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천만원 적자도 괜찮아…‘암투병’ 그녀의 특별한 그곳

  • 카드 발행 일시2023.08.10

아파 보면 알아요. 지금 자기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뭘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명확해지거든요. 저한텐 그게 책방 일이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힘이 빠졌어요.

부산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아이들’의 김영수·강정아 공동대표. 강 대표는 “부부가 같이 일하면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각각 1층 서점과 2층 나눔방에서 주로 근무해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송봉근 기자

부산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아이들’의 김영수·강정아 공동대표. 강 대표는 “부부가 같이 일하면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각각 1층 서점과 2층 나눔방에서 주로 근무해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송봉근 기자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만난 강정아(58) ‘책과아이들’ 공동대표는 투병생활 중에도 책방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19년 9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도 ‘어, 아직 읽을 책이 많이 남았는데’였다고. 남편 김영수(60) 공동대표는 침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책은 물론 업무를 놓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독서대와 거치대부터 찾아서 설치해줬다. 강 대표는 “다들 병상일지니, 명언집이니,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을 선물해 주는데 그런 건 하나도 공감이 안 된다”며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읽고 있는 SF소설이 훨씬 재미있다”며 웃었다.

책과아이들은 이들 부부뿐 아니라 부산시민들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1997년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처음 문을 열고, 2001년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 후 2009년 지금의 부산교대 앞에 이르기까지 위치는 두 차례 바뀌었지만, 26년간 한결같이 어린이 전문서점으로서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점 독서 프로그램을 거쳐 간 아이들만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서점에서 전시를 열고 연극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책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도 이곳에 한번 발을 딛게 되면 몇 년씩 발길을 이어가는 걸까? hello! Parents가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가 볼 만한 책방 두 곳을 선정, 지난주 ‘데카르트 수학책방’에 이어 책과아이들을 찾았다.

Part1. 유방암 4기, 여전히 꿈꾸는 서점지기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이야기다. 관광안내원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기기는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다”며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다”고 숨 돌릴 틈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강정아 대표는 “꿈은 또 다른 꿈을 생산해야 건강하다”며 “꿈이 끝이 돼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바라던 마당이 있는 서점을 운영하게 된 그의 새로운 꿈은 아이들을 위한 소극장을 짓는 것이다.

“마당이 있는 서점을 원했지만, 그게 제 꿈은 아니었어요. 처음에 아파트 상가에 있는 12평짜리 공간에서 시작했는데, 너무 좁아서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서점에 왔다고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아빠한테 억지로 끌려 왔어도 친구들과 나가서 뛰어놀 수 있으면 좋잖아요. 마당이 있으면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니 놀러 오는 재미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