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명쯤 희생해도 된다, 시진핑 ‘잔혹한 봉쇄’ 속내

  • 카드 발행 일시2023.06.28

제2부: 시진핑의 치국책략(治國策略)

제3장: 중국인은 왜 들고 일어나지 못하나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민심의 무서움을 말한다. 사진은 1966년 8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을 격려하는 마오쩌둥. 사진 교양인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민심의 무서움을 말한다. 사진은 1966년 8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을 격려하는 마오쩌둥. 사진 교양인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을 가장 무서워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副)보좌관을 지낸 중국 전문가 매슈 포틴저의 말이다. 지난 2월 말 열린 미·중 전략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 첫 국회 청문회에서 한 얘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는 순자(荀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순하디 순한 것 같은 게 중국 민심이지만 일단 화를 내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순자의 가르침을 거의 암기할 수준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게 민심의 안정이다. 중국 지도자는 불안과 혼란을 가장 두려워한다. 모든 위기의 싹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 또한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아 안정을 추구하는 소농의식(小農意識)이 강하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때맞춰 비료도 주고 물도 주며 잡초도 뽑아야 한다. 집을 오래 비워선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만(一萬)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만일(萬一)이 두렵다.” 

집을 지키며 농사를 지으면 수입은 적더라도 안정은 보장된다. 스위즈(石毓智)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중국인이 안정을 추구하는 데는 효도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살아계시면 먼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중국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안정 추구의 사고는 국가 방어에서도 드러난다. 만리장성이 그 예다. “나도 넘어가지 않을 테니 너도 넘어오지 마라. 각자 평안하게 살자”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안전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언가. ‘경계심’이다. “일만(一萬)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만일(萬一)이 두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예방과 경계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런 논리가 정치투쟁으로 이어지면 피가 튀고 목숨이 오가게 된다. 과거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만 보면 바로 잡아서 죽였는데, 당시 국민당의 구호가 “무고한 1만 명을 죽이더라도 결코 단 한 명의 공산당 분자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시진핑의 사회관리 방식은 마오쩌둥의 '역량을 집중해 큰 일을 해내자'는 거국체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의 사회관리 방식은 마오쩌둥의 '역량을 집중해 큰 일을 해내자'는 거국체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으로선 자신과 공산당의 권력 유지를 위해 중국 사회의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안정을 어떻게 이룰 건가. 왕윈(王韻) 대만국립정치대학 교수는 시진핑의 사회관리 방식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역량을 집중해 큰일을 해내는’ 거국체제(擧國體制)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거국체제란 국가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일괄적인 지도 아래 전국의 자원을 동원하고 국민은 이에 협조하는 체제를 말한다.

거국체제 배후의 정아우세(頂芽優勢) 논리 

왕윈은 이 같은 거국체제 주장의 배후엔 식물학에서 말하는 ‘정아우세(頂芽優勢)’의 논리가 깔려 있다고 설명한다. 정아우세란 가지 끝에 생기는 눈인 정아(頂芽)가 줄기 옆쪽에 생기는 눈인 측아(側芽)보다 우세하다는 말이다. 해바라기를 보자. 해바라기는 선천적으로 지엽의 수량을 제한해 곁눈의 수를 줄인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얻은 자양분이 곁눈보다는 맨 위의 정아에 도달하게 한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책략인 셈이다.

시진핑의 중국 사회관리가 바로 이 정아우세의 논리를 차용하고 있다. 국가는 목표를 정하고 권력과 자원을 무조건적으로 선택된 소수(頂芽)에게 몰아준다. 수많은 민중(側芽)은 그저 전체 국면을 이해해 자기의 권익을 희생함으로써 당과 국가의 위대한 사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문제는 누가 정아이고 누가 측아인가를 어떻게, 또 누가 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측아가 되기에 십상인 민중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점도 큰 문제다.

중국에서 민중은 당과 국가의 위대한 사업을 위해 자신의 권익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사진은 코로나 19 봉쇄로 텅 빈 우한시내 풍경. 바이두

중국에서 민중은 당과 국가의 위대한 사업을 위해 자신의 권익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사진은 코로나 19 봉쇄로 텅 빈 우한시내 풍경. 바이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전격적으로 단행된 우한(武漢) 봉쇄를 보면 이해가 간다. 여기엔 14억 전체 중국 인민의 안전을 위해 우한 시민 2000만 명 정도는 희생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계산이 깔려 있다. 마오쩌둥의 “허리띠 졸라매고 양탄(兩彈,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개발하자”는 구호도 마찬가지로 정아우세의 거국체제 논리가 작동한다. 시진핑 시대는 신(新)거국체제라 하는데 ‘신(新)’이 갖는 의미는 더 큰 봉사와 희생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국방비보다 많아진 사회안전 비용 

이쯤 되면 촛불혁명에 익숙한 우리가 갖게 되는 의문이 있다. 중국인은 왜 들고 일어나지 못하나. 우스갯소리로 “중국인은 불이익은 못 참아도 불의는 참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실제 “궐기하자”고 외친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2017년 7월 중국의 저명 사회학자인 리인허(李銀河)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모든 국민이 떨쳐 일어나 헌법에 위배되는 언론 검열을 없애자”는 격문을 날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