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만 50만원인데 4박5일 상품이 20만원...참 황당한 기적

  • 카드 발행 일시2023.06.23

해외여행 일타강사⑨ 그래도 포기 못 한다, 패키지여행의 매력

한국인의 해외여행 역사는 사실 패키지여행의 역사다. 개별자유여행(FIT)이 대세라지만, 패키지여행 상품은 여전히 잘나간다. TV 홈쇼핑만 봐도 알 수 있다. 허구한 날 그리고 온종일, 지구촌 명소 영상을 배경으로 “단독 혜택” “마감 임박” 호들갑 떠는 광고가 반복 재생된다. 패키지여행은 싸고 편하다. 그러나 싸고 편한 패키지여행은 ‘싸구려 여행’과  ‘덤핑 투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해외여행 일타강사는 9회 강의에서 패키지여행을 집중 탐구한다. 중요한 건, 그 숱한 잡음과 불만에도 무수한 한국인이 가이드가 흔드는 깃발을 기꺼이 따라다니는 현실이다. 싸구려 패키지여행은 어쩌면, 한국인의 숨기고 싶은 자화상이다.

용어사전패키지여행

‘여행업자가 주관하여 행하는 단체 여행. 미리 정하여진 관광 여정에 따라 각종 교통편과 숙박 시설, 기타 편의 시설 이용과 그 비용 따위를 일괄하여 여행사에서 관장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패키지(Package) 여행’의 정의다. 항공ㆍ숙소 등 여행 전 과정을 개인이 주도하는 개별자유여행(FIT)과 달리 여행사가 제안한 여정을 전적으로 따르는 여행을 말한다. 관광학에서는 영국인 침례교 전도사 토머스 쿡이 1841년 ‘금주 캠페인 행사’에 단체 여행팀을 보낸 게 패키지여행의 시초로 본다. 이후 여행사 토머스쿡은 성지순례, 박람회 참관 등 관광 상품을 꾸려 패키지여행의 원형을 제시했다. 세계 최초 패키지 여행사이자 세계 최대 규모 여행사였던 토마스 쿡은 2019년 2조원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패키지여행  

🕵️사례 분석: 노 팁 노 옵션의 꿈

2019년 40대 주부 H씨는 TV 홈쇼핑을 보고 필리핀 세부 패키지여행 상품을 구매했다. 따뜻한 날씨를 만끽하며 푹 쉬는 여행을 기대했으나 가이드는 좀처럼 휴식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차례 쇼핑센터 방문이 이어졌고, 집요하게 스노클링 같은 선택 관광을 권유했다. 호응이 기대에 미치지 않자 가이드 태도가 달라졌다. 급기야 버스에서 손님과 언성을 높이는 일이 벌어졌다. 투어가 끝날 무렵 가이드는 팁 명목으로 1인 40달러씩 거둬 갔다.

일타강사에 들어온 제보를 재구성했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패키지여행 상품의 전형적인 피해 사례다. 쇼핑과 옵션(선택 관광) 강요, 가이드 팁 징수…. 이런 상품 대부분은 여행사에 낸 돈보다 가이드에게 주는 돈이 더 많다. 사례에는 없지만, 가이드 팁과 별도로 버스기사 팁을 줘야 하는 상품도 많다. 여행사가 ‘노 팁 노 옵션’을 자랑스레 내거는 건, 팁과 옵션에 의존하는 패키지여행 상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사례 분석: 먹튀 여행사

중견 여행사 투어이천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2월 1일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사진은 문이 굳게 단힌 서울 중구 투어이천 사무실 모습. 뉴스1

중견 여행사 투어이천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2월 1일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사진은 문이 굳게 단힌 서울 중구 투어이천 사무실 모습. 뉴스1

2022년 12월 50대 여성 A씨는 인터넷에서 한 달여 뒤 출발하는 해외여행 상품을 예약하고 120만원을 입금했다. 여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여행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사업자 사정으로 인해 모든 상품의 행사 진행이 어려워 일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후 여행사는 연락이 두절됐고 홈페이지도 폐쇄됐다.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초 발표한 ‘투어이천 이용주의보’에 담긴 내용이다. 투어이천은 2023년 2월 1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중견 여행사 투어이천의 영업 중단 사태에 여행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투어이천 양무승 대표가 국내 관광업계를 대표하는 서울시관광협회 회장이어서였다. 소비자와 거래처 피해액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먹튀 여행사’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여행업계 뉴스다. 2018년에는 탑항공이 돌연 폐업을 선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탑항공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항공권 전문 여행사다. TV 홈쇼핑을 중심으로 저가 패키지여행 상품을 팔던 e온누리여행사·더좋은여행 같은 여행사도 잇달아 폐업했다. 해외여행이 재개된 지금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여행사가 수두룩하다.

일본 규슈 페리 여행(선내 2박) 14만9000원, 중국 태항산 여행(4박5일) 19만9000원, 베트남 다낭 여행(3박5일) 24만9000원…. 30년 전 여행사 광고가 아니다. 2023년 6월 현재 팔리고 있는 패키지여행 상품이다. 코로나 사태가 한국 여행사의 ‘싸구려 체질’을 바꿀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했으나 현실은 말짱 도루묵이었다. 예의 그 덤핑 상품으로 고스란히 복귀했다.

일부 저가 여행사만 그런 게 아니다. 소위 메이저 여행사도 똑같다. 앞서 사례로 든 19만9000원짜리 중국 태항산 4박5일 상품도 대형 여행사 상품이다. 현재 인천∼스자좡(石家庄·태항산 관문 도시) 왕복 항공권 가격이 인터넷에서 50만원이 넘는다. 항공권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의 여행 상품이 버젓이 팔리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 패키지여행의 부끄러운 민낯을 하나씩 까보자.

여행사 홈페이지와 SNS 광고에 뜬 초저가 패키지여행 상품. 항공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을 여행할 수 있다. 현지에서 쇼핑센터 방문이 필수고, 중요 체험은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차준홍 기자

여행사 홈페이지와 SNS 광고에 뜬 초저가 패키지여행 상품. 항공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을 여행할 수 있다. 현지에서 쇼핑센터 방문이 필수고, 중요 체험은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차준홍 기자

2021년 튀르키예 정부 초청으로 터키를 여행할 때였다. 튀르키예인 현지 가이드가 한국 패키지여행을 작정하고 비판했다. 한국 여행사의 79만9000원짜리 7박9일 튀르키예 일주 상품에 대해 그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TV 홈쇼핑에서 카파도키아 열기구 영상을 연신 틀어대며 튀르키예 패키지여행을 팔고 있지만, 열기구 체험은 100% 옵션이었다. 그는 “한국 여행사는 웃긴다. 열기구 체험 단체 가격이 개별 가격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패키지여행의 장점이 공동 구매로 인한 싼 가격인데, 현지 옵션은 반대라는 증언. 중간에 돈이 샌다는 뜻이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 패키지여행은 동굴 호텔이나 동굴 레스토랑 같은 카파도키아 명물은 체험은커녕 구경도 못 하고, 낡은 비즈니스 호텔과 싸구려 한식당을 전전했다. 카파도키아에서만 와인·사탕·양탄자 같은 쇼핑을 서너 번 돌린다고 했다. 가이드는 튀르키예 중부 내륙 지역 카파도키아에서 남부 지중해 연안 안탈리아까지 밤새 버스로 이동하는 상품 얘기도 꺼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숙박비를 줄여 상품 가격을 낮춘다는데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열기구 체험 장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튀르키예 최대 관광 상품이다. 국내 여행사도 튀르키예 패키지여행 상품을 팔 때 열기구 체험을 메인 이미지로 활용된다. 그러나 막상 열기구 체험은 옵션으로 구분돼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손민호 기자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열기구 체험 장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튀르키예 최대 관광 상품이다. 국내 여행사도 튀르키예 패키지여행 상품을 팔 때 열기구 체험을 메인 이미지로 활용된다. 그러나 막상 열기구 체험은 옵션으로 구분돼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손민호 기자

싸구려. 한국 패키지여행의 고질은 이 세 글자로 압축된다. 값만 싸면 모든 게 용서된다. 그래서 한국 패키지 여행은 수박 겉핥기식 여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들 대충 둘러보고 돌아온다. 그리고 자랑한다. “어디 가봤어? 안 봤으면 말을 말아.” 이 허세에 한국 패키지여행의 실상이 들어있다. 여행사들은 항변한다. 한 패키지 여행사 관계자는 “49만원짜리 상품을 제값 내고 가는 것보다 현지에서 쇼핑과 옵션을 돌리는 29만원짜리 상품을 선호하는 손님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