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오른 ‘갈라파고스 주가’…‘닥치고 저축’ 일본이 변한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7.10

📈글로벌 머니가 만난 전문가  

갈라파고스!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1000㎞ 정도 떨어진 태평양의 화산섬 무리다. 그런데 은유적으로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계’로 통한다.

글로벌 경제에서는 1994년 이후 약 한 세대(30년) 동안 디플레이션에 시달린 일본의 별명이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이 정보기술(IT)에 이어 인공지능(AI) 혁명으로 들떠 있는데, 일본은 잠잠했다.

대신에 디플레이션과 고령화 등이 화두였다. 일본 증시도 사실상 ‘잊힌 곳’이었다. 가미카제 거품 시대인 1980년대 후반 들불처럼 달아오른 뒤 엄습한 역풍이 한 세대 이상 이어진 모양새였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런 갈라파고스 주가(닛케이225)가 올해 들어 20% 넘게 상승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주가는 2% 남짓, 국내 코스피는 11% 정도 올랐을 뿐이다.

일본 증시가 겨울잠에 깨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몇몇 눈치 빠른 국내 투자자는 올해 초부터 일본 증시에 뛰어들었다. 적잖은 수익을 즐겼다.

지금 일본 주식을 산다면, 늦은 것 아닐까? 이제라도 뛰어들어 볼까? 투자자들이 품고 있는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의 윌리엄 창 포트폴리오매니저를 줌(Zoom)으로 인터뷰했다.

프랭클린템플턴 윌리엄 창 포트폴리오매니저. 본인 제공

프랭클린템플턴 윌리엄 창 포트폴리오매니저. 본인 제공

창은 템플턴 내 글로벌이쿼티그룹에서 기관투자가 포트폴리오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2022년 후반기부터 일본 주식을 주목했다. 그는 디플레이션 시대가 막을 내리면 일본 주가가 유망하다는 투자 전망을 연기금 투자자들에게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인플레이션의 귀환  

일본 증시의 닛케이225 지수가 전체 시장을 거울처럼 반영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올해 들어 약 24% 상승했다. 한국과 미국 주가와 견줘 좋은 모습이다. 일본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우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들도 일본 주가 때문에 들떠 있다. 기자가 말한 대로 미국 주가 상승률이 일본을 밑돌고 있다. 일본 주가가 2023년 놀라운 성과를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인플레이션의 귀환(return of inflation)’이다.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이후 글로벌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물가가 지금까지 보기 어려웠던 3% 정도 상승했다. 이런 인플레이션의 귀환은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 때문에 굳어진 사고방식(장기화한 디플레이션 기대심리)을 뒤흔들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디플레이션에 길든 사고방식이 깨진다? 무슨 의미인가.
디플레이션 시대에 일본인들은 돈이 생기면 일단 저축한다. 시간을 끌며 소비를 최대한 늦춘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 값이 싸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도 물가가 서서히 오르고 있다. 일반 물가뿐 아니라 임금도 오르고 있다. 실제로 올해 봄에 이뤄진 임금 협상(춘투)에서 (평균) 임금 상승률이 소폭이지만 올랐다.

일본의 임금지수는 일반적으로 2010년을 100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이 지수가 2015년 93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23년 2월과 3월에 101 수준까지 올랐다.

임금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게 놀랍다.
맞다. 임금이 오르면서 일본인들의 생각에 작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물가가 서서히 오르고 있다는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일본인들이 내일이나 모레 물건을 사는 것보다 오늘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23년 노동절 행사에 모인 일본 노동자들. 로이터=연합뉴스

2023년 노동절 행사에 모인 일본 노동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주가는 기업의 순이익 흐름에 따라 출렁거리는데, 인플레이션의 귀환이 일본 기업에 무슨 의미일까.
일본에서 내가 회사를 경영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귀환하면 이윤 폭을 늘려갈 수 있다. 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이익 폭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려고 한다. 바로 자동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생산설비를 새것으로 바꾸고, 디지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려고 한다. 그 결과 기업의 설비투자가 전반적으로 증가한다. 경제 활력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자리 잡으면 경영자는 생산 원가를 적극적으로 판매가격에 반영할 수 있다. 이 또한 마진 폭을 키운다.
인플레이션의 귀환이 주가 상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했는데, 일본 물가 오름세가 안정적인지가 늘 논란이다.
맞는 지적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측면에서 보면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면 달리 말해 임금 협상 결과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면, 일본인들이 내일 물가가 오늘보다 오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지출하기 마련이다. 디플레이션 시대와 다른, 인플레이션 시대 사이클이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요즘 일본 인플레이션을 보면 3%대다. 이는 몇 년 전 상황과 전혀 다르다. 다만 (물가 전망을 반영한) 10년 만기 일본 국채 수익률을 보면 이제 겨우 제로금리 상황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춰 현재 일본 물가 오름세는 막 시작된 단계다. 뿌리내리려고 하는 순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주포는 외국인

일본 주가의 상승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그렇다면, 도대체 요즘 일본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주요 매수 세력(이른바 ‘주포’)은 누구인가. 일본 투자자인가 아니면 해외 투자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