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기에 좋은 성과를 거두는 거로 유명한 하워드 막스지만 올해는 딱히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막스가 이끄는 오크트리캐피털의 1년 수익률은 27.9%였지만 올해 1분기 말 기준 수익률은 7.5%에 머물렀죠. 1분기 S&P500은 7%, 나스닥은 16.8%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오크트리 포트폴리오 상위 종목의 주가는 부진했죠. 이들 종목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45% 정도를 차지하니까 전체 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래픽=김유경 인턴기자 kim.youkyung1@joongang.co.kr
오크트리가 가장 많이 보유한 종목(18.2%)은 TORM(티커 TRMD)입니다. 약 85척의 선단을 운영하는 유럽 해운사죠. TORM의 1분기 주가가 6.72% 상승했으니 나름 맏형 노릇을 했는데요. TORM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보유한 체서피크 에너지(CHK·7.2%)의 주가는 19.4% 하락했습니다. 체서피크 에너지는 미국의 대표 천연가스 개발∙생산 업체인데요. 증폭된 경기 침체 우려와 국제유가 하락세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유 비중 3위인 가렛 모션(GTXAP·6.7%, 자동차 전기식 터보 제조업체)과 4위 비스트라 에너지(VST·6.1%, 전기∙천연가스 공급 업체)도 각각 2.2%, 3.5%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당장의 성적보다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 변화에 녹아 있는 투자 방향이겠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 등을 통해 지난 1분기 오크트리캐피털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했습니다.
📍[STEP1] 미국 은행 위기를 바라보는 막스의 시선
아들 앤드루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고 결심했다. 그 기간 오크트리 런던사무소에서 일했는데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영국 은행에 현금을 이체하고, 다른 금융회사 몇 군데에 양도성예금증서(CD)로 예치할 것을 요청했다. 그중 하나가 노던록(Northern Rock)이었다.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던 2007년 9월 노던록이 자금 유통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계좌를 해지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금요일 오후에 은행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조기 인출 시 2%의 위약금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주저 없이 ‘월요일 아침에 돈을 이체하라’고 말했다. 원금 전액과 비교하면 2% 위약금은 하찮은 액수였으니까. 그러니 위약금도 없이 예금을 다 꺼낼 수 있었던 실리콘밸리은행(SVB) 예금자의 마음은 어땠겠나.
막스는 30년 넘게 쓰고 있는 ‘메모’로도 잘 알려져 있죠. 그가 최근 메모 ‘실리콘밸리은행에서 배우는 것(Lessons from Silicon Valley Bank)’에서 밝힌 자신의 일화입니다. 다행히 직전에 영국 정부가 노던록 예금에 대한 지급 보증에 나서 은행 파산은 가까스로 면했다고 하네요.
SVB의 경우 채권 손실 소식이 전해진 뒤 단 하루 만에 전체 예금의 3분의 1이 인출됐는데요. 막스가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은행이 신뢰를 잃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디지털 거래가 일반화되며 인출이 쉬워졌고, 위약금도 없으니 엄청난 속도의 뱅크런을 피할 수 없는 건데요. 이는 아주 작은 균열에도 파산에 몰릴 수 있다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