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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규도 세뇌시킨 딥러닝 전도사, 남세동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8:40

팩플레터 122호, 2021. 07. 22 

Today's Interview  딥러닝은 인간 지능을 대체할까?

122호 팩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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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 오늘은 ‘목요 팩플’ 인터뷰입니다.
주인공은 남세동 보이저엑스 대표입니다. 얼마전 '주 52시간제를 왜 스타트업에 강요하느냐'는 도발적인 글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창업자입니다. 물론 이 글 이전에도 그는 IT업계에서 유명한 서비스를 척척 내놓던 개발자 출신이고요. 인간처럼 언어를 배우고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인공지능 GPT-3의 한국어버전을 연구 중이기도 해요.

에너지 넘치는 남세동 대표를 김정민 기자가 만났는데요. 남세동 대표에게 왜 보이저엑스를 창업했는지, 공동창업자인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과 김창한 대표에게 왜 딥러닝을 해야한다고 설득한 건지 들어보고 왔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

열아홉 소년은 첫 직장에서 ‘천재’ 소릴 들었다. 인턴 시절 기획·개발한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의 히트 덕이었다.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네이버에 인수된 검색엔진 ‘첫눈’에서 장병규 창업자(크래프톤 의장)에게, B612와 LINE 카메라를 성공시키며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에게 인정받았다.

남세동(42) 보이저엑스 대표이야기다. 그의 이름 앞엔 늘 ‘천재 개발자’, ‘스타 개발자’ 수식어가 붙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세돌 기사가 바둑 9단이었다면, 나는 개발 7.5단쯤에서 멈췄다. 기획·디자인까지 하는 PM(프로젝트 매니저)이 되고 싶어 창업한 것”이라, 말한다.

그는 2017년 보이저엑스를 창업했다. 딥러닝 인공지능(AI)이 갈 수 있는 모든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항해자(voyager)를 지향한다. 지난달 소프트뱅크벤처스·알토스벤처스·옐로우독에서 100억원씩, 총 300억원을 투자받았다. 남 대표는 “(지금의 보이저엑스는) 모바일로 되는 건 다 해보던 2009~2010년의 카카오 같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카카오톡도 나온 것” 아니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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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 보이저엑스의 본능

보이저엑스는 창업 후 매년 딥러닝 기반 서비스를 출시했다. 영상 편집기 ‘브루’(2018년 출시), 모바일 스캐너 ‘브이플랫’(2019년), 손글씨 폰트 제작 서비스 ‘온글잎’(2020년) 등. 보통 스타트업이 하나에만 집중해도 될까 말까인데, 이 회사는 단기간 다작에 능하다. 그렇다고 닥치는대로 다 하는 것도 아니다. 키워드는 딥러닝.

생활밀착형 아이템이 많은데, 보이저엑스는 뭘 하려는 건가.
우리 회사를 관통하는 건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거창하게 시작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상 속 혁신에서 출발할 뿐이다. 밥 먹다, 길 가다, 기사 보다, 택시 잡다, 영화 보다 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토스를 봐라. 송금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금융의 모든 것을 한다. 토스가 은행이 된다? 5년 전엔 아무도 생각 못했다.
모바일 스캐너나 폰트 제작 서비스, 기존에도 있었다. 이전과 다른 혁신이 있나.
모바일 스캐너는 10년 전에도 있던 앱이다. 하지만 종이의 곡면을 자동으로 펴주는 기능은 ‘브이플랫’이 유일하다. 쉬워 보여도, 고도화된 딥러닝 기술이 필요하다.
손글씨를 폰트로 만들어주는 게, 왜 혁신인가.
손글씨 폰트가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개성과 감성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술의 핵심은 더 싸게, 더 빨리다. 보이저엑스가 원하는 수준으로 기술이 완성된다면 현재 수백만원-수주일 걸리는 손글씨 폰트 제작이 단 10만원, 10분이면 끝난다.
어쨌든 AI 서비스는 성능이 좋아야 계속 쓴다. ‘브루’의 음성인식 정확도는?
영상 편집은 90% 이상이 수작업 ‘노가다’다. 브루는 여기에 인공지능을 입혔다. AI가 영상 속 음성을 인식해 자동으로 자막을 달면, 사용자는 문서를 편집하듯 수정하면 된다. 전체 사용자의 70%가 브루를 1회 이상 썼고, ‘브루 덕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크리에이터도 많다. 체감 정확도는 개인 차가 있다. 한국어 음성 인식 기술 자체가 아직 영어만큼 완전하지 않은 탓이 큰데, 3년 안에 눈에 띄게 좋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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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 기업의 본능

창업 후 시도해본 프로젝트가 몇 개인가.
대략 22개? 이중 살아남은 3개가 브루, 브이플랫, 온글잎이다.
하나만 파도 될까 말까한 게 스타트업이다. 왜 여러 일에 도전하나.
대기업은 왜 여러 일을 할까? 이것저것 도전하는 게 기업의 본능이다. 돈, 사람, 시간이 있다면 굳이 하나만 할 이유가 없다.
Go 또는 Stop, 결정 기준이 있나.
다섯 가지 기준이 있다. ① 언젠가 1억명 이상 쓰거나 연간 10억원 이상 매출이 날 것 ② 딥러닝으로 가능해진 것 ③ 향후 10년간 성장할 것 ④ 6개월 내 런칭 가능할 것 ⑤ 글로벌에서 통할 것.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이 기준에 맞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 2주 후, 한 달 후, N달 후, 런칭 전, 런칭 후 등 하나라도 충족 못하면 관둔다.
한방 크게, 세상을 놀래킬 거대한 프로젝트를 내놓을 법도 한데.
반대로 묻고 싶다. 거대한 일이란 게 뭔가? 화성에 가거나 달 탐사선 만드는 것? 영상 편집은 지금이 태동기다. 올해 1월 기준 구독자 10명 이상인 유튜브 채널이 최소 4800만 개다. 모바일 스캐너 시장은 어떨까. 여러 스캐너 앱의 누적 사용자를 추산하면 최소 5억명이다. 브이플랫은 1년 만에 5배 성장했다(올해 5월 월 사용자(MAU) 100만명). 10년 후 ‘브루’와 ‘브이플랫’은 영상·이미지 시대의 파워포인트와 엑셀이 될 거다. MAU 1억명도 가능하다. 1억명, 충분히 거대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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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으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한계를 잘 모르겠다. 신기한 AI는 다 ‘딥러닝’이다. 통·번역, 시 쓰기, 그림 그리기, 암 판별, 자율주행…. 적어도 인간 지능은 전부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게임사 크래프톤과 GPT-3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고.
크래프톤의 의뢰로 GPT-3의 한국어 모델을 함께 개발 중이다. 갖고 있으면 언젠가 쓰겠지 싶다. 모든 정보와 지식은 언어로 교환되니까. 언어모델은 AI 학습의 아주 기초적인 토대다. 사람과 비슷하다.

*GPT-3는 일론 머스크 등이 설립한 AI 연구소 ‘오픈 AI’가 개발한 자연어처리 AI. 딥러닝을 이용해 언어를 배운 AI가 실제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한다.

보이저엑스를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과 공동창업했다, 왜?
장 의장과는 25년 된 사이다. KAIST 컴퓨터 동아리 선후배로 만나, 네오위즈에서 창업자와 인턴으로, 첫눈에서 창업자와 개발·기획팀장으로 함께 했다. 언제 한 번 같이 창업하자는 얘긴 꾸준히 오갔다. 작은 회사 만들긴 싫고, 100억원 있으면 창업해야지 하던 차에 배틀그라운드가 터졌다. 장병규 의장이 150억원을 개인 투자했다. GPT-3 공동 프로젝트는 내가 장 의장에게 딥러닝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하게 된 거다. 창업할 때까지만 해도 장 의장은 딥러닝에 관심이 없었다. 김창한 대표가 딥러닝 공부를 시작한 것도 나한테 딥러닝의 중요성을 세뇌당한(?) 장 의장 추천 때문으로 알고 있다(웃음).

투자, 싸인 전에 신뢰

2017년, 남 대표가 창업을 결심했던 결정적 계기는 위메이드의 투자 제의였다. 금액은 100억원. 뭘 할지 구상도 없던 회사에 매겨진 기업가치는 무려 600억원. ‘투자하겠다’는 위메이드 대표의 수차례 확언에 사무실을 꾸리고 팀원을 영입했지만, 4개월 뒤 돌아온 이메일엔 ‘투자하지 않음 결정’이 쓰여 있었다.

당시로선 믿었던 자금줄이 끊긴 셈인데, 어쩌다?
2017년에도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그때 내가 못 본 건 법이나 서류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도장 찍기로 한 날 아침에 이메일로 파투날 줄 알았겠나. 월세 계약서 중요하지만 집주인 어떤지가 더 중요하고, 근로계약서 중요하지만 팀장 누구냐가 더 중요하듯이, 그 이후론 계약서 이면의 사람을 더 많이 보게 됐다.
이번엔 유명 투자사 3곳에서 투자 받았다.
대표들과 이미 알던 사이라,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었다. 본 계약 전 핵심만 적힌 텀시트(term sheet)에 소프트뱅크벤처스, 알토스벤처스, 옐로우독과 돌아가며 싸인을 하는데 그 과정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첫 회사가 싸인하고 스캔본 보내고 다음 투자사가 다시 그걸 반복하면서 싸인들이 점점 흐려지고 서류는 삐뚤해지더라. 웃겼다. 각각 100억짜리 싸인인데, 법과 서류란 게 사람 사이 신뢰에 비하면 참 가볍구나 생각했다.
시리즈A에 300억원이면 작지 않다. 확실한 수익모델도 없는데, 투자사는 뭘 믿고?
투자사 3곳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에게 ‘언제 돈 벌 거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나한테 ‘돈을 너무 안 쓴다’고 나무라더라. 최근 300평짜리 새 사무실을 얻었는데 “지금 있는 150평 사무실은 정리하는 게 낫겠죠?” 물어보면 “450평 쓰세요” 할 사람들이다.
스타트업이 돈 벌겠단 계획과 의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보자. 투자사들과 우리 중 누가 더 돈을 벌고 싶을까? 스타트업이다. 우리한테 돈 언제 벌겠냐고 묻는 게, ‘할 필요 없는 질문’인 걸 그들도 아는 거다. 지금의 우린 돈을 잘 쓰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내년 안에 브루나 브이플랫으로 수익모델 실험도 해보려고 한다.

질문, '52시간제, 사다리 걷어차기 아닌가' 

남세동 대표는 페이스북 헤비유저다. 페이스북에 기술과 창업에 대한 인사이트와 경험, 생각을 가감없이 나눈다. 최근엔 “스타트업에게 주 52시간제를 강요하는 것은 하향 평준화고 사다리 걷어차기”란 글을 써 화제가 됐다. 이달 1일부터 보이저엑스 같은 5~49인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됐기 때문. 여기에 여러 국내외 IT 인사들이 댓글을 남기면서 그의 페이스북 피드에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주 52시간제’ 글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미 법은 적용됐는데, 어쩌자는 건가.
52시간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큰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 걸, 내가 몰랐다. 말하고 싶었던 건 ‘일 더 하고 싶은 사람은 더 할 수 있어야죠!’였지, 52시간제 자체에 대단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병역특례 제도, 스타트업한테는 완전 좋아요’라고 외쳤는데, 사람들이 ‘그럼 넌 국방은 필요없다는 거냐?’고 따지는 느낌이었달까.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제가 맞지 않는 이유는.
지식산업, 문화산업은 업무 시간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 놀다가, 쉬다가 일 생각 나고 공부와 일의 구분도 쉽지 않다. ‘몰입 노동’으로 자아실현하는 사람도 많다. 자발적 노동이고 적절한 보상도 제공하는데, 실력 키우고 싶다는 직원에게 “52시간 넘기지 말라”고 말해야 할 때면 참담하다.
직원들은 자신이 로켓(유망 스타트업)에 인재로 올라탈지, 연료로 태워질지 솔직히 알기 어렵다.
주 52시간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용자와 근로자를 착취-피착취 관계로만 보게 한다는 점이다. BTS와 김연아가 회사와 부모님한테 착취당한 걸까? 회사와 근로자는 얼마든지 윈윈할 수 있다. 특히 지식 노동자의 성장에는 배울 수 있는 동료가 있는 회사만큼 좋은 게 없다.

윈윈할 수 있는 직원, 어떤 사람인가. 대표로서 어떤 직원과 일하고 싶은가.
배울 게 많은 사람, 안 될 것 같은 걸 되게 하는 사람이다. 우리 회사는 일을 안 시키려고 노력한다. 우린 어렵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데, 그건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저엑스는 최고의 동료들과, 자기가 원하는 일, 그게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꼭 하고픈 사람들이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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