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반, 나 죽기 싫어요” 존엄 지킨다던 노인의 본심

  • 카드 발행 일시2023.09.20

저기요… 여기가 그거 쓰는 데 맞나요? 노인들 쓰는 그거… 편하게 죽게 하는 거… 저 그거 쓰러 왔어요.

우리 병원에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과 등록을 하고 있다. 연명의료에 대한 평소 의향을 밝혀 두는 문서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작성해 둘 수 있지만, 작성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 사회복지사가 제대로 상담하고 설명하면 한 사람당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의학이 너무 발전하면서 환자를 회복시키지는 못한 채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러운 과정만을 연장하게 되자,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법이 만들어졌다. 법 전문에는 이렇게 돼 있다. ‘이 법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취지는 너무 좋다.

법이 만들어지자 관리기관이 생겼고 많은 홍보 자료가 만들어졌다. 홍보 동영상을 보면 내용은 이런 식이다. 백발의 우아하고 멋진 노년의 신사가 예전에 부인을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힘들게 보낸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제는 본인이 몸져눕게 되자 노인은 힘든 연명의료를 하지 말아 달라고 자식에게 당부한다. 자식들은 노인의 뜻을 존중하고, 노인은 호스피스병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편안하게 돌아가신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인은 밝게 웃으며 자막이 올라간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KONIBP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홍보 영상 캡처

KONIBP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홍보 영상 캡처

연명의료 결정제도. 홍보물의 영향일까. 2023년 8월 현재 194만1231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30만6815명이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을 통해 삶을 마감했다. 그만큼 우리의 존엄성은 지켜졌을까? 우리는 그 노인처럼 평온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 내가 봐온 현실 속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