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Carrot), 양배추(Cabbage), 사과(Apple)를 갈아 만든 이른바 ‘까(CCA)’ 주스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지난 15일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MBC)’에서 다이어트에 빠진 배우 이장우가 마시는 장면이 노출되면서 화제가 됐죠. 사실 이 CCA주스는 지난해 유튜브에서 한 한의사의 소개로 이미 유명했던 레시피랍니다. 해당 영상의 누적 조회 수만 224만회에 이르죠. 이후 ‘동상이몽2(SBS)’ 등 방송을 타고, 가수 이효리의 해독 주스로도 관심을 끌었어요.

젊음과 건강을 추구하는 심리야 동서고금 변치 않은 흐름이지만, 요즘은 그 연령대가 확 낮아진 느낌이에요. 한창 청춘인데도 노화를 생각하죠. 이들 사이에선 나이듦을 피할 수 없지만 되도록 늦게 나이 들고 싶다는 욕망을 담아 ‘저속 노화’라는 신조어도 등장했어요.

지난 주말 한 예능 프로그램에 당근과 양배추, 사과를 갈아만든 건강 주스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사진 '나혼자 산다' 프로그램 캡처

오늘 비크닉은 젊은 세대의 건강 찾기 열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자기 계발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한 건강 트렌드의 이면에 깃든 사회적 배경도요.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헬시플레저(healthy+pleasure)’를 넘어 건강을 깊게 파는 ‘헬스 디깅(health+digging)’까지 접어든 지금,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강함은 어떤 모습일까요.


9만% 뛰었다, 홈쇼핑 매출 효자 된 이 기계

요즘 홈쇼핑 업계에 새로운 매출 효자 아이템이 등장했어요. 바로 불리지 않은 날콩과 물만 넣어 돌리면 약 20분 만에 ‘홈 메이드 두유’를 만들어준다는 두유 제조기죠.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두유 제조기 주문이 올해 1월 기준 전월 대비 50% 넘게 늘었다고 해요. GS샵에서도 1월 초 기준 약 두 달간 팔린 두유 제조기가 약 3만대에 이르며, 주문액으로는 50억원이 넘었다고 하고요.

최근 소형 주방 가전 업계에서 두유 제조기는 새로운 히트 아이템이 됐다. 사진 롯데홈쇼핑

두유 제조기 히트는 몇 해 전의 에어 프라이어 돌풍을 연상시켜요. 어느 한 업체의 특정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탄생했다는 점에서죠. 3만~10만원 대의 다양한 제품이 출시됐고, 입소문이 난 해외 브랜드의 직구도 늘어났어요. G마켓에 따르면 올해 1~2월 기준 두유 제조기 국내 상품이 전년 동기 대비 5300%의 매출 신장률을, 해외 직구 상품은 무려 9만2530%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고 해요.

저가 직구 제품부터 중저가 중소기업 제품까지 다양한 두유 제조기가 판매되고 있다. 사진 G마켓 홈페이지


젊은 세대가 더 빨리 늙는다?

그런가 하면 최근 소셜 미디어 플랫폼 ‘X(옛 트위터)’에서는 ‘저속 노화(느린 노화)’가 새로운 건강 키워드로 자주 거론되고 있어요. 지난해 초 출간된 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의 저자 정희원 서울 아산병원 노년기내과 의사가 '저속 노화 선생'으로 불리며 SNS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죠.

책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표지. 사진 YES24

정 교수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가속 노화’에 대해 지적했는데, 그 근거로 젊은 성인의 건강 지표가 지난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점을 들었죠. 구부정한 자세로 스마트 폰에 탐닉하며 자극적인 배달 음식을 습관적으로 취하는 젊은 층이 이 속도로 늙는다면, 현재의 노년층보다 훨씬 더 늙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요. 젊은 층이 왜 '저속 노화'에 주목하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에요.

실제 화장품 업계에선 이런 추세가 이미 뚜렷해요. CJ올리브영이 지난해 말 고객의 약 73%를 차지하는 2030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피부 관련 고민의 상당수가 모공·탄력 등 노화와 밀접했다고 밝혔어요. 슬로우 에이징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상품의 매출도 최근 3년간 연평균 10%씩 증가했다고 해요.

CJ올리브영은 지난해 10월 스타필드 고양점에서 '슬로우에이징'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사진 CJ올리브영


단백질 음료에 제로 슈거, 곤약 밥까지

지난 몇 년간 식품 업계의 메가 트렌드도 '건강'이에요. 특히 젊은 층이 주로 찾는 편의점 음료 판매대에 단백질 음료와 제로 슈거(저당) 음료가 흔해지고, 심지어 소주조차도 저당, 낮은 도수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죠. 최근에는 과당 같은 단순 당과 백미·밀가루 등 정제 곡물을 줄인 식품이 포인트고요.

제로 슈거와 15.5도의 저도수로 출시된 진로골드. 사진 하이트진로

즉석 밥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백미가 주를 이뤘던 기존 즉석 밥에 현미는 기본 렌틸콩·퀴노아·병아리콩 등 건강 잡곡이 섞여 들어가거나 아예 식후 혈당 조절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곤약밥 같은 기능성 상품을 내놓기도 했어요. 간편한 한 끼를 위해 즉석 밥을 먹어도 이왕이면 건강하게 먹겠다는 심리죠. 즉석 밥의 대표주자인 CJ제일제당의 햇반 브랜드도 ‘헬스 앤 웰니스(H&W)’ 카테고리를 계속해서 늘리는 중이에요.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햇반 H&W 신규 카테고리에 속하는 솥반(솥밥), 곤약밥, 그레인볼은 2022년 대비 2023년에 국내 매출액 성장률이 102%로 약 2배에 달한다고 해요

CJ제일제당은 햇반의 '헬스앤웰니스' 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저탄수화물 고단백 트렌드를 반영한 그레인보울. 사진 CJ제일제당


왜 이렇게 유난? 나만의 '중독 게이지' 찾는다

그런데 왜 젊을 때부터 건강한 식단을 찾고, 마음의 평정을 갈구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도파민 과잉 시대의 반작용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어요. 그러고보니 유난히 건강에 집착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역설적이게도 ‘도파민’으로 꽉 차 있어요.

릴스와 숏츠로 대변되는 숏폼(짧은 길이) 콘텐트는 도파민 과잉 시대의 뚜렷한 징후죠. 멍하니 보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흘러간다는 소셜 미디어의 ‘더 보기’ 버튼은 현대인들을 위한 슬롯머신으로 불리고요. 음식도 예외는 아닙니다. 마라탕 먹고 탕후루로 입가심하고, 불닭볶음면쯤 돼야 맵다고 할 수 있는 자극적 음식이 범람하고 있으니까요. 쉽게 과한 자극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현대인들의 일상에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어요.

달콤한 과일에 달디단 설탕 옷을 입힌 과자인 탕후루는 최근 Z세대 사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AMIRA'S PANTRY

전미영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도파민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건강을 찾는 사람들이 사실은 한 부류라고 설명해요. 아예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두 가지 마음이 있다는 거죠. 특히 늘 접하는 음식 쪽에서 이런 흐름이 뚜렷해요. 이른바 ‘푸드 게이지(food gauge)’ 이론이죠.

마음속에 어떤 측정기가 있어서 오늘 매운 족발을 먹었다면 내일은 제로 칼로리 음료를 찾는, 건강과 만족감 사이에서 각자의 기준으로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에요. 이 키워드는 지난해 말 배달 앱 업체 ‘우아한형제들’과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공동 연구한 ‘2024 외식업 트렌드’에도 등장해요. 전 연구위원은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접하기 쉬워진 요즘 세대가 스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중독 측정기를 마련한 것”이라며 “하루 카페인 허용치·단백질 목표치 등 소비자들이 보이지 않는 저울질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통합 배움 플랫폼 클래스101은 개인 일정과 몸 상태에 맞는 운동 클래스를 제공한다. 사진 클래스101

윤덕환 트렌드모니터 이사는 젊은 세대의 이런 저울질을 두고 자기 계발의 방향성이 바뀐 현상이라고 봐요. 기성세대인 40·50세대가 자기 계발을 철저히 조직 내에서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어학이나 자격증 같은 교육 분야에 한정했다면, 요즘 2030은 자신이 가진 시간과 돈, 몸을 관리하고 개발하는 식으로 확장했다는 거죠.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조직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젊은 세대라면 조직 밖에서도 자신을 버티게 하는 몸에 투자한다는 설명이에요.

오늘 하루 운동을 완료하고, 자기 계발에 자극을 주는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주말이면 레깅스를 입고 등산을 하러 가는 젊은 세대들은 누구보다 ‘건강한 삶’에 진심이에요. 변동성과 불확실성, 복잡성과 모호성이 높은 팍팍한 현실에서, 건강에 대한 몰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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