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홍위병 광기’ 닮았다…시진핑의 아이들, 소분홍

  • 카드 발행 일시2023.07.05

제2부: 시진핑의 치국책략(治國策略)

제4장: 애국을 머리에 붓는다…마오의 ‘착한 아이’가 시진핑의 ‘소분홍’으로

2016년 시작된 한중 간의 사드 갈등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국 관계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6년 시작된 한중 간의 사드 갈등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국 관계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가을의 일이다. 중국의 한 대학이 온라인 강좌를 열었다. 아직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때로 한국 교수를 특강강사로 초청했다. 한·중 관계에 대한 강연이 한창일 때 중국 학생이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단오절의 기원과 사드(THAAD) 배치 문제 등이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정상적인 군사 조치였다는 한국 교수의 답이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학생의 욕설이 터졌다. 강좌는 파행으로 끝났다.

중국 인터넷 공간엔 이 같은 학생의 행동을 지극히 애국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글이 떠돈다. 한국 교수에 대한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은 ‘특수한 방식으로 안부를 전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선 기가 막힌다. 돌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이긴 하지만, 최근 중국 학교 내 분위기를 보면 꼭 그리 놀랄 일만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학생이 교사의 ‘잘못(?)’을 꾸짖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에게 욕먹고 훈계 듣는 중국의 스승 

지난 2월엔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에서 벌어진 일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 실렸다. 유명 연사인 천훙유(陳宏友) 허페이사범학원 교수가 루장(廬江)중학교에서 강연에 나섰다가 연단으로 뛰어든 학생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고 야단까지 맞는 봉변을 당했다. “공부하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다” “외국인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으면 더 강한 유전자를 가질 수 있다” 등의 말을 한 게 문제였다.

천훙유 중국 허페이사범학원 교수는 한 중학교 강연에 나섰다가 학생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고 훈계까지 듣는 망신을 당했다. 사진 대만 차이나타임스

천훙유 중국 허페이사범학원 교수는 한 중학교 강연에 나섰다가 학생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고 훈계까지 듣는 망신을 당했다. 사진 대만 차이나타임스

천 교수는 학생으로부터 “외국을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란 훈계를 들었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이 “옳소” 소리와 함께 박수로 호응한 건 물론이다. 천 교수는 “파워포인트가 작동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가볍게 농담을 했던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집에서 반성하고 있다”고 몸을 낮췄다.

2020년 11월엔 중국 하얼빈공대의 기숙사 사감이 서방의 추수감사절을 맞아 학생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사탕을 돌리겠다고 밝혔다가 학생의 공격을 받았다. 서방의 명절을 선전하는 게 기숙사 관리에 해당하느냐는 핀잔과 함께 중지하지 않으면 학교 관련 부문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탕을 나누려던 게 서양 종교 숭배와 같은 사상적 문제로까지 발전하며 사감은 큰 곤욕을 치렀다.

반세기 넘어 부활하는 홍위병의 광기 

근년 들어 중국 학내에서 자주 보이는 이 같은 일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학생은 애국주의로 무장해 있다. 두 번째, 학생이 교사나 교수 등 스승을 공격한다. 세 번째, 학생의 선생 공격 사건은 동료 학생의 지지와 환호 속에 온라인 공간으로 퍼져나간다. 어째 데자뷔 느낌이 들지 않나. 문화혁명 시기 스승 살해까지 서슴지 않았던 홍위병(紅衛兵)의 광기가 반세기를 넘어 부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홍위병은 1966년 5월 처음 만들어졌다. 칭화(淸華)대학교 부속중학교 학생들에 의해서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의 청년 근위군과 같은 조직을 만들기로 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보위하는 붉은색의 보위병’이라는 뜻에서 홍위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마오는 홍위병을 ‘착한 아이들(好孩子)’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문화대혁명이 중국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아들이 아비를 때리고 제자가 스승을 모욕하는 등 인간의 본성 파괴에 있다. 사진은 홍위병 집회에 끌려나와 비판당하는 중국 공산당 헤이룽장성 서기 왕이룬. 사진 바이두

문화대혁명이 중국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아들이 아비를 때리고 제자가 스승을 모욕하는 등 인간의 본성 파괴에 있다. 사진은 홍위병 집회에 끌려나와 비판당하는 중국 공산당 헤이룽장성 서기 왕이룬. 사진 바이두

마오는 청소년은 일정한 지식이 있고 적극적이면서도 보수적이지 않아 문혁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 마오는 1966년 7월 홍위병이 쓴 대자보를 지지하는 편지를 보낸다. 이어 8월엔 인민일보가 “누구든 혁명 학생의 행동을 반대하는 건 마오 주석의 지도를 위반하는 것”이란 사설을 썼다. 마오와 당의 지지 아래 우후죽순처럼 일어선 수많은 홍위병 조직은 이후 중국 전역을 누비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중 중국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인간의 본성 파괴에 있다. 아들이 아비를 때리고 제자가 스승을 욕보이는 등 사람으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하극상(下剋上)의 행위가 만연했다. 당성(黨性)으로 인성(人性)을 짓밟았다. 이 모두 마오가 학생들을 부추긴 결과다. 마오는 “모든 반항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는 구호를 내세워 학생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다.

천안문 성루 마오쩌둥 초상화의 비밀 

한데 그런 악몽 같은 홍위병의 그림자를 21세기에 다시 목도하고 있다. 홍위병이 정식 해산된 건 1978년이지만 중국 인민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 예로 천안문 성루에 걸린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들 수 있다. 문혁 이전까지 마오의 초상화는 당국의 표준상 기준에 따라 측면상이 걸렸다. 한데 매년 초상화를 그리던 왕궈둥(王國棟) 화백이 문혁 때 홍위병에게 죽도록 얻어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천안문 성루에 걸렸던 마오쩌둥의 역대 초상화들. 초상화는 원래 측면상을 그렸으나 문혁 때 마오의 두 귀를 그리지 않아 마오가 한쪽 말만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홍위병이 화백을 폭행하면서 이후엔 두 귀가 모두 나오는 초상화가 그려지게 됐다. 사진 HK01

천안문 성루에 걸렸던 마오쩌둥의 역대 초상화들. 초상화는 원래 측면상을 그렸으나 문혁 때 마오의 두 귀를 그리지 않아 마오가 한쪽 말만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홍위병이 화백을 폭행하면서 이후엔 두 귀가 모두 나오는 초상화가 그려지게 됐다. 사진 HK01

왜? 측면상이라 마오의 한쪽 귀만을 그렸는데 이게 트집이 잡혔다. “마오 주석의 한쪽 귀만 그려 마오 주석이 한쪽 말만 듣고 한쪽 편만 들게 한다. 이는 화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홍위병의 구타 이유였다. 이후 천안문 성루엔 두 귀가 다 보이는 마오의 초상화가 오르게 됐다. 문혁이 끝난 지 오래됐지만, 그 어떤 화백도 측면상을 고집하지 않는다. 문혁의 광기가 또 언제 중국을 강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