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231)유엔군의 총퇴각(4)|평양철수(3)

    피란 길에는 으례 여러 비극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평양철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 당국에서 민간인의 철수계획을 마련하지 못해서 큰 혼란을 빚어냈다는 것은 전회에서 밝힌 대로

    중앙일보

    1971.09.23 00:00

  • 여망의 열매 맺게

    남북적십자 관계자의 예비회담을 닷새 앞두고 이산가족들의 여망을 한 어깨에 지고 예비 회담에 참가할 우리측 대표 5명이 확정 발표되었다. 15일 상오 대한적십자사 남북회담 사무국은

    중앙일보

    1971.09.15 00:00

  • 판문점 남-북 대좌 논평

    남-북한 대표들은 지난20여 년 동안 서로 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공산북괴가 남침하여 미국과「유엔」군을 전화에 끌어 들인지 20여 년 동안 말이다. 이제 이 양단 된 나라의

    중앙일보

    1971.08.21 00:00

  • 긴 세월 하루도 잊힐 날 없었습니다|북의 가족에 보내는 편지(1)

    『하루라도 잊힐 날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몸 성히 안녕하셨읍니까』-대한적십자사가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을 북괴측에 제의하자 납북 및 실향가족들은 새삼 떨어져 있던 가족들에 대한

    중앙일보

    1971.08.13 00:00

  • (214)남과 북의 포로수용소(6)

    한국전쟁 때 북한에는 벽동 화풍 천마 우시 외귀 만포진 삭주 북진 강동 황주 등 10개소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물론 전쟁추세에 따라 수용소 규모가 달라지고 폐쇄, 혹은 신설된 것

    중앙일보

    1971.08.13 00:00

  • 북괴 자주 노선 선언의 속셈|「크렘린」 공작에 「북평 즉 평양」 방정식 폐기

    「쿠바」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62년 가을 이래의 북괴·중공 관계는 「북평 즉 평양」이라고까지 표현되어 왔다. 「극동의 알바니아」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북괴가 쏟아내는 소련 수정주의

    중앙일보

    1966.08.1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