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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머하시노”가 의미없는 세계 by 윤휘곤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5:14

업데이트 2021.09.05 13:21

팩플레터 77호, 2021. 04. 08 

Today's Topic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가 의미없는 세계

오늘은 팩플 구독자인 ‘윤휘곤’씨의 칼럼을 들고 왔습니다. 저희 팩플이 한국의 ‘네카라쿠배’와 (예비)유니콘, 글로벌 혁신기업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팩플팀 기자들이 직접 취재해 한땀한땀 공들여 쓰고 있는데요. 가끔은 저희 말고 다른 목소리도 구독자님들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혁신기업을 둘러싼 이슈는 물론, 이런 기업들을 배출하는 사회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등 나누고픈 얘기는 무궁무진! 그래서 모신 필자가 윤휘곤입니다. ‘그런데 윤휘곤이 누구?’ 그의 자기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네, 여러분! 윤휘곤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25년 이상 벤처투자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혁신과 도전에 미친’ 창업가들을 가까이서 지켜볼 일이 많았죠. 저는 어려서부터 아서 클라크의 SF 소설을 좋아했는데요. 기술을 통한 사회의 진보에 열광하며, 새로운 기업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적인 장면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유니콘(unicorn)’을 꿈꾸는 사람들과 그 생태계 스토리를 팩플 커뮤니티와 나눠보겠습니다.

제가 쓸 〈윤휘곤 칼럼〉의 키워드는 다음 셋입니다. ‘빗나갈 예측’, ‘말도 안 되는 도전’, 그리고 ‘행복을 꿈꾸는 기업가들’. 컨퍼런스콜에 절어있는 ‘본캐’를 떼놓고 팩플에 글 쓰는 지금 ‘부캐’의 시간이 저는 정말 좋은데요. 기업ㆍ기업가정신에 대한 여러분의 판단에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팩플레터 77호

팩플레터 77호

2001년 개봉작이었으니, 이제 고전 반열에 오른 영화 〈친구〉는 부산이 배경이었다. 당시 경상도 출신이 아닌 관람객을 위해 자막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부분의 대사가 부산 사투리였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몇몇 찰진 대사들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고, 패러디도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당시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대사는 아마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일 것이다. 주인공들의 고교 선생님 역할을 했던 배우 김광규님의 대사였다.

영화 속 선생님은 학생들의 성적을 갖고 훈계하면서 사랑의(?) 구타를 격하게 한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한 명씩 훈계하며 던진 말이 바로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였다.(부산 사투리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김광규님은 실제 부산 출신 배우다.) 아부지가 뭐하시는지 교사가 진짜 궁금했을까. 전혀~. 아시다시피, 학생들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그 순간 매를 세차게 때리기 위해 던진올가미였을 뿐이다. 주연 배우 유오성은 답한다. '건달입미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가 구타로 이어지던 교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한 장면.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가 구타로 이어지던 교실.

〈친구〉는 80년대가 배경이다. 선생님은 때려도 되고 학생은 맞아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냐’는 그 질문은 아이들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어쩌면, 구타보다 그 질문이 더 폭력적이었을지 모른다.

'느그 아부지'의 배경은 어떤 사회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자 권력이 될 수 있다. 보편적인 규범과 윤리가 잘 정착된 사회에선 그런 질문 자체가 위법이 될 만큼, 사실 나쁜 질문이다. 한국서도 한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지기도 했다.

이제는 면전에서 집안 배경을 따져 묻는 것을 자제하는 게 당연한, 성숙한 문화로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이의 배경을 궁금해 한다. 상대방이 누구의 자식이며, 어떻게 자랐고, 어떤 학교 출신이며,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등을 탐색한다. 배경에 맞추어 그 사람을 대하겠다는 태도는 나쁘지만,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다. 네이버나 구글의 검색 쿼리를 조사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부지의 배경이 권력이나 계급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도 있다. 물어보지 않아도 '느그 아부지'의 배경을 은근하게 짐작하고도 남지만, 그 정보가 차별의 수단이나 권력의 울타리가 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어디냐고? 아쉽지만 다른 나라 얘기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자신을 찾아온 젊은 기업가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 할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지? 아버지는 얼마 전에 회사 매각하셨다며?"

실리콘밸리의 태동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 박사가 1956년 설립한 쇼클리반도체로 본다면, 그곳의 역사는 이제 65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다보니 초창기 창업자나 투자자들의 손자녀뻘이 이제는 창업 전선에 뛰어들만큼 자랐다. 그 젊은 창업가들의 가족이나 배경에 대하여 실리콘밸리라는 다소 협소하고 독특한 공동체에서 연륜을 쌓은 투자자들은 너무나 잘 알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할아버지는 인텔에서 개발자로 이름을 날렸고, 아버지는 시스코에서 사업개발 총책임자였고, 이제는 그들의 손녀가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기업용 SaaS 기업을 창업을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유명 기업에 빗대어 본 가상 사례이지만, 유사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렇다면 그 실리콘밸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은 창업하려는 젊은 기업가들에게 무엇을 물려 주었는가? 분명한 것은 축적한 부(富)는 아니란 점이다. 일단 실리콘밸리는 무언가를 부모에게 물려 받는 것 자체를 어색하게 여기는 공동체다. 그들이 대를 이어 물려 주는 것을 굳이 찾아 보라 해도 그게 유형의 자산은 아니다. 대신 그들은 창업가와 투자자로서 쌓은 무형의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것은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정신을 중심으로 뭉친 공동체도 많이 있다. 실리콘밸리에 존재하는 수많은 커뮤니티 중에서 35년 동안 스타트업과 창업가들의 동반자로 자리를 지킨 처칠 클럽(Churchill Club)이 대표적이다. 처칠클럽은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해 온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던 커뮤니티였다. 저널리스트인 리치 칼가아드(Rich Karlgaard)와 앤서니 B. 퍼킨스(Anthony B. Perkins)에 의해 1985년에 설립됐고, 설립 당시의 모토는 "중요한 사람들이 중요한 말을 하다(Important people say important things)"였다.

처칠클럽은 투자자와 창업가, 정책 입안자, 언론인, 비영기구 리더 등이 모여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필요한 토론을 벌이고, 네트워킹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탁월한 연설가였던 윈스턴 처칠의 이름에서 땄다. 계급 평등을 상징하는 ‘더비 햇(derby hat)’을 로고로 썼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린 자세,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지향을 의미했다.

처칠클럽은 투자자와 창업가, 정책 입안자, 언론인, 비영기구 리더 등이 모여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필요한 토론을 벌이고, 네트워킹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탁월한 연설가였던 윈스턴 처칠의 이름에서 땄다. 계급 평등을 상징하는 ‘더비 햇(derby hat)’을 로고로 썼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린 자세,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지향을 의미했다.

처칠 클럽의 첫 번째 연사는 반도체 통합 회로의 발명가이자, 페어차일드 반도체와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였다. 그 후 수많은 유명인사를 클럽에 연사로 초빙하여 새로운 기술과 혁신에 관한 얘기를 듣고 토론을 벌였다. 빌게이츠, 래리 페이지, 피터 틸, 앤드리슨 호로위츠 창업자들 등등. 그렇다고 처칠 클럽이 올드보이들의 모임에 그친 것도 아니다. 젊은 기업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사업과 꿈에 대해서 귀 기울였다. 관심을 두고 지켜 보기 시작한 스타트업들에게는 엔젤투자도 했고, 또 여러 측면의 사업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 한 때 7500명 이상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회원을 보유할 만큼 처칠 클럽은 실리콘밸리의 든든한 역사였다.

그러나 처칠 클럽은 2020년 새로운 결단을 내린다. 새로이 등장한 많은 젊은 커뮤니티와 인큐베이터들에게 영광의 자리를 내어 주고 클럽의 문을 닫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처칠 클럽이 없어져도 될 만큼 실리콘밸리가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는 의미로, 나는 해석한다. 지금 미국에서 창업하는 기업가의 절반 이상은 이미 실리콘밸리 출신이 아니며, 심지어 미국인이 아닌 경우도 많다. 크런치베이스(Cruchbase)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19년 사이에 미국에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은 백인(히스패닉 제외)의 비중이 77%였다고 한다. 미국의 백인 인구 비중이 59.7% (2019년 미국 인구 센서스)인 것에 비하면, 여전히 벤처캐피털의 백인투자 쏠림 현상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그 77%가 30여 년 전에는 거의 100%였다. 100%가 77%로 바뀐 만큼, 미래는 더 고무적이다.

다시 한국. 한국도 이제는 제법 긴 스타트업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출발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1980년 창업한 삼보컴퓨터를 국내 1호 스타트업으로 보는 게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한국 스타트업의 역사도 이미 40년이 넘은 셈이다.

실리콘밸리 역사의 3분의 2 정도의 시간을 보낸 터이니, 한국에서 벤처를 시작한 초창기 창업가들이나 투자자의 자녀들이 이제 중년에 접어들 만큼 세대교체도 일어나고 있다. 흐른 세월만큼 한국 벤처 커뮤니티가 실리콘밸리처럼 탄탄해졌느냐는 질문을 누군가는 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1세대들이 버티고 있는 처칠 클럽도 없었고, 지긋한 나이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도 아직은 많지 않다. 젊은 창업가들의 배경을 묻지 않아도 척 보면 알 만큼 벤처업계에 누적된 인적 자원이 아직 많지 않다. ('김이박'이 절대다수인 한국에서는 실리콘밸리처럼 어떤 기업가의 '성'만 보고 할아버지의 건강을 묻거나 아버지의 근황을 물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난 몇년 간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 스타트업의 모습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굳이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많은 스타트업들이 과거엔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큰 규모로 성장해 나가고 있으며, 혁신산업이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력도 나날이 커진다. 조(兆) 단위의 인수합병과 해외 증시 상장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겐 4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부지’와 상관없이 혁신의 기운을 에너지 삼아 질주하는 창업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 창업가들이 만드는 가치는 지난 세대가 쌓은 유형자산과 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에 차곡차곡 쌓여 국가경제의 무형자산이 될 것이다. 그 무형의 자산은 또 다른 성장을 이어 나갈 정신,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부의 이전을 당연시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기업가정신’을 물려줄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이제 나는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라고 굳이 물어볼 필요 없는, 건전하고 창의적이며 풍요로운 생태계가 우리 경제공동체의 미래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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