’ 칠루칠루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역 일대는 젊은 세대 사이에선 ‘힙지로’로 불린다. ‘유행에 밝다’ ‘새롭고 개성 있다’는 의미의 ‘힙(Hip)’과 을지로의 ‘지로’를 합친 말이다. 1968년 들어선 세운상가를 비롯해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도심의 ‘숨은 보물’이다. 숱한 인쇄소 사이에 오래된 점포들이 즐비하다.

낡고 허름한 건물에 자리 잡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재봉틀·자개장·전통약장 등 복고풍 소품으로 장식하고 커피나 이탈리아 음식 등을 파는 감성적이고 세련된 실내가 손님을 맞는다. 복고 감성과 젊은 감각이 어우러진 현장이다. 겉만 보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해서 ‘반전가게’로 불린다. 반전가게들은 젊은이들을 부르는 자석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 힙지로에 자리 잡은 미얀마 음식점 ‘칠루칠루’

이런 힙지로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서울 중구청 맞은편에 ‘칠루칠루(ChilluChillu)’라는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습으로 들어선 미얀마 식당이다.

이주민을 만나기 쉬운 경기도의 어느 도시가 아닌, 한국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서울 을지로4가에서 미얀마 식당을 볼 줄은 몰랐다. ‘칠루칠루’는 미얀마어로 ‘사랑해서, 사랑해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 대도시의 세련된 젊은 감각이 묻어난다.

외부가 온통 그래피티풍 그림으로 장식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의 1층에 ‘미얀마 식도락 기행’이라는 입간판이 보였다. ‘OPEN DATE 2022년 11월 1일’이라는 개업 일자 아래, 사진과 함께 메뉴를 소개하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샨 카욱쉐(비빔쌀국수)
미얀마의 대표 쌀국수, 토마토와 닭고기가 듬뿍 들어간 소스와 쌀국수 면을 함께 먹는 전통음식
✔️오노 카욱쉐(코코넛 커리 국수)
버마족 주식, 코코넛밀크가 들어가 부드러운 풍미의 커리수프에 달걀면을 함께 먹는 전통음식
✔️버즘힌(새우커리)
새우와 미얀마풍의 부드러운 코코넛 커리를 함께 즐기는 미얀마 퓨전 요리
✔️웨파힌(삼겹살 커리)
수비드(sous-vide)해 부드러운 삼겹살과 풍성한 야채 토핑을 함께 즐기는 미얀마풍 퓨전 커리
✔️몽롱예뻐(Mont Lone Yay Paw·전통떡)
추석 송편처럼 미얀마의 띤잔 명절 연휴에 가정에서 빚어 먹는 미얀마 찹쌀떡
✔️러펫예(밀크티)
미얀마 현지의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달콤쌉싸름한 밀크티

용어사전수비드

프랑스어 sous-vide. 밀봉된 봉지에 담긴 음식물을 정확히 계산된 온도의 물로 천천히 가열하는 조리법. ‘밀봉된, 진공하에서’라는 의미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미얀마의 음식문화

안내는 엘리베이터 입구는 물론 내부에서도 이어졌다. 이국적인 미얀마의 음식문화를 한국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열정이 느껴졌다.

인도주의 업무로 미얀마에 거주한 적이 있는 박지해씨와 동행했다. 박씨는 “카욱쉐는 국수, 버즘은 새우, 웨파는 돼지고기, 힌은 커리, 쪼는 볶음면”이라고 알려줬다. 박씨는 “미얀마는 다양한 음식문화로 유명하다”며 “로힝야인도 ‘라카인 음식점’이라는 이름으로 최대 도시 양곤 등에서 영업하는데, 인기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용어사전미얀마

미얀마는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68%를 차지하는 버마족이 다수이며 9%의 샨족, 7%의 카렌족, 2%의 몬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동남아시아 계열 불교도로 쌀을 주식으로 먹는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로힝야인은 서부 라카인주에 주로 사는 인도 유럽계 무슬림이다. 음식에 나오는 ‘샨’이나 설명에 나오는 버마족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샨 카욱쉐’는 ‘샨족의 국수’라는 말이다. 쌀이 풍부한 만큼 국수는 쌀국수를 가리킨다.

세련된 도시 감각의 반전 외국 음식점

2층은 생각보다 넓었다(275㎡). 밝고, 깔끔하며, 흰색과 오렌지색이 조화된 세련된 색상의 공간이 손님들을 맞았다. 천장도 높았다. 배관 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현대적 도시 디자인이었다. 망명자나 이주민이나 고향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눠 먹고 관심이 있어 찾아온 한국 손님들에게 소개해 주는 좁고 복잡한 공간을 상상한 사람에게 칠루칠루는 분명 ‘반전 외국 음식점’이다.

새우와 삼겹살 꼬치.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새우와 삼겹살 꼬치.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입구에서 이미 음식 정보를 충분히 익혔기에 메뉴를 받자마자 주문을 했다. 샨 카욱쉐에 따뜻한 닭고기 육수를 부은 국물국수 요리인 ‘샨 카욱쉐 이에’와 달걀과 반죽한 면에 코코넛 커리를 부은 버마족 음식인 ‘오노 카욱쉐’, 복음면 요리인 ‘카욱쉐 쪼’, 그리고 새우와 돼지고기 꼬치를 주문했다. 미얀마의 국수를 고루 맛보려는 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