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전용

"성조숙증 걸리면키 안 큰다? 그 걱정 유일하게 한국만 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12 06:00

업데이트 2022.04.12 09:46

성조숙증 때문에 걱정이라고요? 무턱대고 검사부터 할 일이 아닙니다. 치료도 당연히 서두르면 안 되고요.  

성조숙증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출판사 꿈꿀자유를 운영하는 강병철(55) 대표다. 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과정을 밟았다. 대학병원을 거쳐 개원까지 했지만, 건강상의 문제와 집안 사정 등의 이유로 2008년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 사실 영국 이민을 생각해 영국 의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지만, 캐나다에 정착한 후엔 의학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출판사를 차렸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의사에게 제대로 설명조차 듣지 못하는 환자의 상황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 그가 성조숙증에 꽂혀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까지 출판한 건 의사로서 일하며 검증되지 않은 불안이 가장 눈에 많이 띈 병이었기 때문이다.

의학 서적 전문 출판사 대표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강병철(55)씨. 강씨 제공

의학 서적 전문 출판사 대표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강병철(55)씨. 강씨 제공

성조숙증은 여아는 만 8세,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2차성징을 겪는 것을 말한다. 사춘기가 빨리 왔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성조숙증 진단을 받은 소아·청소년은 2016년 8만6352명에서 2020년 13만6334명으로 58%나 늘었다. 특히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4월 이후 성조숙증 치료를 받는 아동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양육자들의 불안도 그만큼 커졌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이다. 지난달 31일 줌으로 만난 그는 “성조숙증을 겪는 아이라 해도 대부분 정상 범주에서 클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펴낸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는 미국 소아내분비학계 권위자인 폴 카플로비츠의 책이다. 그는 “성조숙증에 걸리면 키가 크지 않는다거나 환경호르몬 때문에 성조숙증이 증가했다는 믿음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과도한 불안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비싼 검사나 치료부터 받을 게 아니라 식단과 운동부터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학 지식 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출판사 꿈꿀자유의 강병철(55) 대표가 지난 3월 31일 오후 성조숙증을 주제로 중앙일보와 줌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의학 지식 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출판사 꿈꿀자유의 강병철(55) 대표가 지난 3월 31일 오후 성조숙증을 주제로 중앙일보와 줌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지혜 기자

성조숙증, 대부분은 치료 필요 없어 

검사부터 받지 말라고 하셨지만, 검사가 필요한 아이도 있지 않을까요?
딸을 키우는 양육자라면 좀 더 유심히 살피긴 해야 해요. 성조숙증은 대부분 여자아이에게 나타나거든요. 발병률을 보면, 여아가 남아보다 5~10배 정도 많아요. 여자아이는 만 6세 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으세요.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슴이 발달하는 겁니다. 가슴 변화와 함께 키가 훅 컸다면 더 의심스럽죠. 
아들 키우는 양육자는 크게 신경 안 써도 되는 건가요?
남자아이에게선 성조숙증이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어요. 최근 들어 더 는다는 통계도 없고요. 다만 남아가 성조숙증을 겪는다면 뇌종양과 같은 큰 병과 연관이 있을 수 있어 무조건 병원을 가야 합니다.  
왜 여아에게 훨씬 많이 나타나는 건가요?
성조숙증은 비만과 관련이 깊습니다. 지방 세포에서는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렙틴이 여성의 사춘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연구가 많습니다. 남성의 경우엔 사춘기와 렙틴의 상관관계가 없고요. 오히려 살이 찐 경우 사춘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죠. 여아인데, 비만이라면 좀 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죠.  
환경호르몬 때문에 성조숙증이 늘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환경호르몬이 성조숙증에 영향을 준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화를 내요. 당연한 걸 왜 아니라고 하냐는 거죠. 하지만 과학에서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믿고 싶어도 증거가 없으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얘기가 나온 걸까요? 
환경호르몬 중에 에스트로젠 등 여성 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한 것도 있어요. 그래서 어린 여성의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만약 환경호르몬 때문에 늘었다면, 여아뿐 아니라 남아도 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성조숙증이 는다는 통계는 대부분 여아에게만 해당하죠.   

관련기사

한국 “외모” 서양 “정서”…성조숙증 시각차 

성조숙증을 알아챌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증상은 없을까요?  
앞서 언급했듯 여아는 가슴이 발달했는지를, 남아는 고환이 3cm 이상 커졌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딱 이 증상만 시작되는 아이는 없어요. 갑자기 키도 크고, 두피에서도 냄새가 나죠. 피지가 많이 분비돼 여드름도 올라오고요. 수염이나 체모도 자랍니다. 이런 신체 변화가 일어나기에 아직 아이가 어리다면 부모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아이가 성조숙증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 등 치료를 받아야죠. 그리고 또 하나, 양육자가 신경 써야 할 게 아이의 정신 건강이에요.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잖아요. 몸은 부쩍 크는데 뇌 발달은 신체를 못 따라가요. 그런데 심지어 어린 나이에 사춘기가 시작됐다? 신체와 정신의 간극이 더 크겠죠. 성적 호기심도 왕성해지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서 불안해져요. 이런 변화 때문에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한다든지, 스스로 말문을 닫고 고립되어 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사춘기엔 정신 질환도 늘어나거든요. 양육자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다독이면서 돌봐주어야 하는 건 그래섭니다. 사춘기를 어떻게 잘 넘기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성조숙증이 오면 키가 안큰다는 얘기도 있어요. 양육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이 부분 같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키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성조숙증을 겪는다 하더라도 최종 신장은 대부분 정상 범위 안에 들기 때문이죠. 사춘기가 일찍 오면 키가 작아질 우려가 있긴 합니다. 이론적으로 사춘기 전에 매년 3~4cm씩 커야 하거든요. 보통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면 그때 커야 할 키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성조숙증을 겪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크게 작은 경우는 드물어요. 
왜죠? 다른 아이보다 더 작을 때 사춘기가 시작되면 그만큼 빨리 키 성장도 마무리되는 것 아닌가요? 
이유가 있어요. 성조숙증이 의심돼 병원에 온 아이들은 이미 또래보다 키가 크거든요. 게다가 사춘기 때는 그 전과 비교하면 키가 빨리 크잖아요. 그래서 사춘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키를 따라잡게 됩니다.  
성조숙증인 아이가 정상적인 범위의 키까지 자랄지 아닐지도 알 수 있나요?  
성조숙증으로 의심되어 병원에 찾았을 때 키가 또래 평균보다 작다면 바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매우 작은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아이는 또래보다 큰 경우가 많아요. 제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크기 때문에 성조숙증이라고 해도 키가 더 작을 가능성은 낮은 거죠.
그런데 왜 ‘성조숙증’ 하면 ‘키가 안 큰다’는 우려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닐까요?
그런 걱정을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를 집필한 폴 카플로비츠 교수에게도 이 얘기를 했더니 신기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한국이 외모지상주의가 유독 심하다고들 하잖아요. 남자건 여자건 키에 대한 이상적 기준이 딱 정해져 있고요.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성조숙증 보는 시각이 한국과 다른가요? 캐나다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세요.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나 유럽에선 성조숙증을 아이의 키나 외모 문제로 보지 않아요. 호르몬이나 골 연령 검사 같은 것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정서적 측면에 집중하죠. 또래와 다른 자신의 신체에 충격을 받거나 우울증이 생기진 않는지 같은 걸 더 중요하게 봐요. 사춘기를 빨리 겪으면서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진 않는지도 관심사고요.
한국과 사뭇 다르네요.  
성조숙증이 온 아이는 예민해요. 사춘기니까요. 그런 아이를 두고 엄마·아빠가 키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어떨까요? 수백만 원을 들여 온갖 검사를 받고, 수천만 원을 들여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게 한다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낄까요? ‘난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나요?
성장호르몬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에 속합니다. 하지만 키 1~2cm 더 키우겠다고 집에서 매일 아이 몸에 주삿바늘을 꽂는 게 아이의 심리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좀 과격하게 말하는 걸 허락한다면, 한국에서 성조숙증 치료는 성형수술이랑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외모지상주의와 상업주의가 만나 태어난, 좀 이상한 병인 셈이죠.
의학 서적 전문 출판사 대표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강병철(55)씨. 강씨 제공

의학 서적 전문 출판사 대표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강병철(55)씨. 강씨 제공

4~6개월 경과 관찰해도 늦지 않아  

그럼 이렇게 여쭐게요. 성조숙증이 의심될 경우 받아야 할 최소한의 검사가 있나요? 이걸 알면 과도한 의료 소비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받아야 하는 검사는 없습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만큼 성조숙증 관련 진료가 많이 이뤄지는 나라는 없어요. 불필요한 검사를 하는 거죠.
왜 그렇죠? 
보통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몇 개월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렇게 기다려 어렵게 의사를 만났어요. 그랬더니 의사는 엑스레이 한장 찍더니 4~6개월 뒤에 오라고 한단 말이죠. 의사는 별다른 설명도 없어요. 대학병원이 다 그렇잖아요. 환자가 밀려 있으니,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환자에겐 시간을 들여 상세하게 설명할 여유가 없죠. 부모는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사는 사소한 거로 취급하니 답답할 노릇이고요. 
별 다른 조치 없이 4~6개월 정도 경과를 보는 이유가 있나요? 그러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어떡하죠?  
성조숙증은 대부분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아서 공격적으로 치료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슴 좀 발달하고, 음모가 좀 나더라도 이후엔 진전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일시적 현상인 거죠. 호르몬 검사의 경우 수치가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해서 검사 결과를 의미 있게 해석할 수도 없어요. 의사 입장에서 1~2개월은 아이의 성장 속도를 파악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인 셈입니다. 그래서 4~6개월 정도 경과를 두고 살펴보는 겁니다. 6개월이 지나면 혹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시기를 놓칠 수 있으니, 그 전에 보는 거고요.
도서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꿈꿀자유 제공

도서 『우리 아이 성조숙증 거뜬히 이겨내기』. 꿈꿀자유 제공

부모 입장에선 4~6개월 동안 마냥 손 놓고 있기도 불안할 것 같아요.  
그래서 불안감을 조장하는 소위 ‘공포 마케팅’ 잘 먹히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성조숙증을 검색하면 기사로 포장한 광고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쇼닥터’(방송 매체에 출연해 근거 없는 치료법이나 건강 기능 식품을 추천하는 일부 의사)도 양육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나을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가 않아요. 병원에서 의사가 4~6개월 뒤에 다시 오라고 했을 때 몇 명이나 다시 올 것 같아요? 10명 중에 1, 2명 될까 말까예요. 그 사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치는 거죠. 의사 입장에선 환자가 과학적으로 검증조차 제대로 안 된 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어느 정도 검사를 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 키 안 크면 책임질 거냐”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검사든 치료든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돈이나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겁니다.
성조숙증에 관해 궁금할 때, 믿고 볼만한 정보가 있을까요?  
소아내분비학회에서 성조숙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어요. 검색하면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조숙증은 결국 발달 문제잖아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발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아비만은 성조숙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운동과 식이요법이 중요해요.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건강하게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강 대표는 끝으로 성조숙증과 관련해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팁을 주겠다고 했다.

뭔가를 사라고 하는 사람과 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 둘 중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요?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성조숙증을 겪는 아이 중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드뭅니다. 의사의 판단을 믿고, 지켜보세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 성조숙증의 원인은 소아비만입니다. 검사와 치료를 서두르기 전에 식단과 운동량부터 챙기세요.
· 성조숙증은 사춘기가 빨리 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신체 발달과 정신 발달 사이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겁니다. 키보다 걱정해야 할 건 아이의 심리적 상태입니다. 아이가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진 않는지 살피세요.

Innovation Lab