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은퇴한 거 아니었어? K리그 ‘보이지 않는 손’ 됐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6.29

한준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축구해설위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계 만물박사입니다. 생중계 도중 관중석에 등장하는 낯모를 얼굴까지 배경 설명을 곁들여 소개하는 그의 해박함은 비선수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메이저 해설위원으로 발돋움하는 비결이 됐습니다.

특유의 열정적인 중계 스타일 또한 축구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승부처에서 종종 터져 나오는 괴성에 가까운 외침은 ‘미스터 샤우팅’, ‘전기 고문 해설’ 등등 재미있는 별명을 만들어내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축구 스토리텔러’ 한 부회장이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그간 차곡차곡 모아 온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심도 깊은 분석부터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축구와 관련한 지적 호기심을 속시원하게, 재미있게 해결해드립니다. 첫 주제는 현대 축구에서 갈수록 존재감을 키워가는 ‘보이지 않는 손’, 디렉터(director)의 세계입니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전북 현대가 루마니아 축구 황금 세대의 일원이었던 단 페트레스쿠(56) 감독을 새로이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전북의 ‘테크니컬 디렉터(technical director)’로 일하고 있는 박지성(42)이다. 박 디렉터는 역시 전북의 ‘어드바이저(adviser)’인 로베르토 디 마테오(53·이탈리아)와 합작해 디 마테오의 첼시 시절 동료였던 페트레스쿠 감독의 영입을 주도했다. 어쩌면 이것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지닌 디렉터가 구단의 감독 선임에 깊숙이 관여한 대한민국 프로축구 초유의 사례일 수 있다.

 현역 시절 한국 축구 간판 스타로 활동한 박지성(왼쪽)은 은퇴 후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하며 단 페트레스쿠 감독(가운데)을 선임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1

현역 시절 한국 축구 간판 스타로 활동한 박지성(왼쪽)은 은퇴 후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하며 단 페트레스쿠 감독(가운데)을 선임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1

우리의 입장에선 다소 생소할 뿐 아니라 지금껏 본격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시스템이지만, 유럽 클럽 축구에서 ‘디렉터’는 이미 축구판의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대두된 지 오래다. 작금의 축구는 그라운드 위에서 펼쳐지는 90분 경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미 경영과 산업·과학기술의 영역으로 들어서 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디렉터는 선수와 지도자, 구단주와 경영인 못지않게 괄목할 만한 기능을 수행하며 날이 갈수록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직책이다.

일반적으로 ‘디렉터’는 기업의 임원과 중역을 지칭하며 이는 유럽의 축구 클럽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클럽은 통상 여러 명의 디렉터를 보유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디렉터들 가운데 축구 미디어에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디렉터의 대명사’ ‘디렉터의 꽃’은 바로 ‘풋볼 디렉터(football director)’ ‘스포츠 디렉터(sports director)’ 혹은 ‘테크니컬 디렉터’라 불리는 자리다.

이 직책은 한 마디로 축구 클럽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만한 축구적·기술적 파트를 총괄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통상 유럽 클럽의 디렉터는 수많은 선수에 대한 영입과 판매, 어린 선수들의 육성과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 감독의 고용과 경질 등에 이르기까지 클럽의 중차대한 축구적 사안들을 다루는 위치에 있다. 이 업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디렉터는 클럽의 수뇌부·경영진과 현장에서 선수단을 이끄는 감독 간의 가교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야만 한다. 현장의 요구와 수뇌부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클럽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야 하는 까닭에 디렉터에게는 ‘축구적 전문성’과 ‘경영적 마인드’가 동시에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