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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일본에도 유니콘이 있나요?" by 윤휘곤

중앙일보

입력 2021.10.23 08:00

팩플레터 157호, 2021. 10. 21
'목요 팩플' view입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드리는 익명의 벤처투자자 '윤휘곤'씨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일본, 여러분에게 일본은 어떤 의미인가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와 북미 등에서 오랜 기간 벤처투자자로 활동한 윤휘곤씨는 한국의 창업가들이 일본을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규모에 비해 유니콘 기업이 적은 일본의 최근 변화에 주목합니다. 오늘 그의 칼럼엔 투자자나 창업가가 아니더라도,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윤휘곤의 관찰이 잘 녹아있네요.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Today's Topic
일본에도 유니콘이 있나요? 

“아니 갑자기 왜 우시는 겁니까?”
인터뷰를 하던 중년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당황해하는 기자에게 그 부인은 이렇게 답했다. “아들은 도쿄대 경제학부를 나왔어요. 그 아이가 글쎄 스타트업에 합류를 하겠다지 뭐예요. 억장이 무너집니다”라고. 2016년 쯤인가 일본의 NHK가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일본 사회가 스타트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도쿄대 졸업했는데, 고작 스타트업에?

스타트업 통계 사이트인 CB Insights에 따르면 글로벌 유니콘 기업 842개 중에서 일본 유니콘은 6개다. 아시아에선 중국 유니콘이 165개로 가장 많다. 한국 11개, 싱가포르 13개, 홍콩 7개, 인도네시아 5개 그리고 인도가 40개다.

일본이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 유니콘은 100여개쯤 되는 게 맞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유니콘 기업의 숫자가 국가 경제의 수준 자체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제의 활력도와 미래 먹거리를 생각하면 새로운 기업이 꾸준히 등장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팩플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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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구축해 놓은 미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가는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관경(政官經)의 관계가 유난히 단단한 일본도 그렇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3년까지 20개의 유니콘 창출을 목표로 글로벌 수준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J-Startup’을 출범한다고 2018년 발표한 바 있다. 각계의 전문가 추천으로 선정되는 ‘J-Startup’은 대기업, 벤처캐피털, 엑셀러레이터 등의 ‘J-Startup Supporters’ 및 정부 유관 부처로부터 성장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민간에도 다양한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 혹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닛세이캐피털의 ‘프로그램 50M’, 딥코어의 인공지능(AI) 특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커널 홍고’(Kernel Hongo), 스포츠 관련 기술 특화 프로그램인 ‘스포츠테크 도쿄’ 등이 몇 년 전부터 가동 중이다. 구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구글캠퍼스도 한국(2015년)보다는 늦었지만 2019년 도쿄에 문을 열었다.

투자 조합도 다양하다. 초기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사무라이 인큐베이트, 비대시 벤처스, 아프리코트 벤처스 등이 활약 중이다. 엑스테크 벤처스는 중년 창업가에 투자하는 펀드를 결성한 바 있다. 크립토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도 2018년 이후 제법 많아졌고, 로봇 전용 펀드나 모빌리티 특화 펀드 등 분야별 펀드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J-유니콘은 왜 이렇게 적나 

이렇듯 외견만 보면, 일본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주 분주하다. 그런데 왜 유니콘 숫자는 그렇게 적을까. 수년간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켜 본 바, 그 원인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기업가들이 지닌 꿈의 크기가 작다. 일본의 나스닥이라 불리는, 도쿄 증시의 부설 거래소는 ‘마더스’(MOTHERS, マザーズ)다.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들은 마더스 상장을 원한다. 문제는 여기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2000억~3000억원 규모로 상장되고 나면, 대다수 일본 창업가들은 성취감에 금세 취해 버린다. 그 배경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 몰입하는 일본 문화가 있다. 마더스에 기업을 상장한 창업가들은 같은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한 동기와 자신을 비교하며, 현 시점 비교우위인 상황에 만족해 버린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기가 창업한 스타트업을 ‘평생직장’ 바라보듯 하기 시작한다. 야망을 접어버린 기업은 성장이 멈추기 마련이다.

둘째, 일본 내수시장은 ‘애매하게’ 크다. 기업가들에게 내수시장의 규모는 클수록 좋다. 같은 사업을 미국에서 하는 것과 싱가포르에서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쿠팡, 토스, 무신사, 마켓컬리 등 한국의 유니콘들만 봐도 한국에서 잘 성장해왔다. 다만, 그 기업들이 ‘어디까지 더 성장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일본의 경우 1억 2000만 이상 인구를 보유한 내수시장은 스타트업엔 꽤 큰 시장이다. 그렇다고 북미 수준으로 큰 건 아니다. 그래서 문제다. 내수시장의 규모가 참 애매하게 크다는 것. 일본 창업가들이 굳이 일본 밖에 나가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아도 될 만큼의 사이즈다. 1970~80년대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옛 이야기다. 요즘 일본의 창업가들은 일본 안은 너무 포근하고, 이 섬을 벗어나면 너무 추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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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무결점주의가 일본 창업가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의아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게 사실 나쁠 이유는 없다. 깔끔하고 매끈한 디자인에 고장이 잘 나지 않는 완벽한 제품 - ‘메이드 인 재팬’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디지털 경제에서 스타트업에도 이런 무결점주의를 적용하려 든다면? 이건 약점이 된다. 스타트업은 시간과의 싸움이 일상이다. 치열한 경쟁, 참을성 없는 소비자, 수많은 대체재 등으로 인해 스타트업은 시간이란 자원을 무한정 쓸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모든 스타트업 경영전략의 공통분모는 민첩함(Agility)이다. 민첩함과 완전무결함은 양립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스타트업이 택하는 무기는 피버팅(Pivoting), 즉 사업모델이나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일본 창업가들이 느릿느릿 갈 때 미국⋅중국의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빠르게 피버팅하며 활개를 치고 다닌다. 누구보다 민첩하고 날렵하게.

마지막으로, 생태계의 토대가 되는 인적 자원이 부실하다. 우리가 미국 실리콘밸리를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풍부한 인적 자원이다. 명문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밀집한 이곳에 전 세계 인재가 모여든다. 반면, 일본 벤처생태계는 그런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스타트업 역사가 단절적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C레벨 (CEO, CFO, CTO 등) 인력 풀이 부족하다. 젊은 창업가에게 멘토가 되어줄 스타트업계의 선배들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일본 은행권에서 주도하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보면 평생 소비자 금융업을 했던 연장자들이 멘토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창업가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융자 받는 법 혹은 파산을 피하는 법? 차라리 70년대 전세계를 호령하며 누비던 종합상사 출신 선배들에게 호연지기를 배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소니도 혼다도 스타트업이었다

이 외에도 일본 벤처생태계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들은 많다. 투자자들이 주로 초기나 성장기에 몰려 있기 때문에 유니콘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투자가 드물다. 인수합병이나 스톡옵션 등과 관련된 세금과 회계 기준이 여전히 낡은 상태 그대로다. 구주 거래나 혹은 자산 매각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투자 자금의 흐름도 좋지 않다.

이런 한계나 단점들에 대해 일본 벤처생태계의 이해관계자들도 대부분 잘 안다.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그 실태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여건에서도 종종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의지로 도전하는 기업가들이 있는데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중간에 주저앉고마는 이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짙은 패배주의가 일본 창업 생태계 저변에 눅눅하게 깔려있다. 이런 상태에도 일본 시장을 벗어날 생각을 좀체 하지 않는 젊은 창업가들을 볼 때면 안타깝고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가끔 그들을 만날 때면 나는 다소 주제넘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일본 경제의 혁신의 상징들로 명성이 자자했었던 기업들. 소니, 혼다, 샤프, 그리고 수많은 일본의 선배 기업들, 그들도 모두 시작은 스타트업이겠지요? 그 선배 기업가들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팬데믹, 일본을 밀어주는 뒷바람

위기는 기회의 관문이기도 하다. 일본 창업생태계엔 코로나19(COVID-19)가 그런 기회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일본 사회는 자신들의 디지털 환경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 철저히 자각한 것 같다. 그 자각을 통해 유니콘 불모지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는 일본 벤처생태계에는 최근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

일본의 인적자원관리 소프트웨어(SaaS) 기업 스마트에이치알(SmartHR)은 2013년 창업 후 지난해까지 8년에 걸쳐 기업가치 2000억원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천천히 꼼꼼하게, 일본스럽게. 그런데 올해 초 이 기업은 순식간에 기업가치가 열 배나 뛰었다. AI 기술에 기반하여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뉴스(SmartNews), 핀테크 기업인 페이디(Paidy), 우주 인공위성 궤도에 있는 쓰레기를 AI 기술로 수거하는 아스트로스케일 (Astroscale), 헬스케어 앱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올엠(AllM), 그리고 한국의 리멤버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산(Sansan) 등 스타 기업들이 일본에서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부품・소재・화학・의료 분야로 스타트업 훈풍이 점차 확산이 되는 양상이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뉴스를 추천해주는 스마트뉴스 앱. 일본어와 영어로 전 세계에서 서비스 중이다. 2019년 8월 유니콘이 됐다. 사진 구글플레이 앱 캡쳐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뉴스를 추천해주는 스마트뉴스 앱. 일본어와 영어로 전 세계에서 서비스 중이다. 2019년 8월 유니콘이 됐다. 사진 구글플레이 앱 캡쳐

일본 정부는 2021년은 지난 해보다 29% 이상 벤처 투자 규모가 성장했으며, 올해 총 벤처투자 규모가 58억 달러쯤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스타트업 정보지 INITIAL Japan사의 ‘Japan Startup Finance 2021 상반기 최신 속보’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 스타트업 중 자금을 조달받은 곳은 1014개사였으며, 1개사당 투자 조달 규모가 커지는 추세가 지난해보다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이 훈풍을 계속 이어갈지 나는 지켜볼 생각이다.

스타트업의 기본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질서를 깨는 것이다. 일본은 질서를 깨는 것을 터부시하는 사회였고, 지금도 대체로 그런 편이다. 일본은 그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낡은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멈출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도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 실패하고 주저앉아 버린다면 일본 경제의 미래는 다시 어둡고 긴 터널 속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한국 스타트업에 일본이란 

이런 얘기를 한국의 팩플 구독자들에게 내가 왜 할까.
사실 한국 스타트업계엔 미국 편향주의, 실리콘밸리 만능주의가 강하기에 미국 이외 나라의 창업 생태계 동향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도 유니콘 기업 수는 11개에 불과하다. 수년 전보다 분명 좋아졌지만, 여기서 만족할 게 아니라면 우리는 미국 이외 시장에서도 기회를 찾아야 한다. 일본의 창업 생태계를 이해하는 건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어디있는지 아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스타트업에 일본은 다음 두 가지 관점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시장. 해외시장 개척은 결코 쉽지도 않고, 더군다나 일본은 까탈스럽기가 짝이 없는 시장이라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콘텐츠나 유통 혹은 게임 등의 성공 사례로 보면 한국 기업들이 충분히 공략할 만한 곳이다.한국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네이버, 넥슨, 카카오 등이 일본에 잘 뿌리내린 지금은 일본 시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패배주의에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건 두번째다. 창업 생태계적인 관점이다. 한국의 스타트업이 유치할 투자자로서 일본의 자본, 한국의 자본이 투자할 대상으로서 일본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대상일 수 있다. 또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제휴하는 과정 자체도 중요하다. 양국 정부가 풀지 못하는 한일 관계를 경제・산업 관점에서 스타트업이 자연스레 풀어갈 수 있다면, 그 역시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 중에도 최근 양국 창업 생태계는 물밑에서 조용히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올라타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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