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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100만 디지털 인재? 수포자 많은데 어떻게?” 해법은

중앙일보

입력 2022.06.30 06:00

사진=김상선 기자,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사진=김상선 기자,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 중 교육 정책 1호로 발표한 내용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윤 정부의 미래 지향성을 ‘과학기술·창의교육·청년’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2027년까지 소프트웨어(SW)·인공지능(AI) 교육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 핵심 골자.

이런 새 정부의 포부에 ‘할 말 있다’는 젊은 기업인들이 있다. 코딩 교육 스타트업 엘리스 김재원(36) 대표와 중·고등 수학 교육 스타트업 프리윌린 권기성(33) 대표가 주인공이다.

엘리스는 누적 이수자 20만명의 실습형 코딩 교육 플랫폼 ‘엘리스’를 운영한다. SK·LG·현대차 등 1000여개 기업, KAIST·서울대 등 100여개 대학, 고용노동부·국방부 등 정부·기관이 엘리스를 통해 코딩 교육을 제공한다. 최근 개발자 평가·채용 플랫폼 ‘엘리스웍스’를 출시했다.

김 대표는 KAIST 박사과정 재학 시절 SW·AI 교육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조교로 일하면서 학부생 500명이 손으로 써낸 코딩 답안지를 채점하던 게 계기였다. ‘실무를 위한 시험’이 아닌 ‘점수를 위한 시험’을 치르는 교육 현장에 대한 의구심이 엘리스 창업으로 이어졌다. 창업 6년째인 지난해 매출 110억원을 기록했다.

권기성 대표가 2016년 창업한 프리윌린은 대치동 학원 4곳 중 1곳이 쓴다는 수학 문제은행 플랫폼 ‘매쓰플랫’ 운영사다. 혈우병 환자인 권 대표는 해외 교육봉사를 통해 “나 하나 평생 살리는 약값이 아프리카에서 1600명의 밥값인 걸 알고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해 창업을 택했다.

중학교 시절 수학 28점의 ‘수포자(수학포기자)’였던 그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 매쓰플랫을 개발했다. 매쓰플랫은 현재 전국 수학학원 점유율 10%, 주 4일 이상 사용자가 90%다. AI가 교과서와 시중 교재를 분석해 문제를 낸다. 지난해 학생용 문제은행 앱 ‘풀리수학’과 과외 매칭 서비스 ‘풀리과외’를 출시했다. 매출은 지난해 70억원.

정보 교육, 1%도 안 된다

팩플팀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엘리스 본사에서 김재원 대표와 권기성 대표를 만났다. 윤석열 정부의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안에 대해 이들은 “한국의 SW·AI 교육은 밑바닥을 끌어 올리는 것부터가 과제”라고 했다. 해외보다 이미 많이 뒤처졌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에 대한 인식 및 태도는 OECD 주요 15개국 중 14위였다.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한국은 IT 강국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현실은 다르다는 건가.
김재원 “통신·기기 보급 등 인프라에 한정된 얘기다. SW·AI 관련 공교육은 걱정되는 수준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간 정보 수업시수는 51시간이다. 전체 수업의 0.4%다. 그마저도 고등학교에선 선택 과목으로 물러난다. 영국(374시간), 일본(405시간), 중국(212시간), 인도(256시간)에 비하면 크게 뒤처진다.”
권기성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수천 억원을 들여 태블릿 PC 보급 사업을 했는데, 정작 학교는 태블릿을 활용할 수업 콘텐트가 없어서 막막해한다. 2018년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를 분석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학교 내 ICT 접근성은 40.4%로 OECD 평균 이하인 21위, 수업시간에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는 비율은 2.96%로 31위였다.”
엘리스 김재원 대표 약력.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엘리스 김재원 대표 약력.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SW·AI 교육이 왜 등한시되는 걸까.
김재원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입시 중심 교육의 영향이 너무 강하다. 디지털 사회가 됐고 개발자가 유망 직종이란 걸 아이들도, 부모들도 안다. 하지만 SW·AI에 관심 있는 아이라도 학교에서 그 흥미가 이어지기 너무 어렵다. 내신이나 대입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과연 산업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방향일까? 지금은 대졸자도 1인분 하는 인력이 되려면 추가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부모나 학생이 대입 준비를 무시하긴 어렵다. 당장 변하긴 힘들어보이는데.
김재원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로 부르는 것 아닌가. 발전하는 사회, 변하는 사회에 대한 인지는 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기회는 제공돼야 한다. ‘입시 생각하면 SW·AI 교육 끼워넣을 자리가 없다’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대학 중심 인재 양성, 그게 맞나”

새 정부의 SW·AI 교육 정책 내용을 뜯어보면, 대학 위주 지원이 많다.
권기성 “우리 회사 개발자 4분의 1은 마이스터고 출신이다. 나도 컴퓨터특성화고를 나왔다. 채용 만족도나 생산성? 굉장히 높다. 지금까지의 IT 인재 양성책은 ‘대학부터 시작’이란 느낌이 강하다. 실무력은 결국 프로젝트 경험에서 나오는데 단순 기간만 봐도 대학은 4년이고, 초중고는 12년이다. 4년보단 12년 쪽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김재원 “나는 반대로 ‘대학 이후’의 교육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본다. 과거엔 대학 때까지 배운 걸로 60세, 80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고급 개발자는 그렇게 단기간에 양성되지 않는다. 재교육 프로그램 같은 추가적인 배움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 약력.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 약력. 그래픽=김혜림 디자이너

사라진 기초, 수학·통계·코딩

디지털 시대의 공교육,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김재원 “컴퓨터과학의 기초가 되는 이산수학(함수, 확률, 알고리즘 등)은 중·고교 수학에서 전혀 강조되지 않는다. 데이터 시대의 필수 덕목인 ‘통계’도 기초 교육에서 빠져있다. 코딩의 경우 아직 공교육 도입 시도 단계로, 지자체마다 수준 차이가 크다.”
권기성 “AI 산업이 크려면 수학적 사고 능력이 중요하다. 알고리즘 자체가 행렬로 이루어져 있고, 중·고급 개발일수록 미분과 벡터가 연결되는 게 많다. 그런데 이런 IT 시대에 ‘수포자’는 점점 늘고 있다. 학업 성취도 평가를 보면 고교생 수포자는 9%→13.5%→14.2%(2021)로 매년 증가세다. 일주일에 평균 4시간씩, 12년이면 약 2000시간 이상을 공교육이 수학에 할애하는데, 의미있는 SW·AI 전문 인력으론 이어지지 않는다.”
개발자 등 ‘디지털 인재’는 원래도 수학 잘하는 소수의 진로 아니었나? 수포자가 느는 게 나쁜 신호인가.
권기성 “모두가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디지털 문해력, 데이터 해석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점점 늘고 있다. 수포자 범위를 좁힐수록, 즉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디지털 인재가 나올 확률도 커지지 않겠나. 게다가 요즘은 수리 능력이 좋은데도 수포자가 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수포자가 왜 이렇게 늘어날까. 
권기성 “수학은 위계가 강한 학문이라, 중간에 몇 번 개념을 놓친 것만으로 흥미를 잃기 쉽다. 이때 맞춤형 교육으로 보완해주면 되는데, 획일화된 교육 과정이 이걸 방해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수포자가 나오는 시기를 초등학교 3학년 분수 단원부터라고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좌절감을 느낀 아이는 나중에 진로를 선택할 때도 이공계를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은 구조개혁 5대 부문 중 하나로 ‘교육개혁’을 꼽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새 정부 경제정책은 구조개혁 5대 부문 중 하나로 ‘교육개혁’을 꼽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선생님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소프트웨어 공교육은 왜 잘 안될까. 한계가 어디서 온다고 보나.
김재원 “우선 교원이 부족하고, 교원 전문성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건 선생님들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SW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난도가 원래 높다. 요즘은 그 진화 속도까지 빨라져서 참된 교육자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더구나 누굴 가르칠 수준의 실력이면, 몸값 높게 쳐주는 개발자로 일하는 게 백번 나은 상황이다. SW 교육 종사자를 만들어낼 유인이 없다.”
어떤 해결 방안이 있을까.
권기성 “초중고 학교에 IT 종사자를 투입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교대·사범대를 나오거나 교직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국내 교원 선발의 폐쇄적 구조 때문에 외부 강사 영입이 어렵다. 그러니 기존 교원의 재교육을 지원하고, 선생님과 학생 양쪽에 맞춤형 학습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는 민간 기업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김재원 “일전에 중국 상하이의 한 국제학교 견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구글 엔지니어 출신의 ‘IT 헤드(head)’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가 쓰는 플랫폼과 교육 콘텐트를 총괄하는 역할이었다. IT 교육의 질을 굉장히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IT 산업과 교육 양쪽을 잘 아는 컨설턴트를 학교에 두는 것도 방법 아닐까.”
엘리스 김재원 대표(왼쪽)와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엘리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상선 기자

엘리스 김재원 대표(왼쪽)와 프리윌린 권기성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엘리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김상선 기자

“해법은 에듀테크”

학생들 가르칠 교원도 부족하고, 학력 격차도 심한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권기성 “눈높이 교육을 돕는 에듀테크가 필요하다. 교사가 학생을 1:1 관리하기 힘든 학교에서도 학습 성취도에 따른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할 수 있고, 데이터 활용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듯, 태블릿 PC를 학생들에게 보급해도 활용할 콘텐트가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은 연간 64조원을 공교육 에듀테크에 쓴다. 민관협력으로 콘텐트 오픈마켓을 조성해 학교가 학습 솔루션을 골라쓸 수 있게 해놨다. 시장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올리는 좋은 모델인데, 우리는 이런 모델을 ‘사교육에 힘 실어준다’면서 제한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이분화하는 시선은 한국 사회만의 특수성이다. 그 기조를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시장과 협력해) 공교육의 질을 올리면 사교육은 없어진다.”
김재원 “학습 콘텐트는 물론이고 낙후된 학습관리시스템(LMS)도 민관협력으로 풀 수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과 일해보면, 인터넷 접속만으로 돌아가는 실시간 프로그램의 성능이 더 우수한데도 여전히 (민간업체에) 종이나 CD로 남는 ‘현물 기록’을 요구한다. 이런 허들이 낮아져야 에듀테크가 학교에 원활하게 도입될 수 있다. 이젠 시스템과 솔루션의 힘으로 ‘디지털 인재’ 풀(pool)을 관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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