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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시대적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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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인플레 영향으로 최근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임금도 가격의 일종이라서 사용자의 독점력이 높으면 협상력이 낮은 개별 노동자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용자의 독점력에 대항하기 위해 국가는 노조에 합법적으로 가격담합을 허용해 독점력을 부여했다. 즉, 독점을 독점에 맞서게 해준 것이다.

따라서 개별 노동자는 약자이지만, 노조는 더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용자와 거의 대등한 독점력을 가진 단체다. 노조가 정지하면 회사도 돌아가지 않고, 사회 일부도 마비될 수 있다. 이런 영향력을 가진 조직은 그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에 대해 반드시 반추해야 한다.

2010년 국제표준으로 공식 선포
과격 불법 투쟁이 가장 큰 문제
이해관계자 존중해야 공감 얻어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개념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은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국제표준화기구가 2010년 11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ISO26000)에서 공식 선포했다. 이미 해외는 물론 한국에도 계속 공론화돼 왔다.

일례로 한국노총 주도의 LG전자 노조는 2010년 국내 최초로 ‘USR 헌장’을 발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당초 ISO26000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구성하는 원칙으로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책임성,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의 이익존중, 법규 준수, 국제행동규범 존중, 그리고 인권존중이다. 이들 원칙 중 한국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 법규 준수, 이해관계자의 이익존중, 그리고 윤리적 행동이 아닐까 싶다.

우선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는 노조의 불법성을 보면 첫째 원칙인 법규 준수라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분명히 역행하고 있다. 대우조선·현대제철·SPC(파리바게뜨) 등 사업장에서 민주노총은 법을 무시하고 각종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대우조선에서 민노총 노조원들이 건조 중인 선박을 점거하는 행위는 노동조합법에 어긋나는 명백한 불법이다. 현대제철 사장실을 70일 이상 점거하고 있는 노조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의 경우 회사가 합의 사항을 잘 이행했다는 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극히 일부의 민노총 조합원들은 불법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는 민노총의 이런 행위는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무책임의 전형이다.

둘째 원칙은 이해관계자의 이익존중이다. 연세대 캠퍼스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도서관 근처에서 시위하다 학생들에게 고소당했다. 이젠 시대가 바뀌어 시위도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야 공감을 얻는다. 사생활을 특히 중시하는 ‘MZ세대’는 더 그렇다.

일본과 호주의 버스회사에서는 기사들이 파업하면서도 고객의 불편이 없도록 정시에 버스 운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대신 파업에 나선 기사들은 승객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결국 고객에게는 피해를 안 주고, 오히려 공짜로 태워주면서 버스회사를 압박한 셈이다.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고객을 배려했던 버스 노조 기사들에게 현지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노조가 고객은 물론이고 하청업자,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 연관 사업 종사자들의 이해도 존중할 때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을 것이다.

셋째 원칙은 윤리적 행동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손가락질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임금 때문에 일시적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기업과 노조는 알고 보면 한 몸이고 공동운명체다. 따라서 노조가 회사를 음해하거나 자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하는 것 등은 비윤리적 자해행위다. 매출이 줄어들면 노조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자사 제품 불매 운동에 관여해 같은 회사 동료 제빵기사 직원들조차 비판하는 민노총 파리바게뜨지회가 대표적 사례다.

세 가지 원칙 중에 가장 큰 문제는 과격하고 불법적인 투쟁방식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법치·공정·상식을 되찾아오겠다”며 출범했으니 수년간 지속해온 일부 노조의 불법적 관행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전문가와 시민이 나서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해야 한다. 건전한 노사 문화를 지향하는 노조를 중심으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더 확산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