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보관 후 딸까지 낳았다…충격 준 美말기암 의사 선택

  • 카드 발행 일시2023.09.27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이 있다. 폐암 4기를 진단받은 36세 미국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의 투병 이야기다. 폐암이 진행되며 살 날이 많이 남지 않게 되자 칼라니티 부부는 죽기 전에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칼라니티가 죽음에 직면하고 보니 더 미뤄서는 안 되는 문제가 많았는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가지는 일이었다. 자신과 영원히 헤어지기를 두려워하는 아내에게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남기고 떠나는 결정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기는 멋진 선물 아니겠어?

칼라니티 부부는 죽음을 앞두고 아이를 가지기로 하고, 항암치료 전에 미리 보관해 둔 정자(일부 항암제는 불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서 항암치료 전에 정자 보관을 해 두기도 한다)로 인공수정을 해서 케이디라는 이름의 예쁜 딸을 낳게 된다. 아버지가 되는 경험, 갓 태어난 생명을 바라보는 경험, 아이를 돌보는 경험. 이 모든 경험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행복한 삶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비록 아이가 태어나고 8개월 뒤 그는 사망했지만, 이러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스러웠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우선 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4기 암환자에게 정자 보관을 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림프종 고환암 등 완치가 가능한 20대 젊은 미혼 암환자에게서만 정자 보관을 권해 왔다. 이들 젊은 암환자들은 정자 보관을 하지만 실제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암이 완치된다고 한들 젊은이들의 취직, 결혼, 출산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게 대한민국 현실 아니던가.

게다가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인도 안쓰러웠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없이 유복자로 자라야 하는 딸아이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내가 아버지 없이 자란 경험이 있기에 결손 가정을 바라보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 민감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4기 암환자에게도 정자 보관을 하고 이를 이용해 죽기 전에 아이를 낳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