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한 ‘신세계’ 영화에는 조직폭력배들이 드라이버를 들고 싸움을 벌인다. 피투성이가 돼 누워 있는 사람의 머리를 골프채로 때리는 모습도 나온다.
그 당시 나온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에선 골프채를 사용한 폭행 장면이 유행처럼 등장했다. 골프채 폭력이 많아 영화 ‘황해’에서 배우 김윤석이 드라이버가 아니라 뼈다귀를 들고 싸움하는 게 이상하면서도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대를 풍미한 필름 누아르, 홍콩 누아르처럼 골프 클럽을 들고 사람을 폭행하는 한국의 어두운 영화들을 골프 누아르라는 장르로 불러야 할 것도 같았다.
골프 누아르 시대는 지났다. 요즘 현실에선 골프가 등장하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가 나오고 있다.
SG증권발 주가조작 사건에는 곳곳에서 골프가 나온다. 프로 자격증을 가졌으며 골프 레슨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안모씨가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3인방 중 한 명이라고 보도됐다. 안씨는 골프 레슨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권유해 돈을 모았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 H투자컨설팅업체 라덕연씨는 골프연습장을 통해 돈세탁을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골프장을 가지려고 했다. JTBC 뉴스룸은 “라 대표는 지난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골프장을 사겠다며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1차로 보낸 돈만 200억원이 넘는다는 설명이다.

대한골프협회 이중명 전 회장. 김성룡 기자
한국 골프의 수장이라고 할 만한 대한골프협회 및 아난티 그룹의 전 회장인 이중명씨도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됐다. 이 전 회장은 라덕연씨에게 재단이사를 맡기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은 지인에게 “1억 사면 한 달에 (수익이) 한 1500만원. 3억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야. 엄청나게 올라”라며 묻지마 투자를 권유한 녹취 파일도 나왔다.
이중명 아난티 회장과 라덕연 대표, 프로골퍼 안모 씨 등은 지난해 8월엔 전남 신안군과 골프장을 비롯한 리조트 개발 투자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이 골프장 등 부동산을 사들여 주가조작으로 실현한 차익과 수수료를 빼돌리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골프장을 라 대표에게 판 쪽은 K골프를 세계화할 전도사로 기대된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다. 유 회장은 골프장 카트 관련 회사를 운영했으며 미국 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대회가 열리는 전통의 명문 PGA 웨스트를 포함, 미국과 일본에 25여 개의 골프장을 갖고 있다. 유 전 회장은 라 대표 측에 20억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창정은 골프를 매우 좋아하고 실력도 좋으며 골프 예능에 종종 나오는 대표적인 골프 관련 연예인 중 하나다. 임창정도 주가조작 사건에 매우 깊이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 유신일 회장은 인터뷰에서 골프장 계약 당시 임창정도 함께 왔다고 했다. 임창정은 지난해 12월 주가조작단이 골프장에서 개최한 투자자 모임에서 라 대표를 두고 “(나는) 근데 또 저 XX한테 돈을 맡겨. 아주 종교야”라며 “너 잘하고 있어. 왜냐면 내 돈을 가져간 저 저 XX 대단한 거야. 맞아요, 안 맞아요?”라며 투자를 독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임창정은 또 “위대하라! 종교가 이렇게 탄생하는 거예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