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삶은 반나절이었다, 남산의 ‘하얀 드레스’ 정체

  • 카드 발행 일시2023.08.14

비 오는 날 아침 8시, 서울 남산 산책 중에 귀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나무 숲에서 하얀 드레스를 두른 채였습니다.
순간 탄성이 절로 났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까요.

망태말뚝버섯

망태말뚝버섯

새하얀 드레스를 두른 이 친구는 ‘버섯의 여왕’이라 불리는 망태말뚝버섯입니다.
온전히 균망을 펼치면 마치 하얀 드레스를 펼친 것마냥 곱기에

‘버섯의 여왕’이라 불리는 겁니다.

여왕다운 자태에 비해 이름은 그다지 곱지 않습니다.

망태는 드레스처럼 생긴 균망이 망태를 닮아서이고,
말뚝은 흰 대가 말뚝과 닮아서 이름 붙여진 겁니다.

노랑망태말뚝버섯

노랑망태말뚝버섯

새하얀 망태말뚝버섯과 생김은 같으나 색이 노란 노랑망태말뚝버섯은
해마다 남산에서 눈에 띕니다.
이 노란 친구들은 숲속이나 산의 혼합림에서 주로 서식하며 개체 수도 제법 많습니다.
그러니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남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얀 망태말뚝버섯은 서울에서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대체로 남쪽의 대나무 숲에서 주로 서식하기에 그렇습니다.
이렇듯 보기 쉽지 않은 ‘버섯의 여왕’을 남산에서 난데없이 만난 겁니다.
그러니 만나자마자 환호성이 절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말뚝 부분이 부러진 채였습니다.
온전히 드레스를 펼친 게 아니라 부러져 주저앉은 채였던 겁니다.
애석했습니다.
온전한 여왕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애석할밖에요.

혹시나 하여 주변을 수색해 봤습니다.
달걀 같은 알이 땅속에 박혀 있는 걸 찾았습니다.
바로 어린 균입니다.
다음 날이면 껍질을 째고 피어날 듯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6시, 다시 남산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