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1만1000여 건의 암 수술, 본인은 후두암, 부인은 암으로 떠나고….
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이다. 노성훈(69)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는 암에 파묻힌, 위암과의 싸움에 미친 외과의사다.
위암 수술 1만1000건.
아무도 오르지 못한 대기록이다.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그렇다. 위암 다발국 일본·중국에도 없다. 앞으로도 쉬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기네스북에 올리려 했더니 인체 수술은 윤리적 조항에 걸려 안 된다고 한다.
노성훈은 1987년 위암 메스를 잡기 시작해 37년간 칼을 놓은 적이 없다. 2014년 후두암에 걸려 물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식도가 헐었을 때도 메스를 놓지 않았다. 2005·2006년 한 해 600건을 수술하며 정점을 찍었다. 고희(古稀·70세)를 앞둔 요즘도 연 250~300건을 한다. 화·수요일엔 하루 세 명 수술하고, 금요일엔 한두 명 할 때가 있다. 월·목요일에는 외래환자 진료를 한다.
노성훈이 담당하는 환자는 대부분 진행성 위암(전이가 진행 중인 2~4기 환자)이다. 위암은 위 점막에 생긴다. 음식물이 닿는 부위다. 위는 점막-점막하층-근육층-장막층으로 돼 있다. 한국 위암의 70%가 점막이나 점막하층까지 침범한 조기 위암이다. 조기 검진 덕분에 초기에 빨리 잡아낸다. 조기 위암은 입으로 내시경을 넣고, 내시경에 장착된 절제용 나이프로 암 부위를 도려낸다. 그래서 내시경 수술이라고 한다. 외과의사가 아니라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한다. 노성훈은 이런 조기 위암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좀 시시하다’는 투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가 1월 12일 서울 강남구 병원 사무실에서 위암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칼잡이’ 노성훈의 진가는 4기암(말기암이라고도 한다)에서 발휘된다. 노성훈은 “나는 4기암 수술을 많이 한다. 연간 40~50건을 한다. 희망이 없는, 진단 후 여명이 1년 정도에 불과한 환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환 수술(Conversion Surgery)의 명수다. 4기암 환자를 항암제로 먼저 치료해 암세포 크기나 전이 부위를 줄인 뒤 잽싸게 수술해 도려내는 기법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를 가능하게 전환한다.
항암제를 담당하는 종양내과 의사와 머리를 맞대 어떤 항암제를 쓸지 궁리한다. 젤록스(젤로다+옥살리플라틴), 폴포리(5fu+류코보린+이리노테칸) 등의 표준적인 병용요법을 쓰거나 표적항암제를 쓴다. 최근 혁신적 항암제로 각광받는 면역항암제인 옵디보·키트루다도 있다. 이런 면역항암제가 전환 수술의 특급 도우미로 거듭나고 있다.
4기암 환자를 보는 눈이 전공에 따라 다르다. 종양내과 의사는 “왜 수술하려느냐”고 반대한다. 외과의사는 “수술하면 도움이 된다”고 맞선다. 노성훈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돼 이들을 원팀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