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할머니와 아랍 청년…둘의 사랑 깬 ‘슬픔의 음식’

  • 카드 발행 일시2023.08.09

③ 서울 용산 녹사평역…‘고난과 화해의 맛’ 아랍 음식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주변은 이방지대다. 커다란 눈에 히잡을 곱게 쓴 여성과 수염을 길게 기른 남성이 오간다. ‘할랄’(허용된 것이라는 뜻) 표시를 붙인 아랍‧튀르키예‧이슬람 음식점이 즐비하다. 지중해 문화가 바탕인 아랍 음식으로 이 땅의 음식문화를 풍요롭게 해주는 글로벌 음식의 ‘수원지(水源地)’다.

프로들이 운영하는 듯한 튀르키예 음식점에는 예외 없이 한국어에 능통한 현지인 직원이 있다. 하지만 아랍 음식점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말이 능숙한 아랍인 주인이나 직원이 한국말로 주문을 받거나 한국인 직원을 쓰는 가게만 있는 게 아니다.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 식당은 물론 프랑스어로만 주문을 받는 가게도 있다. 취급하는 음식도, 맛도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다. 개성이 넘친다. 국적도, 숨은 사연도 그만큼 다양하다. 김치·된장찌개‧닭볶음탕‧양념치킨 등 한국 음식을 무슬림에게 파는 ‘할랄 한식당’도 있다. 술이 없다는 공통점은 있다.

이 지역에 아랍 식당이 여럿 생긴 것은 1976년 이곳과 가까운 한남동 언덕에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일명 이태원 마스지드 또는 모스크)이 건립되면서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가 성금을 보내 세워졌다.

1976년 5월 이태원에 가까운 한남동 언덕에 문을 연 한국이슬람 중앙성원(일명 이태원 마스지드). 건설시장을 중심으로 중동 진출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이 추진돼 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국가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그 뒤 자연스럽게 한국 메나(MENA·중동북아프리카) 이주민 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인근 용산구 일대가 아랍·튀르키예·파키스탄 등 이국적인 음식문화가 한국에 확산하는 관문이 됐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1976년 5월 이태원에 가까운 한남동 언덕에 문을 연 한국이슬람 중앙성원(일명 이태원 마스지드). 건설시장을 중심으로 중동 진출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이 추진돼 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국가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그 뒤 자연스럽게 한국 메나(MENA·중동북아프리카) 이주민 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인근 용산구 일대가 아랍·튀르키예·파키스탄 등 이국적인 음식문화가 한국에 확산하는 관문이 됐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중앙성원 입구에는 푸른 타일 위에 이슬람 신앙고백(샤하다)인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술룰라’라는 아랍어가 보이고, 문 위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라는 번역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금요 예배는 아랍어‧영어‧한국어로 진행된다. 한국 속의 중동이자 이슬람권이다.

인근에 이슬람 센터와 서점, 할랄 육류(이슬람식으로 도축)를 파는 정육점과 수퍼, 음식점과 제과점 등이 몰려 있다. 무슬림 이주민이 이슬람력으로 12월인 ‘두 알히자(순례월)’에 메카를 정규 성지순례하는 하지(또는 하즈)나 순례월이 아닐 때 메카를 찾는 움라, 또는 이슬람 명절 고향 방문 등을 위한 여행사와 항공사 등도 함께 보인다.

마스지드는 학교(이곳에는 유치원이 딸려 있다)가 있는 모스크(이슬람사원)를 가리킨다.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언덕으로 걸어서 10분쯤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녹사평역 위 언덕이나 해밀턴 호텔 입구에서도 마스지드의 미나레트(첨탑: 아랍에선 ‘마나라’로 부름)가 보인다. 일반인도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손발을 씻는 의식(우두·الوضوء)을 마친 뒤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예배실에는 비신자의 방문을 사양한다.

가족 중시와 다출산…3대가 함께 식사, 아랍인 대가족을 만나다

녹사평역 근처에 있는 아랍 음식점 페트라. 요르단의 세계문화유산에서 이름을 딴 이 음식점의 주인은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이다. 요르단 인구의 30~60%가 팔레스타인 실향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녹사평역 근처에 있는 아랍 음식점 페트라. 요르단의 세계문화유산에서 이름을 딴 이 음식점의 주인은 팔레스타인계 요르단인이다. 요르단 인구의 30~60%가 팔레스타인 실향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에 있는 아랍 음식점 ‘페트라(PETRA)’를 찾은 것은 토요일 점심시간이었다. 놀라운 것은 가족 단체가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다. 50명쯤 들어갈 수 있는 식당 홀에는 모두 여섯 팀이 있었다. 한국인은 세 명으로 이뤄진 두 팀과 혼자 온 손님이 세 자리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아랍인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 다섯 팀과 혼자 온 손님이었다.

단체팀에는 한결같이 하얀 히잡(무슬림 여성의 머릿수건)을 쓴 여성과 수염을 기른 남성이 있었다. 히잡을 쓴 여성 둘과 남자 둘로 이뤄진 젊은이 팀은 유튜브를 하는지 자신들이 먹는 모습을 삼각대에 얹은 휴대전화로 찍고 있었다.

각각 여덟 명과 여섯 명, 다섯 명으로 이뤄진 세 팀은 각각 아이들이 절반 넘게 차지한 다둥이 가족이었다. 그중 두 팀은 노인부터 아이까지 3대가 함께 온 것으로 보였다. 가족 중시와 다출산이라는 중동아랍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 접시를 서로 이리저리 돌리면서 나눠 먹었다. 수염을 기른 남자 손님이 창가에 혼자 앉아 고기 요리와 쌀밥을 시켜 먹고 있었다. 쌀은 중동과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굵은 바스타미 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