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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by 윤휘곤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6:10

업데이트 2021.08.21 16:13

팩플레터 92호, 2021.05.13 

여러분, 안녕하세요. 🙋
오늘은 익명의 벤처투자자 '윤휘곤'씨가 보내온 두 번째 글을 보내드립니다. 원고를 처음 받아보고 반가우면서도 순간 큰 숨을 한번 들이쉬어야 했습니다.'하아...미래 일자리'. 기술혁신의 시대에 이만큼 무겁고 중요한 얘기가 있을까요. 일하는 사람인 우리는 나의 일이 어떻게 달라질지,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지(혹은 그런 일자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탐색의 촉을 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레터가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

팩플레터 92호

팩플레터 92호

한국인들이 창업한 스타트업 가운데 잇따라 유니콘이 나오고 있어 한동안 반가웠다. 뉴스를 접하며 이번 팩플 칼럼의 주제를 ‘너’로 정했다. 너=일자리.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가 욕먹고, 우왕좌왕했던 그 문제 말이다. 이 식상한 주제를 왜 또 꺼내느냐고? 국내외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내 눈엔 일자리가 곧 삶이요, 일자리가 곧 나라이기 때문이다. 진지한 이 얘기, 진지하게 한번 읽어주시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 옛날 마르크스가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의식을 자극하며 내던진 이 명제, 지금도 유효기간이 남아 있을까. 마르크스의 다른 철학적 성취는 빛이 바랬는지 몰라도 이 명제만큼은 지금도 부인하기 어렵다. 배고프면 세상만사 부정적으로 보이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문제는 요즘 이 나라의 ‘일자리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서 마르크스의 존재론이 읽힌다는 것.

'남의 일자리'에, 큰소리 치는 자 

20대 초중반 바짝 공부해 고시만 통과하면 평생 쫓겨날 걱정 없이 정년을 기다리는 삶, 고위 행정관료들이다. 정년 퇴직후 받을 연금도 넉넉한 이들에 비해, 일자리가 불안한 국민들의 사정은 절박하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이런 사정은 그가 챙겨야할 수많은 변수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게다가 부서를 옮기고 나면 그 변수마저 잊혀질 것이고.

우리가 직접 뽑은 정치인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임기 동안 국민의 일자리 보다는 자신의(혹은 측근들의) 일자리가 더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 4년 ‘동안’보다는 4년 ‘후’가 더 걱정인 것인지.. 표밭 다지기에 바쁜 국회의원 역시 국민의 일자리를 책임지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자리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다. 국가적으로 일자리는 교육, 복지, 재정, 산업, 국가안보를 망라해 국가생존전략과 도 맞물려 있으니까. 그런데 현실을 보자. 책임의식 없이 양산된 부실한 정책들이 끊임없이 리사이클링되고 있을 뿐이다. (이 정부 역시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겼으면 출범당시 대통령 비서실에 ‘일자리수석’까지 새로 만들었겠나. 그런데 그 면면을 보면…휴, 입 아프다. 그만해야겠다.)

팩플레터 92호. 사진 셔터스톡

팩플레터 92호. 사진 셔터스톡

미래학자들의 예측은 좀 과한 면이 있다(그래야 돋보이기 때문이겠지~). 기술 전망에 기반해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의 전망은 다소 섬뜩하다. 2030년에 일자리 30억개가 줄고, 전통대기업의 절반은 사라지며, 대학의 절반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과격한 예측이 좀 걱정됐을까. 그는 혁신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새로 생길 일자리는 바로 그 기술 때문에, 일자리를 빼긴 사람들이 차지하기는 쉽지 않단 사실을.

오래된 일자리, 줄이는 자 

아시다시피 일자리 감소는 이미 시작됐다. 이 국면에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건 ‘일터의 미래’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해 작업공간을 재창조하는 일, 앞서가는 기업들은 이미 거기 가 있다. 오토스토어라는 노르웨이 기업 얘기다.

오토스토어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결합시킨 ‘큐브’라는 기술로 물류 창고를 혁신했다. 스토리지 자동화 기술 기업이다. 기존 물류 산업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분야는 공간과 노동이었다. 창고 공간을 적절히 관리하고, 쌓아둔 물건을 효율적으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다. 그런데 오토스토어는 창고 내 공간과 인력을 기존 대비 최소 절반 이하(적용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음)로 줄였다. 사람이나 로봇이 선반 사이를 오가며 물건을 넣고 빼던 기존 창고방식 대신, 오토스토어는 창고 전체를 박스로 빼곡히 채워넣고 로봇이 그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며 물건을 쌓거나 꺼내도록 했다. 월마트, 이케아, DHL 같은 글로벌 기업 300여 곳이 이미 이 회사 기술을 쓰고 있다. 오토스토어보다 규모는 작지만 이스라엘 기업인 패브릭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공간 효율이 이토록 극대화되면 노동생산성의 효율도 자연히 높아진다. 물류센터는 앞으로 완벽하게 자동화 될 것이고, 인간이 작업 과정에 개입할 여지도 완.전.히. 사라진다는 얘기다.

자율주행기술(ADT, Autonomous Driving Technology)은 또 어떤가. 인공지능 기술자들은 기차가 지난 100년 이상 철로에서 보여준 ‘효율성’을 이제 도로 위에서 구현하려 한다. 기관사 한두 명이 여객차 8~9량을, 화물차 수십량을 운행하듯 도로위에서 화물도 그렇게 옮기겠다는 것이다. 승용차보다 노선이 복잡하지 않은 화물차의 자율주행은 이미 상용화 임계점을 넘고 있다. 중국인이 창업한 미국 기업 투심플(tusimple)을 비롯하여 엠바크(Embark), 모티브(Motiv) 같은 기업들이 선두를 달린다.

이들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졸음운전 속에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는 화물운송 기사들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지금은 ‘기술과 인간의 동반 혁신’ 등 말의 성찬을 늘어놓고 있지만, 결국 운송업과 물류업에서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운수업 종사자 수는 총 115만명이다. ‘운수업’이란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일자리, 만드는 자 

2021년 초반 통계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0.1%다. 하지만 구직활동 중이거나 현재 일하는 단기근로를 그만두고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26.8%다.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이 숫자를 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홍 부총리 페이스북). 그러면서 “경제단체장 간담회를 통해 기업과 소통을 활발히 해서 민관 합동의 일치된 힘으로 고용개선을 이루어 내겠다”고 했다. 또 “청년층이 선호하는 디지털과 그린뉴딜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확대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한다”고도 했다.

휴우... 참. 하나 마나 한 말이다. 나중에 그 어떤 결과로도 그의 다짐을 평가할 길은 없다. 일자리 창출은 경제부총리의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그 너머의 일이지. 디지털 기술로 인한 노동시장의 재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노동 방식의 변화, 대량의 비자발적인 실업 등을 직면한 이 엄중한(!) 상황에서 가슴 아파할 시간마저도 아깝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전히 일자리다. 일자리는 나라의 미래, 개개인 삶의 기반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우선 정부가 나랏돈(재정)을 무한정 풀어 관제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경고 따위는 무시하고, 통화 남발로 인한 재정위기고 나발이고... 그런 걱정은 후대에 맡겨 버리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풀어버린 돈, 누군가는 갚아야 한다.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그 고통이 너무 클 것이다. 더군다나 재정으로 만든 일자리는 ‘경쟁력 제로(0)’다. 극단으로 치닫는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한국을 낙오자로 전락시켜버릴 일자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관제 일자리는 한시적으로는 필요할 수 있지만 결코 중장기적인 대책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아니라면, 과거에 봤던 방식대로 대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을까. 10만, 20만명 규모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라... 고도 성장기의 재벌 대기업 체제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앞으로 그런 기업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기업? 창업자!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자. 대기업이 아니어도, 그 정도 규모의 고용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어떻게? 대기업 한두 곳이 아니라 10만, 20만명이 창업을 하면 된다. 그들이 성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업당 10명씩만 새로 고용해도 100만, 200백만 명을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 진다.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록 노동 효율성이 높아지는 시대라, 안타깝게도 이외에 다른 방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공장식 고용창출은 기대해선 안 된다.

물론 창업한다고 해서, 모든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이 아니어도 되고, 그린뉴딜이 아니어도 된다. 모두가 유니콘이 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끊임없이 창업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또 도전해야 일할 수 있고, 일자리가 생긴다.

그러려면 정부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일자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창업국가로의 전환’에 맞춰 바꾸는 것이다. 정부 부처 하나를 승격하거나, 청와대에 수석 자리 하나 만든다고 창업국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일자리가 변이되는 과정에서 혼돈을 잘 이겨내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가 이 전환을 도와야 한다. 온 국민이 창업할 수 있는 역량과 자질과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복지나 재정, 기본소득 같은 문제들은 이런 창업국가로 전환하고 경제가 탄탄해지는 과정에서 풀어야할 숙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답 뿐이다. 일자리는 곧 삶이고, 일자리가 곧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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