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을 중국 일부라 했나…이제야 드러났다, 시진핑 속내

  • 카드 발행 일시2023.08.30

제3부: 시진핑의 중국 어디로 가나

제5장: 시진핑은 왜 한국을 중국의 일부라 말했을까?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의해 알려져 한국에 큰 충격을 줬다. 사진은 시진핑(오른쪽) 주석이 2017년 4월 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사진 신화망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말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의해 알려져 한국에 큰 충격을 줬다. 사진은 시진핑(오른쪽) 주석이 2017년 4월 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사진 신화망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이야기했다. 몇 천 년의 역사와 많은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10분 정도 듣다 보니 이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밝힌 2017년 4월 6~7일 미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있었던 시진핑과의 대화 일부 내용이다.

시진핑의 발언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당시 한국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혼란에 처해 있었던 탓일까, 시진핑의 말에 한국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가 “한국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논평을 냈을 뿐이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한국 국민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애매한 말로 넘어갔다.

시진핑 역사관은 중국 역사관을 지배한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의 말이 상기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아무 의심 없이 당연히 한국의 것으로 여겨지던 김치와 한복 등에 대해서도 중국이 종주권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철없는 네티즌이 벌이는 행동이 아니다.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김치를 담근 뒤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포즈를 취한 게 바로 이태 전의 일이다.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중국에서 지도자 임기 제한을 없애고 ‘유일한 존엄’이 된 시진핑의 역사관은 중국의 역사관을 지배한다. 시진핑이 어떤 역사관을 갖느냐가 한·중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일 것이다.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의 발언이 비록 6년 전의 일이긴 해도 이제 다시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2021년 1월 당시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김치 담그는 모습을 중국 정부의 공식 계정이기도 한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중국이 김치 종주권을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사진 트위터

2021년 1월 당시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김치 담그는 모습을 중국 정부의 공식 계정이기도 한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중국이 김치 종주권을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사진 트위터

시진핑은 기자조선(箕子朝鮮)이나 위만조선(衛滿朝鮮) 또는 한사군(漢四郡) 설치 등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중국의 일부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북한이 아닌 한국의 이야기라고 트럼프가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과 조공책봉(朝貢冊封)의 관계를 가진 주변 국가들을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해볼 수 있겠다.

조공체제 대신 종번체제 부상

손성욱 선문대 역사영상콘텐츠학부 교수에 따르면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20세기 중반 미국의 존 페어뱅크는 ‘중국적 세계질서(Chinese World Order)’로 ‘조공체제(tribute system)’를 제시했다. 조공체제는 상하 위계가 존재하는 비대칭적 관계다. 이를 통해 주변국은 중국을 상국으로 인정하며 군사적 안전보장과 경제적 이익 및 선진문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반면 중국은 패권국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변방의 안전을 평화적으로 도모할 수 있었다. 서양의 근대 조약체제와는 다른 독특한 국제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년 중국 학계에선 조공체제 대신 종번(宗藩)체제란 용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 쑹녠선(宋念申) 칭화대학 교수와 왕위안충(王元崇) 미 델라웨어대학 교수를 들 수 있다.

청나라 때 조공국 사신들이 입조하는 모습을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사진 베이징고궁박물관

청나라 때 조공국 사신들이 입조하는 모습을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사진 베이징고궁박물관

쑹녠선에 따르면 ‘조공(tributary)’은 로마제국의 부(富)의 교환을 뜻하는 용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조공을 통해 중국의 대외 관계를 설명할 경우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페어뱅크는 ‘조공체제’를 서구의 ‘조약체제’와 대비해 극복해야 할 전통적 시스템으로 봤기 때문에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갖는 다양한 모습을 단순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왕위안충은 그래서 역사성을 지닌 종번체제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볼 것을 주장한다. 서주(西周) 시대부터 시작된 종번관계는 본래 종(宗)은 천자(天子)를, 번(藩)은 번봉(藩封)을 받은 혈연 관계의 황실 구성원을 뜻했다.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세계가 천하(天下)였다. 이처럼 국내 질서에서 발전한 종번은 이후 황제와 중원 왕조에 조공하는 국가 간의 군신 관계로 확대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