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편의점 풍경이 달라졌다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건 넘치는 박영민 기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편의점 자주 가세요? 저는 하루 두 번 꼭 편의점에 들러요. 출근길엔 삼각김밥과 바나나우유를 사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고, 퇴근길엔 과자랑 맥주를 한 봉지 가득 사서 들어가야만 비로소 하루가 제대로 끝나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집 앞 편의점 모습이 좀 달라졌어요. 사장도, 직원도 없는데 손님들만 가득해요.

인건비 부담이 늘면서 무인 시스템을 도입한 편의점이 증가하고 있어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과 같은 상시·심야 무인 점포수는 올해 상반기 전국 4000여곳에 달했어요.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 4개사의 무인 점포 3000여곳을 더하면 총 7000여곳으로 늘어나죠. 200여개였던 2019년보다 35배나 증가한 겁니다. 오늘은 색다른 아이디어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무인 편의점 한곳을 소개해드릴게요. 제품 가격이 하루에 24번이나 바뀌는 혁신적인 실험이 벌어지는 이곳, 오늘 비크닉의 주인공은 ‘프라이스랩’입니다.

서울 용산에 위치한 AI 편의점 ‘프라이스랩’. 사진 박영민


#1시간마다 바뀌는 가격

올해 5월 서울 용산에 문을 연 프라이스랩은 삼성전자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투자를 받아 창업한 스타트업 ‘치즈에이드’가 만든 무인 편의점입니다. 직원은 총 7명으로 작은 규모죠. 그런데 직원 구성이 일반적인 유통기업이랑은 좀 달라요. UI·UX 디자이너에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있죠.

편의점에 개발자가 왜 필요하냐고요? 답은 프라이스랩 안에 있습니다. 이 편의점의 무기는 1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총 24번 바뀌는 가격이에요. 유통기한, 재고량, 선호도 등 소비 데이터와 요일·시간대별 유동인구, 날씨 등 공공 데이터, 주변에서 비슷한 제품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 등 상권을 분석한 데이터로 가격을 조정해요.

프라이스랩의 상품 가격은 1시간 간격으로 바뀐다. 사진 박영민

상품 정보는 실시간으로 상품 앞에 붙어 있는 가격 표시기에 반영돼요. 그런데 이 가격 표시기마저 친환경적입니다. 일반 편의점에선 상품 정보를 변경할 때 종이나 플라스틱을 갈아끼우잖아요. 프라이스랩에선 자체 개발한 ‘가시광 통신 전자가격표시기’를 사용해요. 전자종이처럼 디지털로 글자와 숫자를 보여주는 방식이죠. 치즈에이드가 삼성전자에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가시광 통신 기술 덕분입니다.

소비자의 사용방법은 간단해요. 스마트폰으로 프라이스랩 앱을 다운로드하면 쇼핑 준비 완료입니다. 앱으로 상품 바코드를 찍고 등록해놓은 카드로 결제하면 끝이에요. 처음 앱 설치 이후 인기 상품 5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중 한 개를 선택하면 해당 제품을 한 달간 하루에 한 번씩 반값으로 구매할 수 있어요. 매일 한 번씩 편의점에 방문해서 하루 한 번 총 30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건 프라이스랩 관계자가 알려준 팁인데요, 매일 오는 게 귀찮으면 오늘 오후 11시 59분에 방문해서 하나를 사고, 1분간 기다렸다가 다음날 오전 12시가 되면 또 하나를 살 수 있죠.

앱으로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등록한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사진 박영민


#편의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바뀌는 가격, 장점은 뭘까요?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판매자는 골치 아픈 폐기물을 확 줄일 수 있죠. 폐기물이 줄면 버리는 양도 줄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요.

편의점과 같은 식품 유통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폐기’를 어떻게 줄이느냐입니다. 재고가 많이 생길수록 폐기물을 처리하는 비용도 늘어나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약 550만톤 규모의 식품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졌어요. 이를 처리하는 비용만 자그마치 1조원이 넘었죠.

‘재고를 줄이는 지속 가능한 소비, 편의점에서도 가능할까’. 프라이스랩을 만든 치즈에이드는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어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신선 제품의 가치는 시간과 공급량에 따라 계속 변하는 반면, 오프라인 매장 제품의 가격은 바꾸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처럼 실시간으로 바뀌는 가격을 편의점에 적용해 소비자에게 가격 선택권을 제공하고, 폐기물의 양도 줄여보자 결심했어요.

“온라인에선 늘 최저가를 검색하잖아요. 반면, 오프라인 마트에선 소비자에게 가격 선택권이 없죠.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더 나은 가격 선택권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쇼핑 경험을 원해요.”

20~30대가 선호하는 신선식품으로 진열장을 꽉 채웠다. 사진 박영민


#진열대 채우는 법도 특별해

상품 구성도 일반 편의점과 달랐어요. 우유, 치즈 등 유제품부터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밀키트와 육류까지. 진열대엔 20~30대가 선호하는 신선식품들로 가득합니다. 마트나 편의점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브랜드의 식료품들이라 눈도 즐겁죠. 이계림 치즈에이드 이사는 “1인 가구가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선 식품을 위주로 콘셉트를 잡았다. 트렌드를 파악하면서 계속 메뉴를 바꿔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필요한 상품이 있으면 채널톡으로 의견을 주고 받고, 판매 구성도 조금씩 바꾸고 있어요.

프라이스랩은 제일 먼저 이 근방에서 살 수 없는 물품이 무엇인지 알아봤대요. 쌀이나 생선을 파는 곳이 별로 없더랍니다. 쌀을 내놓으면 잘 팔리겠죠? 그런데 프라이스랩은 쌀이 왜 안 팔리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대요. 그제서야 동네에 커다랗게 자리한 청년주택이 보이더래요. “청년주택에 사는 1인 가구는 집에서 밥을 잘 해먹지 않아요. 요리할 때 냄새가 심한 생선도 마찬가지고요. 쌀과 생선보다는 간편식, 그리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제품들을 들여놓게 된 이유입니다.”

5개월간 점포를 운영해 보니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보였대요. 점심엔 주로 샐러드를 사러 오는 직장인들이 많고, 저녁 6시 이후엔 귀갓길에 할인 상품을 사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이 많아요. 상품이 신선하다는 반응, “이런 가게가 우리 집 근처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도 많이 받았답니다.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 사람인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격을 경험해 보고,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프라이스랩에서 어떤 경험을 하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 이사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이어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고 싶은 사람은 유통기한이 도달한 제품을 좀 더 싼 가격에 구입하고, 신선한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은 돈을 좀 더 내는 각기 다른 경험들도 재밌을 것 같아요”라고 제안했어요.

지금은 1호점 뿐이지만, 프라이스랩은 연내 5호점까지 점포 수를 늘릴 계획이에요. 우선 강남에 직장인들이 오가면서 건강한 샐러드나 간편식을 즐길 수 있는 편의점을 열 예정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많은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이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업체마다 판매 가격이 조금씩 달라요. 미래엔 모든 제품마다 상황에 맞춰 가격이 변화할 것입니다. 프라이스랩이 가장 앞서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외치는 프라이스랩.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 소비 트렌드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이들의 실험,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무인 유통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진 언스플래쉬


#뱀발: 무인(無人)이 드리운 그림자

무인 상점을 만든 건 기술의 발전입니다. 바코드와 QR코드를 인식하는 스캐닝 기술, 이미지와 영상을 인식하는 패턴 인식·센싱 기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음성 인식 기술,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기계공학, 구입 이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딥러닝 기법, 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IT 솔루션 등 다양한 기술이 무인 시스템에 적용돼있어요.

기술의 탑이 높아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집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외되는 계층이 늘고 있어요. 프라이스랩에서도 제품을 구입하려면 반드시 스마트폰이 있어야 해요. IT 기기에 취약한 고령자, 모바일 결제를 할 수 없는 미성년자를 어떻게 수용할지는 프라이스랩과 같은 무인 상점의 숙제입니다. 결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도 해결해야 할 문제죠.

무인 시스템의 핵심인 키오스크의 확산이 고용 인구 감소를 가속할 것이란 경고도 있어요. 한국고용정보원은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에서 2025년 키오스크의 기술 대체효과로 인해 국내 노동자의 약 70%인 18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어요. 미래의 기술이 우리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기(利器)가 될지, 직업의 파괴자가 될지는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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