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골프 수능날 “기권하실 분?”…36명 울린 잔혹한 권유

  • 카드 발행 일시2022.11.11

1889년 디 오픈 챔피언십은 하루짜리 9홀 4라운드(36홀) 대회였다. 마침 해가 짧은 11월에 열렸고 날도 궂어 경기를 마치기 어려웠다. 선수 수가 줄면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주최 측은 뭔가 조치를 취했고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일이 지난달 28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정회원 선발전 최종 라운드에서 나왔다. 경기가 지연돼 18홀 경기를 할 수 없게 되자 KLPGA는 9홀 경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시간이 모자랐다. 수십명이 그만뒀다. 타이틀리스트 어패럴과 카카오 프렌즈 아카데미 광고에 나온 손새은도 그중 하나다.

17일이 수능시험이다. 골프 선수들의 수능이라면 프로테스트(정회원 선발전)다. 과거 사법시험 합격 당락처럼, 프로가 되느냐 안 되느냐에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걸렸다. 어쩌면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걸린 수능시험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프로테스트에 모든 걸 다 건다.

지난 달 열린, 그렇게 중요한 KLPGA 정회원 선발전 최종 라운드에서는 참가자의 37%인 43명이 기권했다. 주요 골프대회 사상 가장 많은 기권자가 나온 대회 아닐까 싶다. 수능 학생 37%가 시험 보다가 기권했다고 상상해 보라.

KLPGA 투어 서성민 대회운영 2본부장은 “선발전 요강에는 천재지변 등으로 54홀 경기를 36홀로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36홀 경기보다는 9홀이라도 더 하는 것이 변별력에서 낫다고 봤다. 기권 관련해서는 선수의 판단에 맡겼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기권은 강요가 아니라 선수의 자의적 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중계권 등으로 큰돈을 버는 KLPGA 투어가 미래의 주인공이 될 회원들을 뽑는 대회를 치르면서 골프장을 여유 있게 잡아놓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9홀이라도 더 하려 노력한 점은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