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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아이, 평범하게 만드는 양육 스타일은?

중앙일보

입력 2022.07.28 06:00

초등학교 1학년(만 7세) 여자아이, 라윤이(가명) 엄마입니다. 저희 딸은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해요. 영재 수준까진 아닌 것 같지만, 학습 능력이 또래보다 뛰어난 편입니다. 아이의 능력을 잘 키워주고 싶은데 어떻게 이끌어 주면 좋을지 고민이에요.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사고의 폭을 넓혀주고 싶어요.
라윤이는 학원 다니는 걸 원치 않아요. 그래서 집에서 저와 문제집으로 공부합니다. 문제집은 제가 직접 만들어요. 시중에 파는 초등 1학년 연산 문제집은 문제가 많아서 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글자는 크게, 문항 수는 줄여서 제가 A4용지에 따로 정리합니다. 초등 1학년 2학기 과정을 곧잘 따라 와요. 하루 1~2장 정도 푸는데, 90% 이상 맞추고요. 제가 만든 문제집도 첨부할 테니 전문가의 시각으로 검토해주세요.
최근에는 영국 BBC방송의 숫자 교육 프로그램 ‘넘버블록스(Numberblocks)’에 빠져있어요. 하루 1~2시간 정도 이 영상을 보는데요, 이 프로그램으로 짝수와 홀수, 곱셈과 나눗셈 등 기초 연산까지 익혔어요.
독서도 상상력을 요구하는 내용보단 현실적이고, 정보가 담긴 책을 주로 봅니다. 그래서인지 주로 사실에 근거해 말해요. 예를 들어 제가 “구름이 솜사탕처럼 먹고 싶게 생겼네”라고 하면, 라윤이는 “구름은 수증기라서 아무 맛도 안 날 거야, 먹을 수도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아이의 기질은 예민한 편인 것 같아요. 라윤이가 만 3년 2개월 되던 때 상담센터에서 검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 아이가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었거든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손톱 가장자리를 피가 날 정도로 뜯었어요. 상담 센터는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다만 엄마를 많이 좋아하니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상담 센터의 조언을 듣고 고민 끝에 퇴사했는데, 제가 회사를 관두고 3일 만에 아이의 문제 행동이 사라지더군요. 이후 재취업했지만, 예전보다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아이가 불안하거나 심심하면 손톱을 종종 물어뜯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은 무엇일까요?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제가 보기에 라윤이는 정말 똑똑한 아이 같은데, 어머니는 영재까진 아닌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이의 발전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건 아닐까요?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도민채(가명)씨에게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아이의 능력을 속단한 건 아닌지 확인해보자는 건데요. 신 교수는 “양육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아이를 보려는 경향이 있다”며 도민채씨의 성향과 학창 시절부터 물었습니다.

도민채씨는 라윤이를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어요. 과학과 수학을 정말 좋아했던 자신과 닮았다면서요. 하지만 도민채씨에게 이공계 학문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과학자를 꿈꾸며 고2 때 이과를 선택했지만, 고3 때 문과로 전과했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학 점수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자 대학 입시 등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했던 겁니다. 대학도 수능 점수에 맞춰 국문과를 선택했고요.

이 이야기를 들은 신의진 교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택했던 자신의 과거를 거울 삼아 아이의 능력에 한계를 짓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는 “양육자의 생각이나 경험을 아이에게 덧씌우면 비범한 아이도 평범해진다”고 강조했는데요.

도민채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 4일 줌을 통해 30분간 진행됐습니다. hello! Parents는 도민채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의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고요? 불안은 낮추고, 창의력은 높이는 교육법이 궁금하시다고요? 그럼 이번 콘텐트를 눈여겨 봐주세요.

네 살배기에게 궁둥이 붙이는 연습한 양육자

신) 아이 문제집 직접 만드신 것 봤습니다. 정성이 정말 대단하세요. 세심하고 꼼꼼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신) 그러시군요, 아이가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한다고요.

도) 네, 아이가 만으로 3~4살 정도부터 수학에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저와 차를 타고 다닐 때도 숫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을 보고 “가장 큰 숫자가 뭐야?”라는 식으로요. 아니면 그 숫자들을 더해서 얘기하기도 하고요.

신) 어머니가 안 가르쳐줘도 스스로 수에 대한 개념에 관심을 보인 거군요.

도) 맞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가르친 건 만으로 5~6살 정도였어요. 처음부터 수학을 가르치려 한 건 아니었고요. 5살 때 처음 한글을 가르치는데 수학도 함께 알려주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또 주변에서 아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연습, 흔히 ‘궁둥이 붙인다’고 하죠. 이거 시켜야 한다고 하길래 연산 문제집을 하나 사서 아이랑 같이 풀기 시작했어요.

신) 궁둥이 붙이는 연습은 정확히 몇 살 때부터 한 건가요?

도) 만으로 4살 때부터요.

신) 아이가 잘 앉아 있던가요?

도) 네, 잘 앉아 있었습니다.

신) 혹시 어떤 방법으로 앉아 있게 하셨나요?

도) 윽박지르거나 억지로 시키진 않았고요. 그냥 상에 앉아서 학습지 풀게 하고, 전 옆에서 지켜봤어요.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날에는 그림 그리면서 같이 앉아있었어요. 40분 정도 서로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요.

신) 정말 어릴 때부터 시키셨네요. 사실 아동 발달 측면에선 부적절한 교육입니다. 특히 라윤이처럼 불안감이 높은 아이에게는요. 산만한 편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동적인 활동이 신체나 감각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되죠.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히는 건 초등 1~2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라윤이는 워낙 겁이 많은 편이라 어머니 말을 잘 들은 것 같아요. 똑똑해서 말귀도 잘 알아듣고요.

도) 아, 그랬군요.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아이의 재능, 함부로 속단하지 말라 

신) 다시 수학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보기에 라윤이의 수학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도) 문제집 수준을 조금씩 높여가면서 하고 있긴 한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하나 하고 싶은데요? 라윤이가 수학을 공부하는 목표가 뭔가요?

도) 목표요?

신) 수학을 가르쳐 얻고자 하는 바요. 아이에게 학습을 시킬 때 부모 역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갈팡질팡하지 않거든요. 목표는 막연하게 설정해선 안 되고요. 구체적으로 정하는 게 좋아요. 그러기 위해선 양육자가 공부해야겠죠? 정보도 열심히 찾아보고요. 수학에 대한 책을 읽어보거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제집 수준만 계속 높여나가는 학습을 하면 연산 외에 응용문제를 만났을 때 아이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수학에 대한 흥미도 잃을 수 있고요.

도) 목표를 어느 수준으로 설정하면 좋을지 고민입니다. 라윤이는 또래보다 습득이 빠른 편이에요. 성취욕도 강하고요. 그렇다고 영재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심리적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의욕은 돋우는 적정선을 모르겠어요.

신) 잠깐만요, 이제 겨우 학교에 들어간 아이인데 영재다, 아니다 너무 빨리 단정 짓는 것 같은데요. 아직 제대로 공부를 해본 것도 아니잖아요.

도) 영재라면 그런 기질이 더 빨리 드러나지 않나요?

신)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부모님이 영재에 대해 착각하시는데요.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어머니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편이셨나요? 대학 땐 무엇을 전공하셨나요?

도) 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이과였고요, 3학년 때 문과로 전과했습니다. 대학교에선 국문학을 전공했고요.

신) 갑자기 전과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도) 저는 과학이랑 수학을 정말 좋아했어요. 꿈이 과학자일 정도로요. 그런데 수학 점수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죠. 열심히 했는데도요. 반면 언어 영역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도 성적이 잘 나왔고요. 대학 입시 등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 전과했습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를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신) 혹시 전과할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상의를 해보셨나요?

도) 아니요, 그러지 않았습니다.

신)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도) 선생님과 부모님이 크게 신경 쓸 학생이 아니었거든요.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해 비평준화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중위권에 머물렀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크게 관심을 갖진 않으셨어요. 부모님도 믿어주고 지지한다는 입장이었어요. 당시 과외를 받을 만큼 가정환경이 좋지 않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의 과거가 아이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자세히 물어보셔서요.

신) 관련이 많습니다. 아이를 기를 때 양육자가 살아온 방식에 아이를 맞추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아이에게 궁둥이 붙이는 연습을 시키고, 차근차근 문제집을 풀리는 것도 다 스스로 통제하는 삶을 살아온 양육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요.

도)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신) 아이가 수학을 잘하니, 그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고 하셨죠. 그런데 무의식에는 양육자 본인이 수학을 잘하고 싶었던 소망도 내재해 있을 거예요. 본인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아이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이죠. 하지만 반대편에는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던 경험도 자리 잡고 있어요. 어머니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는데도, 친구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판단했어요. 결국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이 아닌 문과의 길을 택했고요. 이런 본인의 경험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있는 거로 보여요.아이가 또래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지만, 영재는 아닌 것 같다고 자꾸 선을 긋는 거죠.이렇게 아이의 가능성에 한계를 지으면, 비범한 아이도 평범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도)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들어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신)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는데 어머니는 정말 출중한 분이에요. 아이 문제집을 직접 만드는 정성을 보고 제가 놀랐거든요. 그런데 어렸을 때 수학을 뛰어나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아이의 창의성, ‘틈’에서 생긴다 

도) 그럼 앞으로 제가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신) 우선 어머니부터 먼저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보세요. 일상생활을 하다가 때로 한 30% 정도는 ‘뭐 어때, 될 대로 되라, 케세라세라’라며 모범생 틀을 깨보는 거예요. 특히 라윤이처럼 불안이나 긴장이 높은 아이에게는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말 효과적이에요.

도)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신)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우리 오늘은 문제집 풀지 말고, 각자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해볼까?”라고 제안하는 거예요.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아이는 입체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얻습니다. “구름이 솜사탕처럼 생겨서 먹어보고 싶다”와 같은 문학적 표현도 어느 순간 튀어나올 거고요.

도) 그동안 ‘라윤이가 아이답지 않게 성실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이가 잘 따라오는데, 이게 맞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계속 있었어요.

신) 아이가 똑똑한 데다, 겁이 많아서 어머니 말을 잘 따르는 거예요. 아이의 연령대에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연습을 시키셨잖아요, 아이에게 어른스러움을 요구한 거예요. 나이에 맞지 않는 엄격한 교육이었던 거죠. 기질 자체도 예민한 것 같아요.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물어뜯은 것도 극도의 예민함을 표출한 사례로 볼 수 있어요. 이런 아이들에겐 쪼는 것보다 푸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제 두 아들은 어렸을 때는 라윤이랑 정반대였어요. 극도로 부산스러워서 자기 전엔 꼭 ‘얼음 게임’을 했어요. 가만히 앉아 있게 만드는 연습을 한 거죠. (웃음)

도) 손톱 물어뜯는 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종종 뜯더라고요. 이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신) 3개월이라도 심리치료를 받으세요. 금방 좋아질 거예요. 사람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소 방법을 찾아요. 아이 중에선 긴장을 낮추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죠. 손톱을 물어뜯거나, 틱이 오는 아이도 있고요. 어떤 애들은 자위를 해요. 그렇다고 병이 있는 게 아닙니다. 어른도 불안하면 다리를 떨곤 하죠. 똑같은 겁니다.

도) 아이가 긴장을 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네요.

신) 자세가 경직돼 있을 때는 몸을 쓰도록 유도해주세요. 틀에서 벗어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아이들은 많이 성장해요. 저는 주말이나 방학 때 일정 기간 공백을 뒀어요. “너희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하면서요. 단,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는 안 돼요. 중독성이 있거든요. 제 아들들은 장난감도 갖고 놀고, 물총 놀이도 하고 그랬어요. 직접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더라고요. (웃음) 이때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보면 관심사도 알 수 있어요.

도) 아이는 저와는 좀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저의 방법을 고수했나 봅니다. 오늘 상담을 통해 느끼는 게 많아요.

신) 아이가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틈’이 필요해요. 강박과 통제 속에서는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 힘들어요. 라윤이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또 공부하고 싶어하니까 지적 자극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의 가능성을 단정하지 말고, 깊이 있게 배울 기회를 주세요. 어머니가 도와주기 어렵다면 아이에게 좋은 과외 선생님을 소개해주세요. 라윤이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 말을 믿어보세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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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아이 발달과 성향에 맞는 교육법이 필요합니다. 궁둥이 붙이는 연습은 초등 1~2학년 때쯤이 적당해요. 어린 아이에게는 동적인 활동이 신체나 정서 발달에 좋습니다.
② 양육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아이에게 이입하는 경향이 있어요. 양육자의 방식을 고수했다간 아이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양육자 본인의 틀부터 깨세요.
③ 아이의 창의성을 길러주고 싶다면 ‘틈’을 주세요. 가끔은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통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환경을 즐기는 겁니다. 이때 아이들의 사고가 유연해지면서 많이 성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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