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제거 사흘 뒤 만난 YS “전광석화에 깜짝 놀랐지요?” (93)

  • 카드 발행 일시2024.02.28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있다. 군자가 허물을 고칠 때 가을 표범이 가죽털을 바꾸는 것처럼 신속하고 선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표변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소인면혁(小人面革)’이다. 소인은 변해야 할 때 근본이 아니라 얼굴빛만 살짝 바꾸고 만다는 얘기다. 표변은 원래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오늘날엔 부끄러움 없이 자꾸 변신한다는 부정적인 어감을 담고 있다.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김영삼(YS)·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왼쪽부터)이 단상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서로 인사만 나누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1995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5·18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법정에 세웠다. 전·노 두 사람은 97년 12월 사면됐다. 중앙포토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에 김영삼(YS)·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왼쪽부터)이 단상에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서로 인사만 나누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1995년 12월 김영삼 정부는 5·18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법정에 세웠다. 전·노 두 사람은 97년 12월 사면됐다. 중앙포토

김영삼(YS) 대통령의 초기 2년간 나는 그의 자기중심적인 독선적 역사관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필요한 영역에서 군자표변이라고 할 만한 결단력을 보인 것은 평가한다. 김 대통령이 취임하고 열하루 만인 1993년 3월 8일. 그는 육군 대장 김진영(육사 17기) 참모총장과 중장 서완수(19기) 기무사령관을 한순간에 경질했다. 두 사람 모두 전두환의 정규 육사 출신 사조직인 ‘하나회’의 핵심 멤버였다. YS는 이날 아침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조찬을 하면서 이들의 교체 방침을 통보하고 그 자리에서 비(非)하나회 출신 새 인물을 물색해 오전 중에 후임 발표까지 끝내버렸다. 사람들은 허(虛)를 찌르고 급소를 치는 YS식 전격성과 대담성을 경험했다. 김 대통령은 그날 오후 언론사 간부들과 만나 “나는 과거 어떤 대통령과도 본질적으로 다른 혁명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자당 대표였던 나는 사흘 뒤인 3월 11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했다. 그는 무슨 큰일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김 대표, 깜짝 놀라셨지요? 권영해 장관은 내가 하나회를 치겠다고 하니 놀라서 입을 열지 못합디다. 후임자를 청와대로 바로 불러 임명장을 주고는 서둘러 들어가 부대를 장악하라고 명령했어요. 만일의 경우 하나회 세력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조치였습니다.” 김 대통령은 “권 장관에게 말을 꺼낸 뒤 후임자를 임명할 때까지 딱 4시간5분 걸렸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3·8 인사 뒤 한 달도 안 돼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 등 다른 하나회 출신 군 수뇌부들도 갈아치웠다.

1996년 8월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오른쪽부터)이 나란히 손을 잡고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내란 및 군사반란죄 등이 적용돼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1996년 8월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오른쪽부터)이 나란히 손을 잡고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내란 및 군사반란죄 등이 적용돼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됐다.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