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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 중 91.4%(4718만1000명)가 도시 지역에 산다. 서울 사람이 950만 9458명으로 가장 많다(2021년 행정구역 기준. 국토교통부, LX 도시계획현황). 인구 도시 집중은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시와 읍을 포함한 도시 인구 비율은 1960년 37%, 1970년 50.2%, 2010년 90.7%로 늘었다.

사대문 안에서 출발한 서울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다가 강남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안충기 작 강북전도 부분.
도시는 농촌 인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한국전쟁 혼란기를 겪고 난 뒤 급격한 산업화 시기에 접어들면서다. 서울 인구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24만 명, 1942년 111만 명이었다. 한국전쟁 뒤인 1959년 210만 명이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며 1963년 325만 명,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1992년 1097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동안 서울 도심은 사대문 안에서 강북 사방으로, 이도 모자라 한강을 넘어 남쪽으로 수평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부자 동네들이 생겼다.

산과 산 사이로 강과 내가 흐르고, 물길을 따라 들을 가로질러 길이 흐른다. 산, 강, 큰길의 위치를 먼저 잡고 건물들을 차곡차곡 그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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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왜 한양(서울)에 도읍을 정했을까. 지도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한반도의 중심에 있으니 사통팔달이다. 뒤에는 산, 앞에는 강과 들이 있어 머물러 살기 좋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금강산에 이르기 전 추가령에서 가지를 친다. 남서쪽으로 흘러내려 오는 한북정맥이다. 대성산~광덕산~백운산~운악산~호명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노고산~고봉산~장명산 줄기다. 해발 102m 파주 장명산은 공릉천에 막혀 소멸한다. 공릉천은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 앞에서 한강과 만나 서해로 들어간다.
한양은 북한산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 끝에 자리 잡았다. 뒤로 백악산, 인왕산, 낙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앞에 있는 남산이 바람막이 구실을 해준다. 사방에서 흘러내린 실개천들은 청계천으로 모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비탈 지형이니 많은 비가 내려도 금세 물이 빠진다.
아래 그림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