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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엄마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9)

은지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병원 진료를 받아도 돈을 내지 않는다. 간혹 비급여 약을 처방받을 때만, 몇백 원 내는 게 전부다. 은지를 키우기 전엔 몰랐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병원 진료를 받을 때 겪는 일을.

은지가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감기 때문에 동네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처방전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은지 이름을 불렀다. 나는 접수대 앞으로 걸어가면서 습관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그때 간호사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돈은 안 내셔도 돼요.”

순간 은지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걸 깨달았다. 대기실에 앉아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릴 힐끗 쳐다봤다. 기분이 묘했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을 때도 그랬다. 약사는 복용법을 설명해 준 다음, 위아래로 훑어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가셔도 돼요.”

당황스러웠고, 착잡했다. 그리고 조금 이상했다. 약사가 다른 아이들에겐 뽀로로 비타민을 손에 쥐여주거나 약 봉투에 넣어주면서 웃었는데, 은지에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은지 약 봉투엔 약만 들어 있었다.

은지 엄마가 된지 6년 차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얼마 받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제일 궁금해 했다. [사진 배은희]

은지 엄마가 된지 6년 차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얼마 받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제일 궁금해 했다. [사진 배은희]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집으로 오는 동안 생각해 봤지만,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생경한 것이었다. ‘왜 그럴까? 그 시선들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은지 엄마가 된 지 6년 차다. 그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얼마 받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제일 궁금해했다. ‘도대체 얼마를 받으면 할 수 있을까?’,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쯤 될까?

자조모임에서 만난 위탁엄마는 고등학생인 딸 때문에 다시 일을 다닌다고 했다. 아이의 친아빠가 돌아가시면서 통장에 돈이 4천만 원 입금됐는데, 그것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위탁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해서 그 돈을 묶어두었다. 하지만 당장 학원비며 용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뒷바라지를 위해서 일을 나간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키운 딸이라 아끼는 마음도 특별했다.

“게난, 어떵해? 여즉 키와신디. 경허난 내가 일을 해사주.”(그럼 어떻게 해, 여태 키웠는데. 그러니까 내가 일을 해야지.“)

그 말을 듣는 모두가 숙연해졌다. 내가 낳은 자식과 낳지 않은 자식을 구분했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위탁가족이라는 것도 굳이 말하지 않게 됐다. 그건 높은 편견의 벽 앞에 서는 일이고, 낯설고 생경한 시선을 마주봐야 하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위탁가족이라는 것도 굳이 말하지 않게 됐다. 그건 높은 편견의 벽 앞에 서는 일이고, 낯설고 생경한 시선을 마주봐야 하는 일이다.

‘그걸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5년, 10년, 내 품에서 키운 위탁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수고를…. 위탁엄마에게 아이는 그저 ‘내 아이’일 뿐이다. 위탁했다고 ‘남의 아이’, 낳았다고 ‘내 아이’로 구분하면 키울 수가 없다. 특히 은지처럼 아기 때부터 키운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은지를 키우면서 양육비를 계산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재작년에 위탁부모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항목별로 지출 내역을 적었는데, 소소하게 지출되는 비용만 어림잡아 월 100만 원 정도였다.

“얼마 받아요?”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한다. 어떻게 남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지, 그건 특별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보상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편견의 벽을 높이 높이 쌓는다.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쯤 될까요?”, “얼마를 받으면 할 수 있을까요?” 목젖에서 요동치는 말을 오늘도 내뱉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작은 환상까지 깨질 것 같아서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위탁가족이라는 것도 굳이 말하지 않게 됐다. 그건 높은 편견의 벽 앞에 서는 일이고, 낯설고 생경한 시선을 마주 봐야 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그게 버거운데 말이다. 그래서 자꾸만 입을 닫게 된다.

의사무능력(미약)자 급여관리 실태 점검에 따른 안내. 지출실태조사표. [사진 배은희]

의사무능력(미약)자 급여관리 실태 점검에 따른 안내. 지출실태조사표. [사진 배은희]

나는 1년에 두 번(6월, 12월) 은지를 대신해서 주민센터에 지출내역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 지출실태조사서를 쓰고, 통장과 영수증을 제출한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영수증은 다 모아 뒀는지 점검받는 일이다.

그래서 은지 물건을 살 땐 따로 계산하고, 영수증도 따로 모아야 한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카트에 넣을 때부터 따로 담고 계산하지만, 처음엔 이것도 일이었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은지 물건만 따로 구분하느라 우왕좌왕한 적도 많다.

“돈은 안 내셔도 돼요.” “그냥 가셔도 돼요.”

어리고, 힘없고,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 까칠하고 건조한, 단단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약자를 구분하고 있진 않은가? 나부터 돌아보게 된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수준’이라면, 내 수준은 어디쯤 일까?

위탁엄마가 아니었다면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것들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더 보석 같은, 그래서 더 버릴 수 없는 이름. 나는 ‘위탁엄마’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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