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LPGA 롯데 챔피언십이 열린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인근 카폴레이 호텔에서 박인비의 가족들은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박인비는 물병에 담아 온 물을 부모님에게 뿌려 드렸고 엄마, 아빠, 약혼자 남기협씨의 손을 잡고 수영장 물속으로 점프했다.
사연이 있다. 열흘 전 박인비가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선두에 오르자 그의 부모는 한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의 대회장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까지 끊고도 이들은 공항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인비는 “안 오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오시면 너무나 우승하고 싶을 것 같아 부담감 때문에 경기를 망칠지도 몰라서였다.
결국 박인비는 5년 만에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자는 지인들과 함께 미션 힐스 골프장 18번홀 옆 호수로 점프하는 전통이 있다. 박인비는 물에 들어가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이 고시엔 구장의 흙을 퍼 가듯 소중하게 물을 담았다. 이 물을 부모님에게 뿌려드리고 호수의 여인 세리머니를 수영장에서 한 것이다. 병에 담긴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를 위해 부모가 흘린 눈물과 땀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다. 그러나 부모님의 가슴을 적시기엔 충분한 양이 됐다.
아버지 박건규씨는 “US오픈 등도 중요하지만, 인비의 손을 잡고 나비스코 호수에 빠지는 게 소원이었다”며 감격해 했다. 때마침 박인비는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랭킹 1위 선수의 캐디만 입는 초록색 캐디빕을 입고 박건규씨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박인비와 어머니 김성자씨. 연합뉴스
어머니 김성자씨는 대학 산악반에서 암벽을 타면서 남편을 만났다. 박인비의 체력은 최고다. 비행기에서 잘 자고 성격도 느긋하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체력과 성격이다.
김씨는 2001년 열세 살이던 인비와 두 살 아래 인아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재능을 보인 박인비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씨는 “당시 한국 골프 문화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고 운동만 해야 했다. 만약 골프가 잘 안 된다면 아이가 나중에 힘들 것 같았다.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낯선 미국에 가는 게 두려웠지만,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남편 박건규 씨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2007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LPGA 사상 처음으로 골프 성지인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대회였다. 열아홉 살 박인비는 첫날 4언더파 69타를 쳐 2위에 올랐다. 뭔가 일을 낼 것 같았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79타를 치며 미끄러졌다. 모녀를 세인트앤드루스의 한 중국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김성자씨는 딸이 79타가 아니라 69타를 친 것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골프 부모들은 자식을 놓기 어렵다. 자신의 품을 떠나면 성적이 나빠질 거라고 걱정한다. 김성자씨는 딸의 투어 생활에 남자친구 남기협씨가 동행하게 허락했다. LPGA 투어의 한국 선수 부모들은 딸이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 자체로도 펄쩍 뛰던 시기였다. 박인비의 부모는 달랐다. 김씨는 “부모가 도와야 할 때도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적절한 시간에 빠져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기록한 후 드라이버 입스로 3년여 고생했는데 이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