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장가오리는 봐줬다…‘뒤끝 작렬’ 시진핑 두 얼굴

  • 카드 발행 일시2023.07.26

제2부: 시진핑의 치국책략(治國策略)

제7장: 뒤끝 작렬의 시진핑 용인술… 동료엔 한없는 애정, 적은 철저하게 부순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사람을 쓸 때 계파 간 안배를 중시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용인술은 다르다.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 분명하다. 왼쪽부터 시진핑, 왕후닝, 차이치, 자오러지, 리창. AFP=연합뉴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사람을 쓸 때 계파 간 안배를 중시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용인술은 다르다.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 분명하다. 왼쪽부터 시진핑, 왕후닝, 차이치, 자오러지, 리창. AFP=연합뉴스

나라는 어떻게 다스리나. 크게 세 단계가 있다. 우선 전략을 정한다(定戰略). 어떻게 발전시킬지가 관건이다. 다음은 팀을 짠다(搭班子). 전략 추진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이들로 한패를 만든다. 마지막은 대오를 이끈다(帶隊伍). 무리를 이끌고 직접 행동으로 전략 실현에 나서는 것이다. 결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무리 모든 걸 챙기는 ‘만물의 주석’이라 하더라도 그를 받쳐줄 사람은 필요하게 마련이다.

시진핑의 용인술(用人術)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시진핑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인물들이 시진핑의 어떤 판단과 기준에 따라 발탁됐는지를 아는 건 우리의 운명과도 직결된다. 실제 우리의 대(對)중국 업무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은 사람을 쓸 때 비교적 계파(系派) 간 안배를 중시했다. 각 파벌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자신의 절대적 1인자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한번 인연 맺으면 끝까지 간다

시진핑은 어떤가. 먼저 시진핑의 대인관계를 보자. 커우젠원(寇健文) 대만국립정치대학 교수에 따르면 시진핑의 사람 관계에선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고 한다. 우선 시진핑은 옛 친구나 동료, 상사에 대한 정(情)이 두텁다. 한번 좋은 인연을 맺으면 설사 이들이 역경에 처한다 해도 쉽게 저버리는 일이 없다. 푸젠(福建)성 근무 시 상사였던 샹난(項南)이 훗날 실각했지만, 시진핑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인사를 다니며 챙겼다.

어려운 친구나 동료를 챙긴 일화는 많다. 시진핑이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에서 일할 때 동료인 자다산(賈大山)이나 뤼위란(呂玉蘭) 등이 병에 걸리자 시진핑은 푸젠성에서 허베이성으로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 함께 몇 번씩이고 병문안을 왔다. 산베이(陝北) 지역에서 함께 농사일을 했던 뤼허우성(呂侯生)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 차례나 돈을 보냈고, 또 그의 건강이 나빠지자 푸젠성으로 와 치료를 받도록 돕기도 했다.

중국 량자허 지역에서 함께 농사를 짓던 젊은 시절의 시진핑(오른쪽)과 친구 뤼허우성. 훗날 뤼허우성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시진핑은 두 차례나 돈을 보낸다. 사진 시나망

중국 량자허 지역에서 함께 농사를 짓던 젊은 시절의 시진핑(오른쪽)과 친구 뤼허우성. 훗날 뤼허우성이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시진핑은 두 차례나 돈을 보낸다. 사진 시나망

시진핑 대인관계의 두 번째 특징은 문혁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문혁세대는 홍위병과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 개혁개방에 대한 집단기억을 갖고 있는데 모두 계급투쟁 교육의 영향을 받고 자라 세상엔 계급투쟁이 없는 곳이 없고, 투쟁은 하면 할수록 격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에 대해선 먼저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며 믿음이 적다. 그리고 일단 적이라 여겨지면 철저하게 부순다.

먼저 의심하고 아군, 적군 구분한다

학교 때 배운 이런 투쟁정신이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적에겐 모질고 동지에겐 따뜻한(對敵狠 對友和)’ 계급 감정을 갖게 됐다고 한다. 따라서 시진핑은 아군이라 생각되는 이에겐 중책을 맡기고, 또 여러 차례 발탁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에 적은 악(惡)이므로 반드시 소멸시켜야 한다고 본다. 아군도 아니고 적군도 아닌 타군(他群)에 속하는 사람은 먼저 의심을 갖고 그의 표현과 충성을 본 뒤 아군 또는 적군으로 구분한다.

시진핑의 용인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표적인 예 한 가지를 꼽으라면 차이치(蔡奇) 발탁을 들 수 있다.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누가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7인에 들어갈 수 있을지 많은 추측이 있었다. 이 중 가장 의외로 발탁된 인물로 서열 5위의 차이치가 꼽힌다. 1955년생인 차이치는 당시 베이징 당서기였는데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리라고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진핑은 푸젠성 근무 당시 상사였던 샹난(오른쪽)이 훗날 실각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인사다니며 챙겼다. 사진 봉황망

시진핑은 푸젠성 근무 당시 상사였던 샹난(오른쪽)이 훗날 실각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인사다니며 챙겼다. 사진 봉황망

푸젠성 출신의 차이치는 푸젠성 정치개혁판공실 부주임과 푸젠성당 위원회 판공청 부주임, 산밍(三明)시 시장 등을 역임하며 당시 푸젠성에 와 있던 시진핑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저장(浙江)성에서 다시 시진핑과 만났고, 2014년 새로 생긴 중앙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이 되며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2년 후엔 베이징 시장과 당서기를 맡았고, 2017년 19차 당 대회 때 세 단계 고속 승진해 정치국 위원이 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시진핑이 말하는 차이치의 삼도(三道)

시진핑이 차이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가 하는 일화가 홍콩의 중국 전문가 쑨자예(孫嘉業)의 말을 통해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시진핑은 중국 내부 연설에서 차이치가 삼도(三道)를 갖췄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와 차이치가 함께 일한 지가 16~17년가량 되는데 그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다”고 운을 뗀 뒤 시진핑은 “차이치는 시간만 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마당에 나와 산보를 한다. 이는 효도(孝道)이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또 “차이치는 또 어려움이 있는 하급 간부나 직원을 돕는 데 열심이다. 물론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이는 후도(厚道)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차이치 두 사람은 처음엔 급이 같았는데(平級) 훗날 내가 승진을 거듭하며 높아졌다. 그러나 차이치는 단 한 번도 나를 찾아와 승진을 부탁한 적이 없다. 이는 정도(正道)이다”며 “우리 당은 바로 이런 간부를 써야 한다. 인품이 좋다는 게 첫 번째”라고 했다.

차이치는 저장성 조직부장 시절 10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릴 정도로 SNS에 능한 인물이다. 사진 CCTV 홈페이지

차이치는 저장성 조직부장 시절 100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릴 정도로 SNS에 능한 인물이다. 사진 CCTV 홈페이지

물론 차이치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차이치는 2017년 겨울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200만 명이 넘는 베이징의 무허가 저소득 계층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하룻밤 사이에 베이징 밖으로 쫓아내 악명을 얻었다. 당시 차이는 “칼을 뺐으면 피를 봐야 한다”며 철거작업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때 나온 말이 “시진핑이 (마윈 등) 고위층을 박살내면 리창(李强)은 (상하이) 중산층을 박살내고 차이치는 (베이징) 빈곤층을 박살낸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