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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pick, 번역의 미래

중앙일보

입력 2021.08.21 15:05

팩플레터 80호, 2021. 04. 15 

Today's Interview 손정의 pick, 번역의 미래

안녕하세요, 팩플레터입니다. 🙆
오늘은 심서현 기자아이유노 이현무 대표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1800억 투자가 발표된 날 이뤄진 인터뷰입니다.

팩플레터 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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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와 스타트업 창업자가 싸웠다. 주제는 ‘AI가 인간 번역을 대체할 수 있나’. 투자자는 ‘대체할 수 있다’고, 창업자는 ‘없다’고 했다. 언쟁 끝에 둘은 합의를 봤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기술에 저항하지 않고, 기술을 활용한다.” 투자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40억원을 내놨다.

3년 뒤, 손정의 회장도 설득당했다. 이번에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1800억원을 꽂았다. 쿠팡에 이어 손 회장이 직접 투자한 한국 스타트업, 아이유노 이야기다.

아이유노는 세계 1위 콘텐츠 현지화 기업이다. 영화·드라마에 80개 언어로 자막·더빙을 입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나 방송사에 공급한다. 전 과정에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적용해 효율을 높였다. 지난해 매출은 3억8400만 달러(약 4340억원).

비전펀드 투자가 공개된 지난 9일, 이현무(45) 아이유노 대표를 화상 인터뷰했다. 그는 “나도 번역가 출신”이라며 “아이유노가 AI로 만드는 효율화는 단가 후려치기기가 아니다”고 했다.

너드(Nerd), 번역하다 창업하다

NASA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너드(nerd), 연세대 토목공학과 졸업반 학생은 유학 자금이 필요했다. 번역 회사 아르바이트생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뒤로 앞으로 감아가며 영화 자막을 달았다. ‘너무 원시적이다’ 싶어 사비로 TV카드를 사서 컴퓨터로 작업했더니 효율이 올랐다. 그러나 사장님이 쳐준 단가는 짜디 짰다. 동료 2명과 ‘우리 1년만 하다가 유학가자’고 2002년 창업했다.

8년간의 한국 영상번역 사업은 유학자금 대신 10억원의 빚을 남겼다. 외할머니 보증으로 2억원을 마련했다. 2011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겨 다국적 방송사를 공략했다. AI 음성인식과 클라우드 작업같은 아이유노의 기술은 더 큰 시장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현재 34개국에 67개 지사를 뒀고, 80개 이상의 언어를 처리한다. 본사는 런던.

’콘텐츠 현지화’가 뭔가.
“영상 콘텐츠가 지역마다, 회사마다 맞춰야 할 문화적·기술적 요건이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와 아마존, 페이스북은 원하는 파일 형식도 다 다르다. 저희는 번역회사라기보다는 엔드투엔드(end-to-end) 패키지 회사다. 각사·각국에서 바로 틀 수 있게 언어·문화·기술 사양을 맞춰 제공한다. 이 요구사항이 갈수록 복잡해져서, 클라우드와 AI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 클라우드인가.
“고객사의 주문 사양이 수백 가지고, 지역별로 다르다. 전통적인 번역 업체가 수년간 이런 저런 사고 내며 경험으로 익힌 건데, 우리는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작업 상황도 클라우드로 확인하고, 오탈자가 나오면 번역가의 창에 실시간으로 알림이 간다.”

성공 비결을 말한다면.
“이 업계에서 정말 풀어야 하는 문제가 뭐냐, 이게 명확해지면 그 회사는 성공한다. 그 문제를 알아내는 데 10년 걸리더라. 한국에서만 사업할 때보다는 글로벌 고객을 상대하면 더 이해가 깊어진다.”

아이유노가 발견한 문제는 뭐고, 어떻게 풀고 있나.
노동집약적인 번역을 효율화하는 것. 그러면 인간의 창의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존처럼 공급망(supply chain management)을 구축하고, 기계가 인간을 돕게 만든다. 단순 번역은 AI가 하고, 우리 작가와 성우들은 품질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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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pick’이 되기까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투자는 이현무 대표가 손정의 회장에게 화상으로 회사 브리핑을 한 후 이뤄졌다. 문규학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매니징파트너는 “아이유노는 소규모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미디어 현지화 작업을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화했다”며 “AI와 함께 더 성장할 시장”이라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발굴하고, 비전펀드가 도장 찍은 셈인데.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와 인연이 깊다. 애증의 관계다. AI와 인간 번역에 대해 토론도 많이 했다.”

토론의 결론은.
번역은 재창조고, 더빙은 연기다. 기술이 대체할 순 없지만, 기술로 효율화는 가능하다. 그러면 가격 효용성과 품질이 모두 올라간다.”

구글이나 아마존에도 AI 번역 기술이 있는데.
“거기는 뜻이 맞냐 틀리냐고, 우리는 자막으로 쓸 수 있냐 없냐다. 구글 번역은 자막에 못 쓴다. 아이유노의 AI 번역은 입말에서 입말로 감정과 정서를 담는 특정한 데이터로 훈련된 번역이다. 우리는 비디오·오디오·텍스트 3종이 완벽하게 매칭되는 번역 데이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했다. AI 기술 회사가 이 분야에 오려면 우리와 손 잡아야 한다.”

손정의 회장은 브리핑을 듣고 뭐라고 했나.
“그분의 멘트를 제가 옮기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고. 만족해하셨다. 소프트뱅크도 이 업계를 기술이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융합이 맞다고 본다.”

AI의 자리, 인간의 자리

아이유노는 회사 소개에서 “2만 명의 언어 능력 집단(성우, 번역가)을 확보했다”고 적었다. 대부분 프리랜서다.

프리랜서 성우, 번역가들과의 관계는.
“아이유노는 업계 리더로서 책임이 있다. 유럽의 성우 조합과 매년 가격 협상을 한다. 너무 올리면 콘텐츠 제작사가 힘드니, 파이를 잘 나누도록 중개하는 입장이다. 유럽은 성우 단가가 높아서, 에피소드 1건 더빙에 2000만~3000만원이 든다. 16부작이면 몇억원이다.”

대형 업체가 생기면 단가 후려치기를 우려하는데.
“오히려 제 값을 받게 된다. 업계에 없던 인증제도도 저희가 만들었다. 뛰어난 번역가와 성우를 선정하는 아이유노 어워드를 매년 열어 호텔에서 행사하고 상장을 드린다. 아이유노의 보증수표 같은 거다. 본인의 커리어에 도움되니 좋아하신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자’의 요건에서 ‘길 찾기’를 지웠다. AI 기술은 ‘번역’ 업을 어떻게 바꾸나.
“예전에는 오탈자나 큰 오역 없이 안정적인 사람을 ‘번역 잘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탈자는 기계가 찾는다. 이제는 창의성이다. 미국의 재밌는 유머를 한국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 하는.”

그래도 AI의 자리가 점점 커지지 않을까.
“기계는 절대로 인간보다 좋은 번역을 할 수 없다.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의 기준을 사람이 정하기 때문이다. 설명서 같은 의미 전달 번역은 AI가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영역에서는 의미가 아닌 감동, 정서를 전달해야 한다. AI가 우리의 가족사, 고뇌, 슬픔을 다 가지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나와 자녀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막연한 두려움과 막연한 저항이 가장 위험하다. AI가 전혀 안 들어올 분야 찾다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야 하나? ‘이제 AI가 자막을 대체하겠구나’ 생각해 일찌감치 사업 접어버린 분도 있는데, 잘못된 판단이다. 그 기술을 직접 체험하며 판단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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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글로벌, 초 로컬

아이유노는 넷플릭스 같은 OTT의 확산과 함께 성장했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에서 서비스하는데 콘텐츠의 63%는 비영어다. ‘초 글로벌 기업의 초 로컬화’인 셈. 아이유노는 그런 넷플릭스의 우선 협력사(NETFLIX PREFERRED FULFILLMENT PARTNERS) 중 하나다.

대형 거래처는 어떻게 잡나.
“해외 시장은 규격화 되어 있고, 특히 IT 기반 기업들은 OTT 서비스에서 보안 같은 요구 사항이 세밀하고 명확하다. 그걸 충족시키면 다른 고객도 모여든다. 예를 들어 어떤 스튜디오가 할리우드에 납품하려다가 요구사항을 못 맞춰 거절당하면 업계에서 ‘그럼 아이유노랑 하지 그래?’라고 제안한다고 하더라.”

파트너로서 넷플릭스는 어떤가.
“넷플릭스 외에도 여러 OTT 고객사들과 일한다. OTT라서 좋고 나쁜 건 없다. 다만 내 업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고객사를 선호한다. 대형 OTT는 저가 유통사보다 번역 단가를 3배 이상 책정한다. 똑같은 일을 ⅓ 가격에 하려면 품질을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창의성과 품질을 중시하는 고객사와 일한다.”

OTT는 왜 비싼 값을 내나.
“번역이 좋으면 시청률이 좋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 OTT는 광고가 아닌 소비자가 직접 내는 구독료로 돈을 버니까 품질을 더 중시한다. 이들은 같은 영상물을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으로 A/B 테스트도 한다. 좋은 번역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입증하는 역할을 아이유노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국 문화 보호 측면에서, 글로벌 콘텐츠 기업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국은 반(反) 외세 정서가 강한 나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분명한 건 OTT를 통해 타 언어권 콘텐츠에 대한 수용성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이 한국 콘텐트를 좋아하게 되는게 나쁜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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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창업자의 글로벌 개척

이 대표는 글로벌 진출에 대해 “사장이 직접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를 보내서 될 일이 아니다”는 것. 그럼에도 미국 주류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글로벌 시장을 어떻게 뚫었나?
“사장과 함께 일할 믿을 만한 사람 몇 명이 세팅되고, 그들이 더 좋은 인재를 데려오면서 회사가 성장한다. 아이유노가 미국 진출 1년이 지나도 인재 영입이 어려웠다. 넷플릭스와 일해서 업계에 이름이 난 이후에야, 하버드 출신 등 주류 인재들이 왔다.”

아이유노는 최근 2년 새 현지 유명 업체들을 잇따라 합병했다. 2019년에는 유럽 1위 번역업체인 BTI스튜디오를, 올 1월에는 미국의 SDI미디어를 인수했다.

왜 자꾸 합병하나?
“1, 2위 업체가 매출 2000억씩밖에 못하는, 매우 파편화된 전통 산업이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SDI는 할리우드 산업의 뒷단에서 함께 커온 회사라 제작사와 관계가 단단하다. 아이유노는 조직문화가 젊고 AI와 기술 강점이 있다. 합병 후 글로벌 점유율은 15% 정도다.”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자 사람들이 한국 기업이냐 미국 기업이냐 묻는다. 한국인이 창업해 외국에 본사를 두고 글로벌로 사업하는 아이유노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이유노는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회사다. 애플이나 넷플릭스는 미국 회사이면서 글로벌 지사가 많은 거지만, 우리는 정말 다양한 복합 조직이다. 경영진(C레벨 임원들)이 한국인 3명, 영국인 3명, 미국인 3명으로 구성됐다. 주주도 스웨덴계와 미국계, 한국과 일본 자금이 들어와 있다. 이런 주주들이 있어야 고급 인재가 회사에 온다.”

당장 과제는.
“PMI(Post-Merger Integration). 합병한 회사들과 원 팀으로 융합하는 데에 1~2년은 초집중할 거다. 그 다음 목표는 상장이다. 주류 고객이 있는 미국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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