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22호>


이태호의 잘 먹고 잘 살기(69) 2020.03.03
코로나19 완치 판정 후 다시 확진, 왜 그런 일 생겼나

얼마 전 완치판정을 받은 70대 노인이 며칠 지나 재발했다. 이런 경우는 중국에서도 몇 건 있었다는 보도다. 대중의 불안이 하나 더 늘었다. 이번 바이러스는 전례 없는 지독한 놈이 아닌가 하고.

이런 걱정은 대중의 민도(상식)가 높아져서 하는 소리다. 바이러스에 한 번 걸리면 같은 바이러스에는 다신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맞다. 바이러스성 질병은 한번 앓고 나면 몸속에 면역(항체와 B세포)이 생겨 다시 같은 놈이 들어오면 단번에 물리치는 유비무환의 시스템이 갖춰진다. 이런 항체는 평생 가는 것도 있고, 얼마(몇 년) 안 가서 없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통상의 감기(혹은 독감) 바이러스의 경우는 같은 놈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왜 재발했을까?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가능성을 한번 짚어보자.

첫째, 노인이라 면역력이 약해 바이러스를 제대로 죽이지 못하다가 조건이 좋아지니 다시 증식했을 가능성, 혹은 바이러스가 분명 있었는데도 숫자가 적어 샘플(검체) 채취에 걸리지 않았거나 채취를 꼼꼼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 등이다. 검체는 대개 콧구멍이나 목(후두)구멍에 면봉을 넣어 훑어서 채취한다. 채취 시 이 부분에는 거의 없었는데 더 깊숙한 기도나 폐 속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라면 재발했더라도 이미 적게나마 항체가 생겨있을 것으로 판단돼 아마도 가벼운 증상으로 끝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드문 경우지만 간혹 항체가 잘 생기지 않는 체질적 차이도 있을 수 있다.

둘째, 실험적 오류의 가능성이다. 바이러스를 검출하는 PCR법은 정확도가 높아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혹시나 실험적 오류나 미숙인의 분석 스킬에 기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많은 샘플과 과다한 업무에 오차는 따르기 마련이니까. 혹은 진단 시 약의 질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셋째, 가능성은 작지만 그동안에도 이 바이러스가 둔갑해 변종이 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RNA바이러스니 변종이 자주 출현한다는 소리는 일반인도 아마 들었을 테다. 맞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당연히 이번의 짧은 기간에도 신종 코로나가 출현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센 놈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상식이다. 변종이 나왔어도 99% 이상은 지금보다 오히려 약하거나 별문제가 없는 놈이 나왔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더 강한 놈이란 무엇을 뜻하고, 왜 자주 나오지 않을까? 더 센 놈은 우선 우리가 호흡으로 흡입했을 때 점막에 달라붙는 능력이 높아지고, 내부에서 증식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두 능력을 겸비하면 천하무적이다. 잘 달라붙는 능력은 우리 세포의 표면에 있는 물질(receptor 단백질, 당, 지질 등)과 바이러스의 표면에 있는 물질과의 친화성(affinity)에 의해 결정된다. 이번 코로나가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계통이면서 감염력이 높은 것은 이 친화성이 훨씬 높아져서라는 분석이다. 즉, 신종이 친화성이 증가하도록 염색체 RNA에 변이가 생긴 탓이라는 거다. 이번 코로나는 거의 30~40배, 혹자는 100배가 높다고도 얘기한다.

다음으로 숙주세포에 들어가 얼마나 빨리 증식하느냐가 두 번째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증식속도가 빨라져서 많은 바이러스를 생산하고, 숙주세포는 죽고, 다시 옆에 있는 숙주세포에 감염되고, 다시 죽이는 이런 과정을 급속하게 반복하도록 변이가 일어난다. 이런 변이는 바이러스가 자손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진행하는 복제과정 중 생길 수 있는 낮은 빈도의 에러(오류)에 의존한다. 이런 에러는 무작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재수 없이 위의 조건에 맞아 떨어지면 센 놈이 만들어진다.

우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확률은 로또 당첨 정도로 낮다. 그래서 대개는 변이 때문에 센 변종이 자주 나타나지 않은 이유이고, 이번 재확인자의 경우에도 그럴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변하는 게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진화과정이다. 인간도 끊임없이 유전자의 복제 시 변이가 일어난다. 좋게 변하면 진화이고, 나쁘게 변하면 도태다. 대부분은 다소의 변이가 일어나도 영향이 없다. 인간에게도 자주 오류가 일어나지만 이를 고치는 수복시스템(repair system)이 있어 그 빈도는 바이러스보다 훨씬 낮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세포로부터 진화했는데, 왜 DNA(혹은 RNA)의 구조가 각기 다를까. 오랜 진화과정 중에 DNA에 변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다들 좋은 쪽으로 변이가 일어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이 진화이고 적자생존이다. 오랜 세월의 돌연변이 때문에 종이 바뀌고 속(屬)이 바뀐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내친김에 관련 얘기 좀 하자. 바이러스의 증식은 바이러스 자체가 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지령 때문에 숙주세포가 대신해준다. 이게 비극이다. 왜 숙주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그런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껍질(capsid)에 아주 간단한 몇 개의 단백질, 지질 등으로만 쌓여있고 내부에는 달랑 몇천 염기로 된 DNA(혹은 RNA)만이 있을 따름이다. 숙주세포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만 구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는 숙주에 들어가는 즉시 증식을 개시하고, 어떤 종류는 내부 환경을 살핀 뒤 맘에(?) 들지 않으면 잠복으로 들어간다. 이번 바이러스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생활사에 그런 놈도 있다는 거니 오해 말길.

잠복도 몰래 숨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세포와 동화되어 가족행세를 하며 숙주세포와 행동을 같이한다. 숙주 염색체 속에 비집고 들어가 세포증식 시 동시에 복제되어 자손 세포에도 전달하는 기막힌 꼼수도 벌인다. 그렇게 지내다 환경이 좋아지거나 숙주의 대접(?)이 시원찮으면 다시 튀어나와 증식의 길로 유도하고 자손 바이러스를 만들게 해 숙주세포를 죽인다. 우리 몸속에도 어떤 형태로 잠복하는 바이러스가 있다. 대상포진이나 헤르페스(herpes)가 그렇다. 언제 분란을 일으킬지 모른다. 대접을 잘하자.

부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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