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영화 본 중국군 기막혔다, 시진핑 “정의의 전쟁”의 궤변

  • 카드 발행 일시2023.09.06

제3부: 시진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제6장: 시진핑은 왜 6·25 전쟁을 “정의의 전쟁”이라 말하나

한국 전선으로 향하는 중국군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압록강을 줄지어 건너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전쟁을 침략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강변한다. 중앙포토

한국 전선으로 향하는 중국군이 군악대의 연주 속에 압록강을 줄지어 건너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전쟁을 침략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강변한다. 중앙포토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운) 전쟁은 평화를 보위하고(保衛和平) 침략에 항거한(反抗侵略) 정의의 전쟁(正義之戰)이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의 해인 2010년 10월 25일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중국의 한국전 참전 6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어떻게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 되는가?

당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거센 비난을 야기했던 시진핑의 이 발언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과 함께 시진핑이 한국인의 가슴에 좀처럼 씻기 어려운 상처를 안긴 두 가지 말 중 하나다. 한국전쟁은 각국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긴 한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미국은 ‘잊힌 전쟁’, 그리고 중국에선 ‘항미원조 전쟁’으로 기억된다.

시진핑 역사왜곡은 어떤 맥락에서 나오나

시진핑은 문제의 발언이 있은 지 10년 후인 2020년 10월 23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의 해에 중국 국가주석으로서 행한 연설에서도 “중국인민지원군이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항거하는 정의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이 정의로운 전쟁을 벌였다는 관점에 조금도 변화가 없다. 2010년 연설 때 ‘정의’를 아홉 차례 언급했는데 2020년 연설에서도 여덟 번이나 ‘정의’를 외쳐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 상식에도 어긋나고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하는 시진핑의 발언은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되는 걸까. 한국전쟁에 대한 성격을 중국의 입장에 맞춰 각색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한다. 시진핑의 2010년 연설은 “60년 전 발생한 그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것이다. 조선 내전이 터진 후 미국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병사를 보내 무장간섭에 나서 조선에 대한 전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2020년 10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중국의 한국전 참전 7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이날 기념훈장을 받은 참전군인 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신화망

2020년 10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선 중국의 한국전 참전 7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이날 기념훈장을 받은 참전군인 대표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신화망

이어 미군이 “중국 정부의 여러 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미국이) 삼팔선을 넘어 중·조(中朝) 변경의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육박하며 항공기가 중국의 동북 변경지역의 도시와 농촌을 폭격하는 등 전화(戰火)가 중국의 영토에까지 미쳤다”고 주장한다. 2020년 연설에선 이 대목 앞에 미국이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침입시켰다는 걸 추가해 중국의 안보와 인민의 생명이 중대한 위협에 처했다는 걸 강조한다.

중국, 북한의 남침 사실은 언급 안 해

시진핑의 논리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내전이니까 남북한이 알아서 해결할 일인데 미국이 무장 개입했고 그 전쟁의 여파가 중국의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돼 참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 사실은 쏙 빠져 있다. 이 같은 역사관은 중국 교과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중국 고등학교 역사 교재로 중국사를 다룬 중외역사강요(中外歷史綱要) 상권에 나와 있는 한국전쟁 관련 부분을 보자.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터졌고 미국은 즉각 무장간섭을 시작하며 동시에 제7함대를 대만해협에 침투시켜 중국의 통일대업을 방해했다. 미국은…삼팔선을 넘어 중·조 변경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육박하는 등…중국의 국가안보를 엄중하게 위협했다. 1950년 10월 조선정부의 요구에 따라…마오쩌둥(毛澤東)은…중국인민지원군을 파견해 항미원조, 보가위국(保家衛國, 집과 나라를 지키다)하도록 했다.”

2021년 9월 개봉한 중국의 ‘국뽕’ 영화 ‘장진호(長津湖)’ 포스터. 사진 바이두

2021년 9월 개봉한 중국의 ‘국뽕’ 영화 ‘장진호(長津湖)’ 포스터. 사진 바이두

이 같은 논리는 대중을 겨냥한 중국 ‘국뽕’ 영화에 그대로 이어진다. 항미원조 71주년이자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2주년을 기념해 2021년 9월 30일 개봉한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장진호(長津湖)’가 대표적이다. 한담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HK 연구교수에 따르면 영화는 맥아더 미 장군의 인천상륙작전부터 보여줌으로써 애초에 이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걸 삭제한다.

대신 중국 단둥(丹東)에 대한 미군의 폭격, 대만해협에의 미 함대 배치, 군사분계선인 38선을 넘는 미군을 보여줘 이 전쟁이 마치 중국으로선 피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린다. 이에 마오쩌둥은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국내외 적들이 우리를 약하고 만만하게 볼 것이다(軟弱可欺)”라며 참전을 결정한다. “약하고 만만하게 볼 것”이란 말은 아편전쟁 이후 ‘치욕의 한 세기’를 보낸 중국 인민의 집단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